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심리상담

심리상담 3 - 6

참참. 2021. 10. 9. 23:41

 

이사 준비로 정신없다는 이야기와 전주에 나누었던 일들에 대한 근황을 나누고나서, 그림을 그렸다. 

둥지와 새 그림이었다. 솔직히 이걸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일단 최대한 그런 말은 하지 않고 나름대로 그렸다. 그림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고, 가족관계와 애착유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리 가족은, 정확히는 17살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제외하고 나와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렇게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다. 사이가 나쁘다고는 절대 할 수 없으나, 어머니와는 뭐랄까 서로 간섭하지 않고자 하는 사이에 가깝다. 가끔 생신이나 어버이날이나 명절같은 때 연락을 전혀 하지 않으면 좀 서운해하시긴 하지만 그 정도 외에는 딱히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지 않다는 느낌의 관계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꽤나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다만, 오늘 상담으로 알게 된 것은 내가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이상으로 더 깊이 고민하는 것을 회피해왔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나에게 신경을 안 썼거나 나를 방치하려고 하신 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나는 계속 혼자라고 느껴왔다. 나도 서로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인 그런 관계가 편하다고 생각해왔지만, 함께 자취했던 친구의 부모님이 어떤 집에서 사는지 방도 보러오고, 와서 청소도 막 하시고, 택배로 반찬도 보내주는 걸 보면서 크게는 아니라도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상담이 끝나고 만난 재인과 이야기하다가 재인이 어째 재인의 주변 사람들 특히 맏이인 사람들은 자기 입장, 자기가 받은 상처보다 부모님의 입장, 부모님은 부모님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거고 어쩔 수 없었다, 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고해서 깨달았다. 정말 내가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최근에야 드디어 완전히 정리되었다고 느낀 첫 연애 상대에 대해 정리할 때도 그랬었다. 내가 그 사람의 상처, 그 사람의 입장만 이해하려고 하고 그로 인해 내가 받은 상처는 너무 돌보지 않았었다는 것을. 그걸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도 비슷하게 해왔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끝난 관계가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기도 하고, 그만큼 격렬하게 고민할 계기가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도 몇번이나 강조하셨고 나도 알고 있듯이,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은 이제 와서 나의 문제를 부모의 탓으로 돌리고 욕하거나 사과받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내 성격이나 사고패턴, 관계를 맺을 때의 패턴 중 어떤 부분들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내가 왜 자꾸 특정한 패턴을 반복하게 되는지에 대해 좀 더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그 패턴 외에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거나 하기 위함이다.

선생님은 뭘 완전히 변화시킨다기보다 나는 그대로 있고 기존에 내가 계속 반복하던 사고나 관계의 패턴 말고 다른 방법들도 만들어보고 그 방법들도 쓸 수 있게 하는 거라고 하셨다. 당연히 한번에 되는 건 아니고 조금씩, 조금씩. 어쨌든 기존의 패턴을 반복하지 않고 뭔가 다르게 해보려고 한다면, 우선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어떤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지, 왜 그런 패턴이 생겨났고 왜 그런 패턴을 반복하는지를 나름대로 함께 탐구해보는 것이다.

약간 혼란스럽고 내 감정을 잘 모르겠지만 조금 슬픈 느낌이 들었다. 혼란스러움에 대해 정리해보라고 하셨는데, 상담 끝나고 카페에서 책을 읽다 이런 문장을 만났다.

"심리 치료 과정이나 깨달음의 과정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자신이 믿어왔고 또 살고 있는 이야기의 한 조각이 떨어져나가는 경험인데, 대부분 이 과정을 무엇보다 괴로워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내가 나라고 하는 사람, 내 마음, 내 과거 경험들, 나를 둘러싼 관계들에 대해 살면서 계속, 계속 반복해온 생각들과 그렇게 구성해온 스토리들이 있다. 이때는 이래서 저랬고, 이 사람이 이렇게 해서 내가 이렇게 했고 그래서 우리가 이런 관계가 됐고, 뭐 그런 것들. 어떨 때는 서로 전혀 다르게 기억하고 있기도 한 그런 것들. 자꾸 반복하다보니 그 스토리가 결국 내가 나라고 믿는 것, 내 삶의 전반에 대한 나의 해석이나 나의 의견이 되고, 쉽게 변하지 않고 누군가 내가 굳게 믿고 있는 그 스토리를 건드렸을 때 격렬한 반응이 튀어나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나와 어머니와의 관계는 내 나이만큼이나 지속되어온 관계이고, 내가 나름대로 어머니를 바라보는 관점, 시선, 그동안 반복해온 생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있는 어머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나와 어떤 관계에 있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라는 스토리. 그것이 생각보다 깊은 고민 끝에 나온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내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정말로 얻게 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특히 상처와 그로 인해 형성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느껴지는 어떤 성격이나 사고패턴, 관계패턴들을 위주로 탐구하려고 하다보니 내가 나라고 믿었던 것의 일부가 흔들리면서 혼란스러웠던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숙제가 나왔다. 일주일간 매일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생각 위주의)일기와 하루 3가지 이상 자신을 칭찬하는 것을 써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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