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영문법과 우리집 고양이 배추(공부하다 힘들면 얘 팔자 부러움). '고양이어문법'도 있으면 좋겠다.

여차저차하다보니 대학교 2학년 교양수업 이후로 한 8년은 손댄 적 없던 영어를 공부하게 됐다. 그러던 와중에, 시험공부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흥미로운 영문법 팟캐스트를 알게 됐는데, 바로 '반란의 영문법'이었다. 그 뒤로 밥 먹을 때나 이동할 때 틈날 때마다 들었다. 팟캐스트에는 아직 관계대명사나 가정법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질문 이메일을 보내면서 책이 나와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이메일 답변도 굉장히 친절하게 해주셨다.)

영어를 잘 못하면서도 기존에 배운 영문법의 설명방식이 늘 맘에 안 든다고 느꼈던 터라 장원샘의 설명이 너무 좋았고(그렇다고 갑자기 영어를 잘하게 될 순 없지만), 책도 살 수밖에 없었다. 준비하는 독학사 시험에도 상당히 도움을 받았고(2단계), 받고 있다(3단계). 지금 학점은행제도로 영어영문학 학사학위를 따고자 사이버 평생교육원 온라인 강의와 독학사시험도 병행하고 있는데, 영어학개론이나 영어통사론 등 현대영문법을 직접 다루는 과목은 물론이고, 영문법(2단계)과 고급영문법(3단계)과 같은 일반적 문법과목에도 당연히 반란의 영문법이 도움이 된다.

한국식 영어교육이 엉망진창이고, 문제가 많다는 생각은 15년 전에도 했었고 학교 다녀본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할 일이지만, 또 막상 이렇게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주시는 걸 들으니 내가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관이었다. 거 참 씁쓸하다. 학교에서 엉터리지식, 가짜지식을 외우게 하고 시험을 보고 있다니, 어휴! 완전히 가짜지식이라고 할만한 것은 물론 극히 일부긴 하지만, 비실용적이고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방식의 문법교육도 모자라서 가짜지식까지 포함되어있다는 게 너무 놀랍고 안타깝다. 과학을 가르치면서도 "이걸 이렇게 배울 게 아닌데, 과학은 재밌는 건데, 사실 과학자란 사람들은 그냥 자연이, 우주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덕후처럼 파고들어본 것뿐인데 결과만 외우게 가르치다니, 지식보다 중요한 건 거기까지 도달하게 만든 호기심이고, 보이는 것을 넘어서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탐구하고 비판하는 방법과 태도일텐데." 등등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걸 듣다보니 최소한 영어교육보단 나은가싶기도 하다. 해당 과목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일으키기보다는 '그건 어렵고 억지로 해야하고 싫은 것'이란 느낌만 남기는 건 우리 교육의 전과목 공통사항인데, 적어도 과학교육에서는 단순화된 지식은 있어도 명백한 가짜지식은 생기기 어렵다는 점에서 말이다.

게다가 장원샘이 말씀하시는 영문법에 관한 내용이 과학과 비슷한 게 많았다. 문법이란 것도 결국엔 학자들이 영어엔(나아가 '언어'엔) 어떤 규칙이 있을까 궁금해서 분석하고 연구해본 것뿐이지, "이렇게 써야한다"는 규칙이나 지켜야하는 법률같은 게 아니라니(그런 건 옛날식 '규범'문법)! 미국, 영국엔 '국립국어원'같은 것도 국가 공인 '맞춤법규정'같은 것도 없어서 어떻게 말해도 '그게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근거도 없다니! 알고 보면 당연하게도 느껴지지만, 학교에서 문법교육 받으면서 맨날 틀린 거 고르라는 문제 풀고, 엄연히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이 존재하는 한국에 살아온 나로서는 문화충격이었다. 장원샘의 명언이 심금을 울린다. "문법의 본질은 그 자유로움에 있다."

