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심리상담 13

성격 급한 사람

나는 평생 내가 성격 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애인의 글에서 나는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이야기들을 들은 상담선생님은 여기서 저기로 뛰어다니듯이 살 수밖에,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고 했다. 그 말들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수정하게 만든다. 어쩌면 성격이 급한 게 아니라 그냥 여유가 없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이후로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여유롭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있어야 살만했다. 정말로 돌아갈 곳이나 쉴 곳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내가 나의 성취나 능력이나 가진 재산의 정도같은 것과 상관없이 그냥 나여도 괜찮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확인받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므로 계속 그 감각을 찾아헤맸다. 많..

일상/심리상담 2022.04.02

애도의 시간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책을 보다가도 울고, 드라마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도 운다. 요즘 자주 우는구나하고 깨닫자, 몇 년 전 어느날 문득 마지막으로 울어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내가 메말라버린 느낌이었다. 메말라가는 나 자신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이혼을 하면서도 법원의 이혼절차가 다 끝날 때까지 한번도 울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울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양다솔 작가님의 서문에 나오는 "잘못 자리 잡은 현재가 계속해서 내일을 껴안고, 나는 다른 나를 상상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는데, 그 문장이 불러오는 내 과거들 중 하나가 바로 그 기억이었다. 고작 서른 언저리에 나는 내 삶이나..

일상/심리상담 2022.03.20

어린 시절

아빠는 곤란하거나 미안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무는 사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말로 못했던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보내는 사람이었다. 인터넷을 배워 이메일 계정을 만든 아빠가 가장 먼저 편지를 보낸 사람은 나였다. 아빠는 한 번도 나의 자취방에 온 적 없었지만 그 시기에 수많은 메일을 보냈다. 편지들을 읽을 때마다 내가 아는 아빠와 모르는 아빠에 대해, 두 아빠 사이에 놓인 아득한 간극에 대해 생각했다. 아빠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쓰고 또 썼다.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착한 딸이어서 고맙다고 썼다. 그 편지들에서 예전에는 보지 못한 아빠의 표정을 보았다. 미안해서 나타나지 못했던 아빠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어..

일상/심리상담 2022.03.12

외로운 사람

어제 상담에서 나는 열두 살 때의 나로 돌아갔다. 열두 살 때부터 나는 나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어떨 때는 그때 얻은 그 정체성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집에선 오직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었다. 아주 긴 시간동안 수없이 많은 게임을 했지만 가장 많이 한 건 채팅이었다. 게임 속에서, 또 인터넷게시판에서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었다.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은 사실상 한명도 없고 그 많은 사람 중 대부분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심지어 그 시절 온라인에서 채팅하는 것으로 모자라 손편지까지 주고받았던 사람들도 꽤 많다. 나는 그 편지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이름은 물론이고 편지 내용을 다 읽어봐도..

일상/심리상담 2022.02.20

심리상담 3 - 6 - 일기 1일차

오늘은 애정하고 존경하는 커플이 결혼식 대신 진행한 결혼전시에 갔다. 그 전에는 빨래를 돌려서 널어놓았다. 결혼전시에서는 전시를 찬찬히 돌아보고 감동했고, 오랜만에 만난 결혼당사자 친구들과 반갑게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내가 남긴 방명록을 읽고 무척 감동했다고 신랑 친구와 신부 친구 모두 말해주어서 기뻤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전부터 참 건강하고 좋은 관계처럼 보였고 부러워하기도 한 관계였다. 오늘 결혼전시를 보면서도 울컥할만큼 감동적이고 좋았다. 둘이 서로에게 좋은 사람, 좋은 관계라는 게 느껴지고 두 사람 다 서로 덕분에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전시에 그대로 쓰여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예전에는 부러움과 동경,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내가 여전..

일상/심리상담 2021.10.10

심리상담 3 - 6

이사 준비로 정신없다는 이야기와 전주에 나누었던 일들에 대한 근황을 나누고나서, 그림을 그렸다. 둥지와 새 그림이었다. 솔직히 이걸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일단 최대한 그런 말은 하지 않고 나름대로 그렸다. 그림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고, 가족관계와 애착유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리 가족은, 정확히는 17살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제외하고 나와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렇게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다. 사이가 나쁘다고는 절대 할 수 없으나, 어머니와는 뭐랄까 서로 간섭하지 않고자 하는 사이에 가깝다. 가끔 생신이나 어버이날이나 명절같은 때 연락을 전혀 하지 않으면 좀 서운해하시긴 하지만 그 정도 외에는 딱히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지 않다는 느낌의 관계다. 그래..

