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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삶

요즘도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의 습관이란 참 무서워서,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상황에서 늘 해오던 익숙한 생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여기에 새로운 길을 연결할 수는 있다. 심리상담 선생님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내 말을 듣고 단호하게 "그건 잘 살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씀하셨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과연 그랬다. 쉽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내 기억에 연인에게도 이 얘길 했던 것 같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연결이 만들어졌다. 이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아 내가 지금 잘 살고 싶구나하고 생각이 이어진다. 기적이다. 이전에는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2019, 2020년에는 이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죽고 싶다, 삶이란 어차피 이렇게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계속 견..

일상/2023~ 2024.02.15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24년 1월 18일 인스타/페북 --- 새해에 처음 읽은 책이 였다. 별점 5점을 줬다. 이혼하는 사람은 많은데 이혼경험담은 아직도 귀하다. 이 책은 힐링에세이라는 주장이 우습지 않을만큼 다정하다. 이혼 얘기하는데 이렇게까지 다정한 것도 재밌는데 그게 나와 연인의 엄청난 공감 포인트였다. 이주영 작가님은 결혼은 축하하는데 왜 이혼은 축하하지 않냐며,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니 당연히 축하해야한다며 자기라도 모든 이혼하는 사람들에게 축하인사를 전한다고 썼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와 안 맞아서 힘들게 버티며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는 친구를 축하할 수 있다면 이혼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아직도 회사에서 이혼얘기를 꺼내면 다들 당황한다. 이젠 그게 좀 재밌기까지 하다. 나라도 이혼한 사람이 당신 옆에 ..

일상/2023~ 2024.02.15

23년 결산

24년 1월 6일 인스타/페북에 올린 글 --- 한 시간을 달렸다. 지난달에는 딱 두번밖에 못 달렸다. 그 두번을 합쳐서 7.3km였다. 그만큼 오랜만에 꽤 길게 달렸는데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23년초에 세운 한 해 달리기 목표는 2000km였는데 1246km를 달렸다. 1월과 6월에는 170km를 넘게 달렸지만 7월부터는 많이 줄었다. 그래도 실패했다는 생각은 안 든다. 1246km가 어디야. 하지만 올해 상반기 목표는 슬쩍 600km로 잡았다. 월평균 100km. 사진은 23년 연말에 연인과 포토이즘 연남점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사없이 15분동안 자유롭게 찍는 방식이라 각자의 독사진도 한장씩 건졌다. 21년도부터 만났는데 매년 12월말에 사진관에서 같이 사진을 남기고 있다. 23년이 세번째였는..

일상/2023~ 2024.02.15

생존감정

이번 설에는 고향에 가지 않았다. 어머니도 보지 않았다. 지금 그 누구보다 보기 싫은 사람이 어머니다. 1500만원, 감당할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주고 잊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한달 반이 지났지만 괜찮아지긴커녕 내가 그 일 때문에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만 해도 다행일 지경이다. 화가 난다. 사실상 강도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평생 한번에 그런 돈을 써본 적도, 쓸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는 1500만원을 쓰고 내가 얻은 것은 분노와 좌절감뿐이니까. 그게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여유자금의 전부에 해당했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던 얼마간의 안정감도 같이 사라졌다. 500만원이라도 쓸 일이 생기면 또 빚을 내는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이미 빚을 1억 4천..

일상/2023~ 2024.02.12

2023년 마지막날

2023년 마지막날 개인회생 종료가 1월 5일인데 1500만원이 부족해서 빚 1억2천이 부활하게 생겼으니 돈을 빌려달라는 카톡이 도착했다. 어머니로부터. 2020년 1월에 딱 1000만원 갖고 이혼하고 서울로 혼자 이사 나왔다. 이사비용이랑 첫 달 월세 내고 나니 900만원 남짓 남았었다. 그나마도 보증금을 안 내도 되도록 배려해준 셰어하우스가 있어서 가능했다. 마침 집 근처 다이소에서 새벽알바를 구하고 있었다. 하루 3시간, 주 6일. 알바하며 지원한 각종 시민단체에서 서류 탈락하고 시에서 운영하는 공간의 공간 지키미 1년 계약직 자리에도 결국 떨어졌다. 와중에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붙기도 힘든데 생각하면 할수록 더이상 하고 싶은 일도 아닌 시민단체나 사회적인 일 카테고리를 포기하기로 했다. ..