영어교육의 목표가 대체 무엇인가에 강렬한 의문이 있다. 대부분 그럴 것이다. 이 의문은 "한국에서 학교다니면서 10년 이상 영어를 배우고 심지어 수능에서 1, 2등급 맞아도 외국인 만나면 말 한마디 못한다"는 한 줄로 요약되는 의문이다. 나 역시 10년 전 모의고사, 수능 영어에서 나름 평균 2등급에 종종 1등급도 받아봤던 기억이 있지만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는 지장이 매우 많았고 지금도 손짓발짓 다 동원해서 아주 단순한 수준의 소통밖에 안 된다. 영어원서로 된 가벼운 책 한 권 끝까지 읽어본 적도 없고, 궁금한 게 있을 때 한국어검색결과가 없으면 구글, 유튜브에서 영어로 검색해서 영어로 된 자료를 찾아본다는 행위에도 굉장한 저항감과 피로감이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영어 웹검색) 자료를 찾아본 경험도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영어교육의 목표가 말하기듣기, 즉 '회화'에 있느냐 아니면 읽기쓰기(글을 독해하고 논문을 읽고 쓰는 학술적 필요)에 있느냐에 따라 디테일한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의 영어교육이 학생들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어느쪽이든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만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즉, 우리가 배우는 영문법과 그를 통한 시험문제풀이가 실제 영어를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능력을 기르는 것과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보통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회화 교육, 문법보다는 원어민이나 원어민의 영어컨텐츠에 계속 노출시키는 것 등이 제시되는데, 그것도 맞지만 보통 그러면서 영문법 교육은 쓸데없다고 치부된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의 한국영문법 교육'이 그런거지, 진짜로 '영문법'자체가 회화나 독해에 쓸모가 없진 않다. 문법을 몰라도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지장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문법을 알면 더 수월하게 영어를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수영을 하거나 요리를 해도, 수영 이론이나 요리 이론만 열심히 외운다고 수영이나 요리를 잘하게 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수영 이론이나 요리 이론이 필요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무작정 물에 빠뜨리고 수영을 하라고 하면 그렇게도 배울 수는 있겠지만, 그보다는 방법을 알려주고 차근차근 해보고, 다시 또 익히는 정도에 따라 올바른 이론으로 교정해주고 다시 그걸 연습하고 보통 이런 식으로 배우는 게 가장 좋다. 요리 역시도 무작정 엄마가 하는 거 따라서 밥 해보고 반찬 해보고 하면서 배워도 문제는 없지만 굉장히 오랜 시간과 노력,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단기간에 익히고 싶다면 연습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정리해놓은 레시피를 참고해서 이럴 땐 이런 재료를 쓰고 어떤 조미료를 얼마 정도 넣으면 적당하고 어떤 것과 어떤 것은 서로 어울리거나 어울리지 않는 식재료라는 걸 아는 게 도움이 안 될 리가 없다.

영문법이란 것도 현대에 더 널리 인정받는 영문법, 영어권 사람들이 인정하는 방식의 좀 더 나은 영문법, 가짜지식이나 시험에서 답을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닌 의사소통에 도움을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영문법이라면 수영에서의 이론이나 요리에서의 이론처럼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만 공부해서 영어를 잘할 순 없지만 영어를 읽고 쓰고 말하고 들어보는 경험과 함께 그걸 보조하는 도구로서의 쓸모는 충분하다. 애초에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영어를 분석하고 연구해서 규칙을 찾아놓은 게 영문법이니까 말이다.

