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만남

꼬꼬맘 장례식에 다녀와서

참참. 2018. 3. 13. 11:01
작년에 홍천에 자주 놀러오시던, 꼬꼬맘이라 불리던 이가 돌아가셨다. 늘 밝게 웃고 말씀도 잘하시는데다 열정적으로 집앞 텃밭농사를 지으셔서 상상도 못했는데, 3년이나 병을 앓고 있었다고, 가시고나서야 듣게 됐다. 안 그래도 요즘은 연락이 없으시네했던 지난 겨울에는 내내 많이 아프셨고 나중엔 눈도 안보이시게 됐다고..

돌아가셨단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하는 탄식이 나왔다. 그만큼 좋은 사람이었다. 뵌지 몇달 되지 않았지만, 그는 거의 늘 맑고 따뜻하고 현명해보였다. 어쩌면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 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걸까.

그가 밝게 웃으며 이야기했던 매일 아침, 저녁마다 밭의 작물들에게 (누가 보면 미친 년인줄 알까 봐 겁나서) 남몰래 '사랑해' 속삭인다던 그 고백을 기억한다.
그의 아들 민준이가 친해지고 싶은데 서툰 행동으로 마음 상하게 한 유치원 누나에게 '민준이가 많이 미안하대 사과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대'라고 했다던 이야기도 기억한다.
논밭에 들렀다 가시는 길에 나와 짝꿍이 중고로 산 스쿠터에 술 한병에 과자 몇 개 놓고 조촐한 고사 지내는 걸 보시곤 우리의 사양에도 끝내 만원짜리 올려놓으시던 모습을 어찌 잊을까.

민준이도 아직 어린데 그런 좋은 사람 말고 차라리 나같은 놈을 데려가지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
그사람은 가고 나는 살아있다는 게 미안하다. 아픈지도 모르고 있었던 게 너무 미안하다. 그 겨울에 온 전화를 끝내 못 받았던 게 후회가 된다. 그를 생각하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데, 이젠 어떻게 살아야하나.

그렇게 그렇게 죽음이란 가까이 있다고 언제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곁에 있는 누군가가 사라질 때에야 하나도 모르고 있었구나라고 다시 깨닫는다. 그 죽음을 자꾸 생각하다보면 결국엔 결국엔 잘 살아야겠다, 잘, 잘 살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의 묘가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주 가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