내가 바라는 책읽기 118

최성현, <산에서 살다> 중에서

만 년 동안 반복되는 일이다. 만 년 전에도 주름조개풀 같은 풀이 있었을 것이다. 발이 없는 식물이 동물을 이용해 자신의 씨앗을 퍼트리는 이 전략을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득찰, 도깨비바늘, 그령, 짚신나물, 도둑놈의갈고리 따위가 주름조개풀과 같은 방법으로 자손을 퍼트리고 있는데, 혹시 그것들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대의 여행을 따라나서더라도 화내지 말 일이다. 식물은 우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면서 살지 않는가.- 최성현, 중에서 오늘의 구원

윤이형의 '졸업', 김보영 기획의 '다행히 졸업'

정말 오랜만에 소설책을 두 권 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작가님께서 올해 세상에 내어놓으신 책인데, 무슨 우연인지 제목이 하나는 ‘졸업’(윤이형 작가님께서 쓰신 소설), 다른 하나는 ‘다행히 졸업’(김보영 작가님께서 기획하신 단편소설집)이다. 도저히 그러지 않을 수가 없어서 두 권을 함께 샀다. 양쪽 다 고등학생들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졸업은 SF로 분류될 수 있을만한 내용으로, 내가 SF를 사랑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재와는 다르지만 과학기술 측면에서 개연성 있는 어떤 배경에 등장인물들을 던져 넣고, 지금을 사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의 고뇌와 선택, 감정들을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가치관이라든지 살고 있는 모습들, 또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시스템..

최성현,《시코쿠를 걷다》, 그리고 그에 얽힌 이야기들

올해 나는 강원도 홍천에서 자연농을 배우는 '지구학교' 수업을 듣는다. 자연농이란 땅을 갈지 않고, 농약이나 비료를 주지 않고, 풀과 벌레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 농사의 방법이자 삶의 철학이다. 일본의 '후쿠오카 마사노부'를 창시자로 여기고 그에 따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자연재배', '생명 농법' 등 여러 다른 말들이 섞여쓰이고 있고 이것들을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농약을 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저 '자연'이란 말을 갖다붙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보통은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어쨌든 우리들이 '자연농'이라고 부르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도 그 가운데 하나가 되고자 한다.일본에서는 후쿠오카 마사노부 이후로 크게 두 갈래로 뻗어나갔고, 현재에도 생존하여 '아..

에밀 파게 씀, 최성웅 옮김, 《단단한 독서(L'Art de Lire)》를 읽고

L'Art de Lire. 영어로 옮기면 'The Art of Reading'이 이 책의 원래 제목이다. 보통 '독서의 기술'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은데,(실제로 1959년에 한국 1세대 불문학자인 이휘영 선생님의 번역으로 《독서술》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적 있다.) 이번에는 《단단한 독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파리3대학에서 불문학과 독문학을 공부한 최성웅 선생님이 번역했다. 프랑스어를 공부해보고 싶어 무료강의를 찾아 선생님의 온라인 카페에 들어갔다가 소개글을 보고 읽게 됐다.나는 책을 그리 많이, 열심히 읽는다고 하긴 어려울 수 있으나, 여튼 책을 읽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이나 독서 자체에 관한 책도 종종 읽게 된다. 돌..

여성환경연대 주은진, 김란이 사람책 독후감!

다른 삶을 상상하는 사람 도서관- 여성환경연대 사람책 독후감 그의 목소리를 타고 전해져오는 시골의 향기를 맡았다. 그가 독자들에게 한 첫 요청은 제목에서 ‘청순한’이라는 낱말을 지워달라는 것이었다. 어찌 되었건 그는 넘치는 생기로 빛을 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정글에 가서 살다온 건가 싶을 고생담을 주섬주섬 꺼내며, 아주 밝게 수다를 떨었다.아니, 나도 세탁기 없이 잠깐 살아봤는데 진짜 빨래가 얼마나 중노동인지 한 달도 못 되어 지쳤다. 그게, 나는 그냥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콸콸 나오고 심지어 온수까지 나오는 집에서 그걸 했다. 이분은? 가마솥에 불을 때서 물을 데우고, 그 물로 세수하고 씻고 난 뒤 빨래까지 했다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얘기.아이를 뱃속에서 일고여덟 달을 키워놓은 상태로 집을 지었다는..