이 책과 팟캐스트(http://www.podbbang.com/ch/15357)에서 장원샘이 하고 계신 말씀과, 내 평소 생각이 섞였는데, 대략 위와 같은 관점에서 쓴 현대적 영문법책이라는 느낌이다. 책의 공식 소개글에도 있지만 보통 영문법 책 처음에 나오는 '문장5형식'부터 그 허구성을 지적하고 파괴(?)하면서 시작되는 혁명적인 책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는 영어가 무슨 다른 영어가 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분석(?)했던 문장들을 다른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그 수많은 '법칙, 원칙'과 그보다 더 많은 진짜 진절머리나는 '예외'들을 그런 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일단 '원칙'과 '예외'라는 건 거의 없다는 게 통쾌하다. 법칙이면 법칙이지 뭔 예외가 이렇게 많아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런 애도 있고 이런 애도 있는데 그런 애가 좀 더 많은 것뿐이다. 이렇게 배운다고 갑자기 영어가 쉬워지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논리가 아닌 논리를 외우려다 멘탈이 붕괴됐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몹시 반가운 설명이다.

사이다같은 반란의 명언들을 소개하면서 책 소개를 마칠까한다.(덧붙이자면, 775페이지짜리 책이고 본격 영문법 공부서적이며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라기보단 제대로 공부를 하거나 혹은 필요할 때 사전처럼 참고할 수 있는 책이다. 아예 영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중급자용 책이다. 나도 아직 얼마 못 읽었다.)

영문법이 어렵고 지겹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시험문제가 어렵고 시험공부가 지겹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 14쪽

문법은 특정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틀리다고 강요하는 억압적 규칙이 결단코 아니며 그런 규칙의 강요로는 결코 영어를 구사하도록 이끌 수 없다. - 15쪽

"많이 배운 사람이 하는 말이고 책에 쓰여 있는 말인데 틀릴 리가 있겠어?"하며 이해가 안 가는 설명을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생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라. 여러분의 이해력이 낮아서 이해가 안 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들이 말도 안 되는 설명을 늘어놓는 것일 수도 있다. - 16쪽

혹자는 5형식 없는 영문법이 낯설고 검증되지 않은 특이한 설명이라고 말하기도 하나, 영어권에서는 5형식 개념이 폐기된 것조차 아니며 아예 애초에 채택된 적도 없다. 한국과 일본 이외의 전 세계가 5형식 없는 영문법을 배우고 있는데 무슨 검증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전 세계의 ~ 현실을 고려하면 검증이 필요한 것은 오히려 5형식 개념일 것이다. - 17쪽

한국식 영문법 교육에는 "관계대명사 뒤에는 '불완전한 문장'이 오고 관계부사 및 '전치사 + 관계대명사' 뒤에는 '완전한 문장'이 온다"는 설명이 만연해 있다. 이것은 입시문화가 만들어낸 기괴한 가짜 지식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가르친다는 것을 외국의 교육자들이 알게 되는 것을 상상만 해도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 577쪽

일본식 영문법의 가정법에 대한 설명은 역사에 길이 빛날 희대의 학술적 코미디이자 일본식 영문법이 이룩해 낸 엉터리 설명 체계의 끝판왕이다. 가정법에 관한 시험문제들이 대부분 정형화되어 있다 보니 그에 대비한 문제풀이 요령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요령이 문법적 지식인 듯이 포장되어 가르쳐지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일본식 영문법으로 가정법을 가르치고 배운 세대는 정보화 사회와 글로벌 시대를 자처하는 21세기까지도 그런 조잡한 헛소리를 진지하게 가르치고 배워온 것에 대해 후대 사람들의 비웃음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584쪽

추신: 장원샘은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한국영어교육비판 에세이 책을 따로 한 권 내셔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본격 문법사항과 예문들 걷어내고 예시를 포함한 에세이 형태의 글로 다듬고 칼럼처럼 몇 편 새로 쓰셔서 합치면 괜찮은 에세이 책도 한 편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진짜 본격적으로 현대영문법 공부는 안 할 거지만 지금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알리고 사이다처럼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만으로도 수요가 있을 듯하고, 그 책을 읽고 더 관심이 생기면 반란의 영문법 책 구입까지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ㅎㅎ)