일상/심리상담 2021.10.09

심리상담 3 - 5

어제 5회기 상담에 갔다. 몸이 좋지 않아서 상담을 취소할까 고민했었다. 그 장소까지 갈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지만, 먹은 게 없어 에너지가 별로 없고 머리가 무거워서 과연 정말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뭔가를 잘 배울 수 있는 상태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원래 그림을 그리기로 했던 예정을 바꾸어서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게 낫겠다고 하셨다. 좀 피곤해보인다고. 나 역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을 하기에는 에너지가 좀 부족한 것 같아서 좋다고 했고 그렇게 했다. 정리를 해가지 않아서 두서가 없었지만 겪게 된 갈등의 시작과 진행과 각 순간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들었던 생각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떤 순간에 내가 스스로 어떤 마음인지 모르..

일상/심리상담 2021.10.03

심리상담 3 - 4

선생님께서 그동안 몸이 좋지 않으셔서 2주만에 만났다. 어떻게 지냈냐는 얘기에 할머니 얘길 꺼냈다가 그대로 가족사 이야기로 흘러갔다. 할머니는 7남매를 낳으셨고, 애기때 돌아가신 한 분을 제외하고 아들 셋, 딸 셋, 총 6남매를 키우셨는데, 큰 고모와 둘째 고모가 내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셨다. 아마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던 것 같다. 막내 고모는 살아계신데, 막내 고모의 남편(고모부)과 큰아들도 교통사고로 죽었다. 당시 같은 차의 뒷좌석에 타고 있었던 막내 고모와 둘째아들은 목숨을 건졌다. 내가 여섯 살일 때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내가 열일곱 살 때 할머니의 6남매 중 가장 막내인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할머니의 나이가 이미 여든여섯이셨다. 아버지는 단순히 막내 아들일 뿐 아니라, ..

일상/심리상담 2021.09.25

심리상담 3 - 3 (feat. 그림, HTP 검사)

어떻게 지냈냐는 말에, 최근 시작한 연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관계가 얼마나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내가 얼마나 전에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느낌으로 최근의 나날을 지내왔는지를. 선생님은 내가 세워나가야할 여러 기준들이 있는데, 그 관계를 통해 연애관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보인다고 하셨다. 다른 기준들도 함께 채워나가보자고. 그가 한 말에서 느끼는 어떤 감정들을 얘기하다보니 내가 딱히 트라우마라고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조금씩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것들은 어떤 관계든 서로 많은 대화가 필요한 부분이고, 앞으로 둘이 같이 얘기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충분히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림을 그렸다. HTP검사였다. 집, 나무, ..

일상/심리상담 2021.09.15

심리상담 3 - 2

이번 상담은 그동안의 결혼을 포함한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을 오버해서 썼다. 최근의 나는 11년동안 첫사랑이라 불렀던 그 연애에 대한 애도를 드디어 다 끝마쳤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고, 그 모든 연애를 통틀어서도 가장 파괴적이었던 올 상반기의 연애 또한 끝마쳤다. 처음의 연애부터 가장 최근 연애까지의 내 모든 사랑의 경험들을, 어떤 맥락들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정리하고 기준을 세우고 있다. 기준이라고는 없던, 그저 끌리는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사랑하던 것에서 조금 더 나를 알고, 내 기준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야한다는 생각을 이혼하면서 많이 했었다. 중간중간에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더더욱 느끼게 되는 경험들도 계속 있었다. 마지막의 그 가장 극단적인 경험은 강렬했던만큼 나는 과연 어떤..

일상/심리상담 2021.09.04

심리상담 3 - 1

이번이 개인 통산(?) 세번째 심리상담이다. 세번째 심리상담의 첫 상담을 어제 하고 왔다. 근데 지난 두 번의 상담과는 상담에 임하는 내 마음가짐에 차이가 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첫번째랑 두번째 상담을 받았을 때보다는 그래도 여러모로 에너지가 좀 있는 상태라는 점, 그때처럼 무기력하거나 만성적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지 않다는 점과 내 돈을 내고 유료로, 횟수나 기간의 제한없이 긴 호흡으로 할 것을 다짐하고 시작한 상담이라는 점이 이런 차이를 만들지 않나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앞의 두번의 경험이 만들어준 차이도 있을 것이다. 겪으면 겪을수록 나도 경험이 쌓이고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상담이 될 것인지에 대해 나름대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상담사 선생님은 세 번의 상담 모두 여성분이셨다. 굳..

일상/심리상담 2021.08.25

세번째 심리상담의 첫 상담

오늘 첫 상담을 받았다. 느낌이 좋다. 내가 살아오면서 받았던 (내가 느끼기에)주요한 상처들을 돌아봤고, 나는 상담을 통해 무얼 얻고 싶은가, 혹은 무엇이 되고 싶은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대해 얘기했다. 선생님께서 "혼자여도 행복한 사람"같은 건 우리에겐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원래 우린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하셔서 좋았다. 내 느낌은 물론 내것이지만 해석하지 않거나 정리하지 못하거나 미처 알아채지도 못하고 지나온 감정들은 있을 수밖에 없다. 더 나를 잘 알고 더 나를 좋아할 수 있길 바란다. 사진은 팝업식당에서 김밥 먹은 날, 걷던 중 만난 고양이들

일상/심리상담 202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