이인화, 《스토리텔링 진화론》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에 대하여. 스토리텔링 진화론저자이인화 지음출판사해냄출판사 | 2014-03-05 출간카테고리인문책소개“모든 인간은 작가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디지털스토리텔링 연구... 몇 년 전부터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됐다. 또 하나의 유행인가 싶어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했는데, 지나면 지날수록 '이야기'가 지닌 힘에 대해 크게 느끼게 되더라. 무언가가 지닌 '이야기'가 없이는 그것의 의미가 우리 안으로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심지어 이야기가 없이는 무언가를 단순히 기억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재밌는 이야기를 읽고, 듣고, 보는 것은 참 즐겁다. 이 책은 온갖 이야기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지원)도구, 쉽게 말해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전문적인 ..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중에서

터무니없단 걸 알면서도, 또 번번이 저항하면서도, 우리는 이해라는 단어의 모서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인간은 이렇게 이해를 바라는 존재로 태어나버리게 된 걸까? 그리고 왜 그토록 자기가 느낀 무언가를 전하려 애쓰는 걸까?(182쪽) 청년유니온 강북문학모임에서 함께 읽은, 김애란, 중에서.마치 내가 쓴 문장인 듯, 마음에 와닿았다. 앞뒤 맥락이 좀 있지만, 그냥 이 문장만으로 보았을 때도, 뭔가 쓸쓸해지기도 하면서. 정말 궁금해진다. 그게 정답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대답 속엔 누군가의 삶이 배어있게 마련이고, 단지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당신들의 시간을 조금 나눠갖는 기분이었다.(같은 책 208쪽) 어른이 되는 시간이란 게 결국 실망에 익숙해지는..

버트런드 러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중에서

우와, 완전 공감이다.근데 진짜 재밌다. 1872년에 태어나 1970년에 죽은 러셀이 자동차에 대해,옛날에는 말 타고 다니는 걸 개탄한 철학자도 있는데, 그 사람이 자동차를 봤다면- 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하하하.버트런드 러셀의 책은 처음인데, 무지 재밌다.옛날 사람이라면 옛날 사람일 수도 있는데,삶과 긴밀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깊이있는 사유가 멋지다.행복에 관한 열정적인 탐구. 버트런드 러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중에서

목수정, 《야성의 사랑학》

야성의 사랑학저자목수정 지음출판사웅진지식하우스 | 2010-09-27 출간카테고리정치/사회책소개'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 그녀가, 연애불... '한국 남자들은 왜 더 이상 거리에서 그녀들을 쫓지 않나'뒤표지에 들어간 이 문장 하나로 충분했다. 이 책을 집어들기에. 늘 사랑하고 싶었지만,더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글들. 사랑은 거의, 본능이다.우리 몸을 지탱해나갈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본능적으로 배가 고파지고 음식을 찾게 되는 것처럼.쉬어야할 때가 되면 본능적으로 피곤해지고 졸려서 잠이 쏟아지는 것처럼.우리 삶을 지탱해나가려면 사랑 역시, 지속적으로 필요하니까본능적으로 사랑을 찾게 된다. 근데 점점, 그렇게 삶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사랑조차도, 온갖 이유를 대며 미루고 또 못하게 하..

목수정, 《야성의 사랑학》 중에서

동네 시립도서관에 다니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청년. 매일 다니는 도서관에서 눈여겨보던 참한 처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신호를 충분히 보내온다. 이때 남자인 나는 그녀에게 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차 한 잔이라도 하자는 시도를 해보아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어찌하는 게 좋을지 인터넷에 묻는다. 그 질문에 달린 현명한 조언들의 대세는 대략 이러하다. "우선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합격부터 해라. 괜히 지금 연애 시작해서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서로 망하는 수가 있다. 그 여자 분도 당신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남자라면 더 마음 놓고 사귀려 할 것이다……." 청년은 네티즌들의 이 진심 어린 충고를 듣고 "내 주제에 연애는 무슨 연애" 하며 잠시 머리를 산란하게 만들었던 연애 프로젝트를 뒤로 미루었을..

이종수, 유병선, 곽제훈, 김승균, 노대명, 《보노보 은행》

보노보 은행저자이종수, 유병선, 곽제훈, 김승균, 노대명 지음출판사부키 | 2013-07-08 출간카테고리경제/경영책소개착한 시장을 만드는 '사회적 금융' 이야기 2008년 금융 위기...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한동안 책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이번 9월부터 올 12월까지 일하게 된 나름 첫 직장 토닥토닥협동조합에서 추천 받아서 읽게 됐다.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현실로 받아들이고 사는 자본주의라는 것. 그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도 많이 했고, 그래서 그런 책도 많이 읽었다.그렇지만 이런 책은 읽어본 기억이 많지 않다. 어쨌거나 이 안에서 좋은 생각을 하고 무언가 바꿔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벌이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 그 중에서도 이 책은 '금융'의 이야기다.금융. 자본주의의 끝을 보여주..

디팩 초프라, 《우주 리듬을 타라》 중에서

하루는 심장 질환을 앓는 환자와 마주앉았는데, 내가 뜬금없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낫고자 하는 거요?" 그가 눈으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질문을 하느냐고 물으며 대답했다.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낫기를 바라지 않겠소?" 내가 말했다. "그야, 그렇지요. 한데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 낫기를 바라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겁니다." 그가 대꾸했다. "병이 나아야 직장에 돌아가서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는 계속해서 그에게 '왜'를 물었다. "당신은 왜 돈을 벌고 싶은 겁니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그도 나와 게임을 함께해 보기로 동의했다. "아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어서요." 나는 아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가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