추신2: 이 책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 배경엔 매우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그의 뮤즈 에이핑크의 Marcella의 비밀(?)을 알고 싶으신 분은 팟캐스트 57화를 들으시면 된다. 성덕(성공한 덕후)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여러분 팬심이 이렇게 세상에 이롭습니다.

by 자연농 농부가 되고싶은 참참. 2019.06.03 09:14
기분이 참 쉽게도 변한다.
가르치는 학생들이 무슨 말을 해도 대답도 안하고 고개 숙이고 책만 쳐다본다. 그런 상태로 두 시간을 넘게 수업 하는데, 울고 싶은 마음이 됐다.
이성적으로는 나도 학생 때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걸 기억하고, 나와 인간적인 교류가 전혀 없이 만난지 얼마 안 된 학생들이 설연휴 쉬다 수업들으려니 힘들고 귀찮고 공부에 지치고 그런 거 이해 되는데, 듣고 싶어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얘길 떠들자니 진짜 재미없다. 쟤들도 재미없겠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나 싶다.
그냥 때려칠까 생각하면서 퇴근했는데 덥수룩하던 머리를 자르니까 의외로 기분이 나아졌다. 기분전환하러 머리를 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바꿀 수 없는 일에 집중하지 말자는 말도 도움이 됐다. 그래, 그들이 그런 상태인 건 내 잘못도 아니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만둘 게 아니라면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더 나은 수업을 하는 수밖에.

그러고 옆에 서점이 있어서 들렀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고등학생 때 좋아했던 소설가님이 최근에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윤이형,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책이 놓여있었다. 돈이 별로 없어서 잠깐 고민하다가 계산을 하러 갔는데, 15년 전에 강릉을 떠난 내 회원정보가 여전히 살아있고 적립금이 2만2천원이나 있어서 그걸로 책을 살 수 있었다.(나중에 알고보니 어머니께서 거기서 책 살 때 내 번호로 적립을 한 거였다.) 들떴다. 게다가 잠깐 서서 읽어본 소설 앞부분도 좋았다.

오늘 일어나서 소설을 다 읽었다. 눈물이 찔끔 났다. 고양이의 죽음과, 결혼과 육아가 사랑하던 연인 서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과정이 너무 아팠다.
뒤에는 작가님의 문학적 자서전이 있었다. 2009년 겨울에 당시 다니던 학교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내가 선정한 작가님을 인터뷰했었는데, 작가님 자서전을 보니 그때 우울증으로 글을 쓰기 어려운 시기셨던 것 같다. 심지어 당시에 여행 중에 이메일 받으시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피곤한 몸으로 수원까지 와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장편소설을 준비는 하고 있는데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며, 시종일관 초보 인터뷰어를 편하게 해주시면서 웃으며 말씀해주셨었는데. 아고. 그때도 감사했지만 더더욱 고마운 마음이 든다.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던 대학교 신입생이었는데, 10년이 지나고, 몇번의 연애와 자퇴와 결혼을 거쳐 여기에 와있고, 작가님도 그 사이에 고양이와 결혼과 출산과 많은 일들을 겪으시고 또 소설을 쓰시고, 그때의 소설들은 고등학생이던 내게 참 좋았는데, 지금의 이 소설은 지금의 내게 참 좋고.. 그런게 어쩐지 맘에 든다.

수상 소감 중간 즈음에 '나 역시 내 생각만큼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덤덤한 문장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가끔은 기뻐하며 살자'는 마지막 말씀이 크지도 작지도 않고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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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농 농부가 되고싶은 참참. 2019.02.08 11:38

마리 퀴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 이름은 많이 들어봤으면서도 정말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진짜 잘 모르고 있었다.


