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만남 16

후배 D

옛날에 동아리활동을 잠깐 같이 했던 후배 D를 7년만에 만났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니 선배라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여튼 당시엔 선배였다. 학교를 그만두고나서는 연락할 일이 딱히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 만날 수도 없었는데 그나마 페이스북 친구로 이어져있어서 소식을 조금씩은 전해듣고 있었다. 그러다 불면의 밤에 올린 그의 글에 댓글을 달기도 하고, 비슷한 시기에 둘 다 이별의 아픔을 겪는 등 묘한 친밀감이 형성되면서 7년만에 그와 따로 만나는 일까지 생겼다. 혹여나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하진 않을까했는데,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어색할 틈도 없었다. D가 중고나라에서 전자제품 거래를 하면서 날 만나러 오다가 그만 사기를 당하고 만 것이다. 상대방은 오류가 났다는 둥 그럴 듯한 말을 ..

새벽을 걸어 암스테르담으로.

새벽을 걸어 암스테르담으로. 스키폴 공항에 4시에 도착했다. 새벽 4시에 도착하니 유심칩 파는 사람들도 아직 없고, 기차도 안 다니고. 또 막상 첫 기차를 타고 가도 새벽 6시에 문 연 가게도 없고 숙소의 호스트도 자고 있을 거 같아서, 3시간 정도 산책한다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서도 똑같은 북두칠성과 반달을 보면서 걷는데 한참을 걸어도 밝아지지가 않고 오히려 더 어둡고 추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7시가 넘어가니 좀 밝아지기도 하고 사람도 많아졌다. 약 4시간을 걸어 겨우 숙소를 무사히 찾아갔다. 이 얘기를 했더니 돌아이 소릴 들었다. 음... 그런 거 같네. 2019.11.22.

반 고흐 뮤지엄 - 암스테르담5

반고흐뮤지엄에 갔다. 다들 사람 많다고 하더니 정말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돌아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아침 9시 반에 갔다). 여긴 오디오가이드가 유료였다. 5유로(6500원). 하지만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어가 있었다! 영어로 들었으면 내용만 겨우 이해하느라 감동이 덜했을 것 같다. 반고흐는 네덜란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농부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자연과 가까운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로서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하고 당대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위해 미술상인으로 일하던 동생 테오가 있는 프랑스 파리로 갔다. 그 뒤론 프랑스에서 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문자 그대로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판매하지 못했고 가난하게 살았..

IDFA, Tuchinski 영화관 - 암스테르담4

예쁜 영화관에 갔다. The most beautiful cinema I've ever seen이란 말을 듣고 얼마나 예쁘길래 그러지 했는데, 외부도 내부도 멋졌다. 나오는 길에 찍은 어둑해진 거리의 사진까지도. Tuchinski. 지금 암스테르담 시민들에게 핫한 이슈는 IDFA(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 Amsterdam)이다. 난 사실 한글자막없이 영화 볼 자신이 없어서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추천에 못 이겨 한 편을 보게 됐다. The Cause 라는 작품이었다. 2010-2018년의 기간동안 제작된 베네수엘라 감옥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도대체,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가 싶었다. 800명을 수용하도록 지어진 감옥에 8천명이 살고 있는..

줄리안 - 암스테르담3

어제 숙소를 옮겼다. 이번 호스트는 줄리안! 그는 암스테르담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영국인이다. 한국에서 무슨 일 했는지 등등 물어보길래 이것저것 대답했더니, 갑자기 영어를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면서 한국에만 평생 살았는데 어떻게 영어를 잘하냐고 해서 반대로 내가 당황했다. 얼떨결에 몇십년동안 시험을 보고 또 보고 해서 단어는 어느 정도 안다고 대답했다.ㅋㅋㅋ 그는 영국인들은 다른 언어를 잘 못한다면서, 이렇게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멋지다고. 한번도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런가싶고 좋았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영어를 공부했냐고 물었을 때 내가 그토록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던 학교의 영어교육이 먼저 떠오르는 걸 보니 씁쓸했다. 왜냐면, 내가 그동안 나름대로 말하기..

어떤 친절 - 암스테르담2

어떤 친절 새벽 다섯 시에 잠이 깨서 별 생각없이 페이스북을 켰다. 메시지가 한 통 와있었다. 신세지고 있는 집의 주인분께서 보낸 메시지였다. 메시지는 꽤 길었다. 요점은 본인이 바쁘고 여유가 없는 시기라 살뜰히 챙겨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이었다. 메시지에는 암스테르담에서 추천하는 박물관, 음식점, 카페 등의 정보도 잔뜩 담겨있었는데, 구글맵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건물과 지역 이름을 네덜란드어 스펠링까지 적어주셨다. 처음 이 집에 올 때, 직장 끝나고 학교까지 갔다오면 밤 10시가 넘으니 늦게 와달라하셨다. 피곤하실텐데도 헤매다 11시도 넘어 도착한 내게 이런 것밖에 없다며 무알콜 하이네켄을 건네셨다.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도록 별도의 열쇠를 주셨고, 장은 어디서 보면 되는지 근처에 좋은 ..