일상/2023~ 2024.01.01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 배윤민정

아무 생각없이 방바닥에 누워 고개를 돌렸는데 함께 사는 연인의 책장에 꽂혀 있던 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역시 별생각없이 이 책은 뭘까하고 꺼내어서 누운 채로 잠깐 살펴보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오늘 바로 다 읽어버리게 될 줄은 몰랐다. 책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저자가 이혼의 과정을 겪으면서, 그 체험(단순히 겪은 것)을 경험(그것을 반추하여 나름대로 해석하고 소화시켜 받아들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거기까지 오는 동안 있었던 일들과 생각들과 마음들을 돌아보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이혼을 겪었기 때문인지, 이혼경험에 대한 이야기에 전보다 좀 더 눈길이 가는 것 같다. (아무 상관없지만 저자와 내 이혼한 년도가 같다는 것도 신기했다) 혼란스러운 마음들이 솔직하게 드러나있다. 스스로도 에필로그에서는 낯설..

<일하는 마음>, 제현주

서로의 시도와 성취들에 (칭찬이 아니라) 감탄하는 것, 그 감탄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이 서로를 향한 최고의 임파워먼트라는 점이다. 기꺼이 박수 보내는 청중이 되어주는 것, 대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중하기 때문에 하는 일들의 값어치를 알아주는 것, 그러다 보면 대단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축복하는 것이 우리가 디엣지레터를 통해 서로에게 하는 일이다. - 249-250쪽

한 집에 산다는 것

우리는 요즘 한 집에 같이 산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한 집에 사는 일의 어려움 중 하나는 집이 가장 편한 공간이어야 함에 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다는 것은 아무리 편한 사람, 편한 관계라고 해도 마냥 편하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그 불편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서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서로가 가장 편한 상태로 있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때 어느 한 사람이 집에서 단지 가장 편하게 있는다는 것이 다른 한 사람에게는 서운함 등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다. 함께 살지 않을 때는 만나고 있는 동안에는 서로에게만 상당히 집중하는 일이 가능하다. 대개 연인이라면 일대일로 만나서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나머지 일들이나 쉬는 것은 데이트하지 ..

일상/2023~ 2023.10.19

잘 살고 있다

사실상 종료에 가깝게 중단했던 심리상담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그저께 다시 시작 기준 2회차라고 말할 수 있는 상담을 받고 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일상이 그동안의 삶의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며, 그동안 그토록 바라왔던 것들이 대부분 다 이루어져있는 상황이었다. 막상 이루고보니 내가 원했던 게 아니다라는 식도 아니고, 여전히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들을 이미 살고 있는데도 곁에 있는 행복을 잘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인정이 되었다. 한참 우울한 시기를 지나던 옛날에도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적이 있긴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고자 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

일상/2023~ 2023.10.19

좋은 관계

싸울 수 없다면 좋은 관계가 아니다. 싸우지 않는다고해서 다 안 좋은 관계인 건 아니지만,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대개 싸울 수 없어서 싸우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관계가 아니다. 싸울 수 없다는 것은 내 감정, 내 느낌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 중 한 사람만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말함에 있어서 자유롭거나 혹은 둘 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내 감정이 곧 나이므로, 내 감정을 전할 수 없다면 나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관계에서 내가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이 "있어야" 관계인데 둘 중 한사람이 없다면 좋은 관계일 리 없다. 내가 내 느낌을 상대에게 말하기 어렵거나, 상대방이 이 관계에서 자기 느낌을 말하기 어려워한다면 왜 어려운지 잘 들여다볼 일이다. 더 자신의 감정을 ..

일상/2023~ 2023.10.19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은유

자기 인식은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되면 파도처럼 밀려온다. 막을 수도 없고 거스를 수도 없다.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박사 학위는 따지 않기로 했지만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고.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 170p

True Spirit

며칠 전 몸도 안 좋고, 몸이 안 좋으니 마음도 안 좋던 어느 날에 유튜브 아티앤바나나 채널 추천으로 넷플릭스에서 영화 “True Spirit”을 봤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라고 하는데 오히려 극영화였으면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느낄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제시카 왓슨은 열여섯의 나이에 홀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 세계를 일주한다. 그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 장애물들도 스케일이 장난 아니다. 온 나라 사람들의 비난, 심지어 그의 꿈을 금지하기 위한 법안 제정, 수십 미터의 파도와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지 않고는 부딪칠 수 없는 폭풍들, 210일동안 바다 위에서 홀로 지내야하는 외로움. 최근에 몸 컨디션도 안 좋은 데다 회사에서 맡은 일이 진척이 느려서 스스로 답답하기도 하고 ..

일상/2023~ 2023.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