Maria Skłodowska-Curie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

퀴리는 프랑스인인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면서 남편의 성을 받은 것이고 현대 폴란드 사람들도, 또 살아 생전 본인도 자신을 풀네임으로 부를 때는 결혼 전의 폴란드식 성인 '스크워도프스카'를 살려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라고 즐겨 불렀다고 한다.(폴란드에서 아주 위대한 인물로 남아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랄 당시의 폴란드 바르샤바는 러시아령이었다. 폴란드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에 각각 지배받고 있어서 사실상 '폴란드'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던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와 같은 시기였고, 우리보다 훨씬 길게 지배받았다. 1795년부터 1918년에 독립하기 전까지 분할통치를 받는데,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는 1867년생. 그는 바르샤바에서 이미 우리의 일제강점기보다 훨씬 긴 시간을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상태에서 태어났다.
근데 폴란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릴 때부터 강하게 갖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일화가 많다. 급기야 그가 발견한 첫 새로운 원소의 이름을 '폴로늄'이라고 붙인 것. 우리로 치면 일제강점기 시절에 우리나라의 과학자가 타국에서 연구하면서 새로 발견한 원소에 '코리아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과 다름없다.(전혀 딴 소리지만 몇년 전 일본 과학자들이 발견한 새 원소에 '니호늄'이라는 이름이 최종승인됐다.) 직접적인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도 손기정이 비록 일장기를 달고 달렸지만 금메달을 땀으로써 당시의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던 것과 비슷하다. 이로 인해 그 당시 '폴란드'라는 나라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원소, 과학 실험 등을 이야기하면서 '폴로늄'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전세계에서 그 단어를 말할 때마다 그걸 말하고 듣는 사람들에게 폴란드 출신의 과학자가 발견했다는 사실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을 것임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프랑스 사람과 결혼해서 프랑스에서 딸들을 낳아 키웠는데 딸들에게도 폴란드어를 가르쳤고 함께 폴란드에 자주 가기도 했다.
(이런 전력 때문에 그가 죽었던 1934년, 일제강점기이던 우리나라 신문에도 당시 표기법 '큐리 부인'으로 부고와 그에 대한 기사가 났는데, 고등학생 시절 폴란드의 독립을 위한 비밀결사에서 활동했다는 식의 약간은 과장을 섞어 그의 민족적인 행보에 집중한 기사가 났다. 그 뒤에는 심지어 그런 부분을 집중조명한 소설까지 신문에서 연재했다고.)

반면 프랑스에서 전쟁이 났을 때는 파리를 버리고 시골로 피난 간 사람도 많았는데,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는 오히려 자신의 연구분야와 가까운 X선(엑스레이) 촬영장비들을 근처 버려진 병원들에 협조를 구해 그걸 차에 싣고 다니면서 군인들의 몸에 박힌 총알 등을 촬영해 빼내는 등 의료지원을 펼쳤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 십대였던 딸까지 그 트럭 한 대를 맡아 함께 활동했다고 하고 그 일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했으면 프랑스인들이 그 트럭을 '쁘띠 퀴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가 처음 대학에 갈 나이가 됐을 당시 바르샤바에서는 여성이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 없었다. 이에 그 당시 먼저 파리에 건너가있던 언니가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에게 제안하기를, 너 혹시 파리에 와서 공부해보는 건 어떻겠니? 근데 지금 우리 가족이 형편이 좀 어려우니 자리를 잡을동안 니가 폴란드에서 돈을 벌어 내가 파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좀 도와줘라, 그럼 2년쯤 후에 니가 파리에 와서 공부할 수 있게 지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기투합하여 비록 가난하지만 결국 언니네 부부와 함께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여기서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는 당시 소르본 대학이라 불리던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된다. 이때 교수의 심부름으로 그 학교에 없던 실험장비를 갖고 있는 과학자를 찾아가는데 이 사람이 이미 당시에도 상당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던 피에르 퀴리였다. 피에르 퀴리가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에게 반해 논문을 선물하는 등 애정공세(?)를 펼쳤다는 얘기가 있다.