어디서 잘 것인가 - 암스테르담1

어디서 잘 것인가 출국하기 전날밤까지도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첫날 묵을 숙소가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출국하는 날 새벽이 되어서야 거기서 지낼 수 있다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다. 출국 전날 김포공항 근처에 산다면서 흔쾌히 재워줬던 형은 나 같으면 당일 숙소도 예약이 안 된 상태로 가느니 비행기를 취소하겠다며, 내 대책없음을 퍽 신기해했다. 그 형이 해외여행 정말 많이 다니는 사람이라 나도 스스로에게 겁이 났다. 변명하자면 비행기표를 예매하고나서 출국하기까지 2주동안 내가 숙소 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돈이 없다는 생각에 호텔같은 걸 안 찾고 더 저렴한 방법을 찾으려다보니 시간이 질질 끌렸다는 거다. 첫번째로 시도한 것은 카우치서핑이었다. 줄여서 CS라고도 부르는데, 말 ..

꼬꼬맘 장례식에 다녀와서

작년에 홍천에 자주 놀러오시던, 꼬꼬맘이라 불리던 이가 돌아가셨다. 늘 밝게 웃고 말씀도 잘하시는데다 열정적으로 집앞 텃밭농사를 지으셔서 상상도 못했는데, 3년이나 병을 앓고 있었다고, 가시고나서야 듣게 됐다. 안 그래도 요즘은 연락이 없으시네했던 지난 겨울에는 내내 많이 아프셨고 나중엔 눈도 안보이시게 됐다고.. 돌아가셨단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하는 탄식이 나왔다. 그만큼 좋은 사람이었다. 뵌지 몇달 되지 않았지만, 그는 거의 늘 맑고 따뜻하고 현명해보였다. 어쩌면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 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걸까. 그가 밝게 웃으며 이야기했던 매일 아침, 저녁마다 밭의 작물들에게 (누가 보면 미친 년인줄 알까 봐 겁나서) 남몰래 '사랑해' 속삭인다던 그 고백을 기..

<내 아이가 사랑한 학교> 강성미 선생님과 서울자유발도르프 학교에 가다

를 쓰신 강성미 선생님, 아니 민주 엄마 님과 부천에 있는 서울자유발도르프학교에 가다. - 진회의 작은 뒷이야기. 1층에 있는 2학년 교실에서 모임을 하게 되었는데, 의자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1학년과 2학년 교실은 '움직이는 교실'이라고 해서 의자 없이 바닥에 앉았을 때 책상으로 쓸 수 있는 긴 책상만 놓아두었던 것이다. 우리도 모두 바닥에 놓아주신 두툼한 붉은색 방석 위에 앉았다. 다른 분들은 아이들 책상을 의자 삼아 앉기도 하셨다.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그리 크지 않은 방(교실이라니!)에 방석과 작고 긴 의자에 둘러앉은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따뜻한 기운이 감싸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쿠키도 준비해주시고, 커피와 차도 많이 준비해주셨다. 서울자유발도르프 학교에 자리를 마련하고 모임을 준..

<내 아이가 사랑한 학교> 강성미 선생님과 퇴촌 푸른숲 발도르프 학교에 가다

를 쓴 강성미 선생님(혹은 민주 엄마) 퇴촌 만남에 가다. - 진회의 작은 뒷이야기. 이름부터 귀여운 콩깍지 공방 카페(고맙게도 장소를 나누어주셨다.)에서 진행된 푸른숲 발도르프 학교 도로시님 학부모님 주최(?) 저자 강성미 선생님과의 만남에 함께 갔다. 때는 2013년 4월 18일 목요일이었다. 푸른숲 발도르프 학교 학부모님들뿐만 아니라 동림자유학교 학부모님이나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학부모님들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석해주셨다. 공간의 느낌 덕분인지 내내 아늑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앞에 들어가는 복도에서부터 뜨끈뜨끈 맛있는 떡!과 만남에 오신 분들께서 정성으로 준비하신 선물들을 넣는 바구니가 반겨주었다. 게다가 벽에 붙여놓은 안내하는 종이들조차 끝이 동그랗고 부드러운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조금..

<삶의 마지막 축제>, 용서해 선생님 수요북콘 뒷이야기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나를 사랑하며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아이에게도 그럴 수 있도록 행동으로 격려해주는 사람.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일관되게 따뜻한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 말로써가 아니라 삶으로써 느끼게 하는 사람. 용서해 선생님, 존경합니다. 사람이 그리 많이 오지 않아 조촐하게 진행된 수요북콘.진행하는 분과 용서해 선생님, 손님으로 오신 백반종 선생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몇몇 음악을 연주하고, 듣고. 끝에 가서는 전부터 궁금하던 질문을 했다.선생님의 따님은 어떻게 키우셨는지, 선생님처럼 안정적인 길에서 벗어나는 삶을 자식에게도 선뜻 권할 수 있으신지에 대해서. 답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미 서울시향에 계실 때부터 딸을 어찌나 자유분방하게 키우셨던지, 고등학생 때부터 호주에 유학 중이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