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심리상담

외로운 사람

참참. 2022. 2. 20. 14:41

 

 

어제 상담에서 나는 열두 살 때의 나로 돌아갔다. 열두 살 때부터 나는 나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어떨 때는 그때 얻은 그 정체성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집에선 오직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었다. 아주 긴 시간동안 수없이 많은 게임을 했지만 가장 많이 한 건 채팅이었다. 게임 속에서, 또 인터넷게시판에서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었다.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은 사실상 한명도 없고 그 많은 사람 중 대부분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심지어 그 시절 온라인에서 채팅하는 것으로 모자라 손편지까지 주고받았던 사람들도 꽤 많다. 나는 그 편지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이름은 물론이고 편지 내용을 다 읽어봐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그때는 서로 진심이었다.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말에 응답해줄 누군가를 어디에서라도 찾아야만 했던.

나는 내가 그 편지들을 여태까지 버리지 않은 의미에 대해서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근데 선생님은 거의 열 번에 가까운 이사를 다니면서 더 이상 연락은커녕 누구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어린 시절에 받았던 편지들을, 의미가 없었다면 버릴 수도 있지 않았겠냐고 하셨다. 그것들이 나의 한 시절을 살아낼 수 있게 해준 것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선생님은 열두 살의 나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하셨다. 어쩐지 잠은 오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드라마만 본 오전시간 끝에 샤워를 하고나서 펜을 잡았다. 그리고 엽서 한 장 길이도 되지 않는 짧은 편지를 쓰다 펑펑 울었다. 눈물이 노트에 뚝뚝 떨어지고 코를 몇번이나 풀어야했다.

그토록 온라인채팅에 빠져들었던 것도, 선생님의 모든 질문에 응답하는 학생이었던 것도, 누가 카톡이라도 보낸 것을 확인하면 답장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사람인 것도 다 연결되어있었다. 내가 누군가의 요청이나 연락에 성실하고 다정하게 응하는 사람인 면이 있다면, 그건 어쩌면 그런 것들이 바로 내가 받고 싶은 것들이기 때문일 거라고,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참 나, 그렇다면 좀 괜찮은 사람 아닌가? 나는 내가 받고 싶은 대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있다는 뜻이니까.

열두 살의 나에게, 다 괜찮아진다는 말은 차마 쓸 수가 없었다. 사실, 그때보다도 더 복잡하고 더 힘들 때도 있다. 그때는, 시간이 가고 어른이 되면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으니까. 하긴, 그래도 어른이 된 덕에 그때보다 나 자신을 위해 어떤 면에선 훨씬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선 그때의 내가 가졌던 희망처럼 어른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는 진짜로 할 수 있게 됐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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