두 사람은 로맨스도 로맨스지만 과학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 협력 연구의 사례라고 평가 받는다. 결국 이 부부는 우라늄에서 방사능이라는 현상을 처음으로 '뭔가 이상한게 있다'면서 발견해낸 '베크렐'과 함께 3인 공동수상하게 된다. 베크렐은 현재도 방사능의 세기를 측정하는 단위로 남아있다. 그러나, 베크렐이 처음으로 뭔가 있다라는 걸 알아챈 걸로 인정받는 이 방사능이라는 것이 실제로 무엇인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혀내고 방사능(영어로는 radioactivity, 물론 처음엔 프랑스어로 만들었다)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한 것은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의 업적이다. 최초의 방사능 연구는 X선처럼 '필름'을 갖다대 놓고 뭔가가 나온다는 걸 알아내는 방식이었는데, 이것을 '전기'적인 방식으로 측정할 생각을 처음했고 또 그걸 실행해서 실제로 정확한 관측값을 얻어낼 수 있게 한 최초의 인물이 바로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다. 이전까지 화학 연구에서 전기적인 방법으로 측정을 해낸 사례는 드물었는데, 이때 이후로 화학 연구에서 전기적인 성질을 이용하는 실험 방식이 급속히 확산됐다고 한다. 이 실험 방법의 창안만 해도 화학계 전체에 엄청난 영감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라듐을 발견하는 과정에서는 우라늄과 다른 돌들이 섞여있는 우라늄원석이라 할만한 물질을 8톤이나 가져다놓고 그걸 일일이 빻아가며 원소를 분리해냈다는 전설같은 일화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 철저한 분석과 목적성 있는 실험, 게다가 그 목적을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길고 지루한 실험과정을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하고 감내했다는 점에서 어느 모로 보나 존경스러울 뿐이다. 이 과정에서 남편인 피에르 퀴리 역시 그의 설계대로 함께 실험하며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 라듐이라는 원소를 분리해낼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방사능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게 했던 중요한 계기였다.

어느날은 가난한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가 냉난방은 고사하고 심지어 천장에서 비가 새는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그 8톤의 우라늄원석에서 일일이 원소를 분리하는 위대한 실험을 하고 있는 걸 알게 된 앙리 푸앵카레의 소개로 어느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화학을 가르치는 일자리를 얻게 된다. 근데 이때 무려 노벨상까지 수상한 위대한 화학자에게 화학을 배우는 행운을 얻은 학생들 중 많은 수는 이 기회에 감사하긴커녕, 그의 수업은 지루하고 프랑스어는 폴란드 억양이라 알아듣기 어렵다는 둥 트집을 잡으며 그의 프랑스어에 남아있는 폴란드 억양을 흉내내고, '그 폴란드 여자'를 놀리는 노래까지 만들어서 불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프랑스의 일차원적인 이주민 혐오 정서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그렇게 위대한 과학자 역시 이주민이고 여성이라는 것만으로 손쉽게 혐오의 대상이 됐던 것. 우리나라에서도 이주민을 볼 때 혹시 내가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한다.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는 노벨화학상과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는데,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사람은 현재까지도 역사상 단 4명밖에 없으며, 심지어 화학과 물리학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과학상을 한 사람이 받은 것은 아직까지도 그가 유일하다.(나머지 3명은 화학상/평화상, 물리학2회, 화학2회)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 가족들은 노벨상 역사에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기록을 남기는데, 남편인 피에르 퀴리,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 첫째 딸인 이렌 졸리오퀴리(결혼한 남편의 원래 성이 졸리오), 사위인 장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가 노벨상 수상자다.

by 자연농 농부가 되고싶은 참참. 2018.08.10 11:05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님이 우주에 다녀온 지 벌써 10년이 됐다. 헐. 엊그제같은데.

그동안 참 어처구니없는 가짜뉴스와 루머에 시달려왔다는 게 참 안타깝다. 남성이었던 고산 씨가 갔다면 훨씬 덜했을 그런 루머들.

1) 이소연은 한국 정부의 돈으로 우주에 갔다와서는 미국시민권자가 되어 한국국적은 포기했다. ->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거기서 만난 남편과 결혼한 것까진 사실이다. 그런데 결혼하자마자 (미국인과 결혼? 그럼 미국 시민권자? 그럼 한국국적 포기? 라는 뇌내망상을 거친) 기자가 자기 마음대로 기사를 썼다. 심지어 이소연 박사님은 "그 기사를 보고 '아, 맞다! 나 영주권 신청해야지'라고 생각했다고.." 결혼할 때까지도 학생비자가 1년이 더 남아있어서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민권 아니고 영주권조차 아직 신청서도 못 넣었는데 이미 한국에선 한국국적 포기한 미국시민권자로 낙인찍혔다는 황당한 사실. 박사님이 미국 유학 간 것도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연구원이라고 돈은 받는데, 박사학위 받자마자 우주 가느라 훈련받고, 와서도 온갖 언론과 강연 다니느라 연구 경력이 단절되어서 막상 무슨 연구를 새로 시작해야할지도 어렵고 연구도 안하는데 연구원이라고 계속 돈을 받는 것이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아서 새로운 길을 찾아 간 것이라고. 이소연 이후로 우리나라가 유인우주선이나 우주인 계획 등을 전혀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국내에서 우주에 다녀온 경험을 살려 후배를 양성한다든지 어떤 연구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여건도 되지 않았단다. 언제든 국내에서 자신이 필요한 역할을 해야할 상황이 왔을 때 더 잘 수행해내고 싶다는 진심어린 말씀이 인상깊었다. 태극기 달고 우주까지 다녀왔는데 국적포기같은 건 아직 고려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2) 그냥 우주 관광 갔다온 거 아니냐? -> 도대체 남성인 고산씨가 한창 훈련받을 때는 1도 그런 소리가 없었는데 이소연 박사님이 다녀오니까 왜 관광으로 둔갑하는 건지 이해가 불가능하다. 우주에 관광 다녀온 리처드 게리엇이라는 사람 있는데 울티마온라인이라는 온라인게임 만든 유명한 게임개발자다. 우리나라 NC소프트에서도 같이 일한 적 있다. 그 사람은 자기 돈 몇백 억 내고 갔다왔다. 바로 이런게 관광이다. 이소연 박사님 바로 다음차에 올라가서 둘이 만난 적도 있다는데 게임을 많이 하는 국가에서 왔음에도 자길 못 알아봐서 리처드 게리엇이 서운해했단다.ㅋㅋ 이소연 박사님은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고 관광객(리처드 게리엇같은)과는 다른 길고 어려운 훈련과정 끝에 다녀온 우주인이다. 한국 정부에서 여러 과학자들에게 지원받은 우주에서 행하고 싶은 과학실험 등 모든 요청 역시 착실히 수행해냈다. 다만 우주에서 하는 과학실험이라는 게 보통 사람의 눈에는 뭐 대단한 걸 하는 것처럼 연출하기 어려운 지루한 것들이라 뭘 한건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과학자들을 취재해서 영상물로 만들기는 원래 어렵다. 실제 실험이라는 건 요즘은 대부분 컴퓨터 앞에서 데이터들여다보는 게 전부인데 이래서는 '그림'이 안 나오니까. 천문학자들도 눈으로 망원경 들여다보는 일은 거의 없다.)

3) 게다가 잘 모르는 사실, 이소연 박사님 지구로 복귀하다가 죽을 뻔 했다. 소유즈 분리가 잘못돼서 원래 내려와야하는 방향이 아니라 뒤집혀서 내려오느라 열차폐체(단열재같은)가 부착되어있는 아래쪽으로 공기마찰열을 받지 않고 무방비인 위쪽으로 받아서 바깥이 상당히 많이 타버렸다. 내부에서는 뭔가 연기도 나고 이상신호가 있어서 전원은 껐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분석결과를 듣고 식은땀을 흘렸다고. 게다가 원래 보통 내려오는 곳에서 500Km 벗어난 곳에 떨어져서 구조팀도 안 오고 카자흐스탄의 100년 전 모습 그대로 사는 유목민들에게 발견되어서 '사람이 맞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그 유목민 중에 러시아어를 떠듬떠듬이나마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지, 없었으면..... 그대로 외계인 취급 받을 뻔. 그 사람들 입장에선 핸드폰도 없는 사람들이 웬 기계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고 안에서는 허연색 이상한 걸 잔뜩 입은 생명체가 나와서 바닥에 누워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우주에서 복귀하면 갑자기 생긴 중력 때문에 다시 적응하기 전까지 상당히 몸이 힘들단다.)


덤으로 미국에서 교수가 됐다는 기사도 났는데, 그것도 거짓. 미국에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서 여기저기 구하다보니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대학교의 시간강사로 기초물리학을 가르쳤단다. 거기서도 시간강사의 처우가 그렇게 좋진 않아서 남편이 월급명세서를 보고 '거의 최저임금 수준인데?'라고 했다는 일화.



by 자연농 농부가 되고싶은 참참. 2018.08.04 14:43

베라 쿠퍼 루빈(Vera Cooper Rubin, 1928년 7월 23일 ~ 2016년 12월 25일 / 미국의 천문학자)

유태인 이민자 가정의 둘째 딸로 태어난 루빈은 10세에 워싱턴 DC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창 밖의 별을 보며 천문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마분지를 말아 별들을 관찰하곤 했다.
1948년 배서(Vassar College) 대학의 천문학과를 졸업했는데, 배서대학을 고집한 이유는 마리아 미첼(Maria Mitchell, 미국 첫 여성 천문학 교수)이 그 대학교의 천문학 교수였기 때문이다.
이후 당시 남자만 다닐 수 있었던 프린스턴대학교 천체물리학 대학원에 지원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카탈로그조차 받을 수 없었다. (1975년까지 프린스턴대학의 천체물리학과는 여성을 학생으로 받지 않았다.)
결국 그는 코넬 대학(Cornell University) 물리학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세계적 과학자들인 한스 베테, 리처드 파인만, 조지 가모브로부터 교육을 받게된다.
1950년대 애리조나의 키트피크 천문대에서 은하 내의 별들의 회전 속도를 측정하기 시작했고 60년대 이후 200개가 넘는 은하를 대상으로 개척적인 관측 연구를 했다. 
1970년대에 안드로메다 은하 안쪽과 바깥 쪽에 있는 별들의 회전 속도가 거의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별 사이의 간격이 넓은 은하 바깥쪽은 안쪽보다 느리게 회전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루빈은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이 별 사이를 채우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결론을 내렸다. 1978년 루빈과 그의 동료들은 11개의 은하를 관측하여 그녀의 주장을 확인했고 그러한 주장의 근거가 재차 밝혀지자 천문학계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된다.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과학계의 관행, 편견과 차별에 맞서 적극적으로 싸웠다. 당연하게도 후배 과학자들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과학 분야에 진출하지 못하는 일이 없길 원했던 것이다.
재작년 크리스마스에 향년 88세의 나이로 별세.

그가 남긴 말:
정체성 같은 우스운 이유 때문에 누가 당신을 억압하도록 두지 마세요. 상을 받지 못하거나 유명해지지 못하더라도 신경 쓰지 마세요. 자기 연구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진정한 상을 받는 겁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

당신이 모자란다고, 누구도 말하도록 두지 마십시오. 과학 선생님은 내가 과학을 못할 것이라 말했지만 지금 나를 보세요.(트위터에 남긴 말)


by 자연농 농부가 되고싶은 참참. 2018.07.26 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