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3~

왜 열심히 달리는가, 왜 열심히 일하는가

참참. 2026. 4. 2. 08:33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100M>를 봤다. 여기서 (주로 직장동료들로부터) 종종 받곤 하는 질문 중 하나인 "왜 달리는가?", "왜 그렇게까지 달리는가?"(인스타, 유튜브 보다보면 고작 나 따위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싶지만!)에 대한 멋진 대답을 하나 얻었다. 

"그야 당연히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지, 그 외엔 없어", "아무리 그래도 진심으로 전력 질주하는 기쁨을 1밀리미터도 뺏어갈 수 없어"

달리기는 모든 게 숫자로 기록된다는 면에서 정직하고 잔인하다. 훈련하면 더 빨리 더 멀리 달릴 수 있다. 단순하다. 온라인 게임 하던 때랑 똑같다. 열심히 하면 레벨업한다. 게임처럼 매순간 재밌는 건 아니지만(냉정하게는 게임도 그렇진 않았다) 그냥 달리는 것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여기에는 먼저 고통을 주면 뇌가 평형을 맞추기 위해 도파민을 분비하는 도파민네이션의 원리도 많이 작용한다. 도파민도 달리는 주된 이유 중 하나지만, 레벨업같은 성장, 성취, 유능감 또한 한 축이다. 전력을 다했다는 기쁨, 내 한계에 도전하고 내 최선 혹은 어쩌다 간혹 그 이상을 끌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주는 희열도 있다. 달리기는 내게 취미지만 크게 보면 일도 비슷하다고 점점 더 느낀다.

내재적 동기, 외재적 동기라는 말에 대해 그 이전에도 들어봤지만 외재 동기는 쉽게 이해가 가는 반면 내재 동기는 그래서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다소 의문이었다. <드라이브>에서는 명쾌하다. 내재 동기는 대부분의 경우 이미 내재되어있다, 즉 타고 났다. 우리가 그 내재 동기를 파괴하고 방해하고 있을 뿐이다. 사업을 크게 키운 사람 또는 일을 누구보다 잘하거나 열심히 했다고 인정할 만한 사람들이 직접 썼거나 그런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 책을 최근에 많이 읽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전체적으로 돌아보면 딱히 이유가 없다. 물론 당연히 다들 나름대로 이유는 있지만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것을 납득할 만큼 눈에 띄는 이유(외재 동기)는 없다는 거다.

다이소 박정부 회장님은 <천 원을 경영하라>에서 45살에 창업하면서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었기에 뒤가 없다는 생각에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었다라고 동기를 밝히고 계시지만, 이미 죽을 때까지 먹고 살만큼 다이소가 잘된 이후에도 열정이 계속 지속된다는 점에서 그 동기가 모든 걸 설명해줄 수 없다. 다이소 창업 전 다른 회사에서 직원(현장 관리자)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자신이 맡은 현장의 개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셨는데, 그것도 (결과적으로 그 덕에 승진하긴 했지만) 이렇다할 만한 이유가 없다.

나이키 창업자가 스스로 쓴 <슈독>에서 그렇게 열심히 미친듯이 할 수 있었던 건 돈 때문만은 절대 아니라고 스스로도 그렇게 썼다. 월마트의 샘 월턴이나 넷플릭스 공동창업자 마크 랜돌프를 봐도 비슷한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큰 돈을 벌었고 절대 즐겁지만은 않은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 도전하고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며 최선을 다해 해결해낸다는 것에서 오는 어떤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큰 원동력 중 하나인 것 같다. 최근 읽은 <셈코스토리>나 <규칙없음>의 핵심도 그거다. 직원들을 최대한 덜 통제하고 더 많은 책임을 줄수록 직원들이 더 창의적으로,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것.

그냥 열심히 하고 그러다보니 조금 더 잘하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게도 가장 강력한 보상 중 하나가 된다. 더 잘하고 싶은 것(<드라이브>의 표현에 따르면 숙련Mastery을 얻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다. <일하는 마음>에 나오는 제현주 작가님의 자전거 처음 배우는 에피소드, 스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에피소드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이렇다할 의미는 없다. 그걸 잘한다고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고(오히려 즐거워서 하던 일을 보상체계로 바꿔버리면 내재 동기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을 수도 있다. 그게 내재 동기다. 누구도 몰라도 나는 안다. 물론 누가 알아주면 더더욱 기쁘다.

내재 동기가 타고나는 본능같은 것이라면 그걸 더 키우거나 "동기 부여"할 방법은 없을까? 타인이 할 수 있는 동기 부여는 어쩔 수 없이 거의 대부분 외재 동기의 성격을 띠게 된다. 제일 중요한 건 내재 동기가 발휘되는 걸 "방해하지" 않는 거다. 본능이므로 막지만 않아도, 저해하는 방해요소들만 잘 치워줘도 알아서 열심히 하게 된다는 거다. 내재 동기로 일한다는 것은 그 일을 놀이에 가까운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말이 거창해 "내재 동기"지, 쉽게 말해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는 거다.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나 외재 동기("누가 시켜서", "더 많이 하면 돈 더 준다고 해서")로 인해 하는 일 외에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우리는 취미, 여가, 놀이라고 부른다.

놀이의 마음가짐이 되고자 한다면 기본적인 생존은 보장되어있어야한다. 밥 걱정, 돈 걱정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이 놀이에 몰두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그 다음으로 누가 시킨 일이 아니어야 한다. 최소한 당사자가 누가 시킨 일이라고 느끼지 않아야 한다. "자율성"이다. <드라이브>에서는 무엇을, 언제(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와 할 것인지를 얼마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느냐에 따라 자율성이 높은 일이라고 설명한다. 해결할 문제를 직접 정하고(또는 정의하고),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결정하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과 할 수 있으면, 창의성과 창의적인 문제해결력을 요구하는 작업의 효율이 올라간다. (뭘 고민할 여지도 없는 기계적인 반복노동이라면 내재 동기가 설 틈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어떤 동사의 멸종>의 택배 상하차 에피소드를 보면 차에서 택배박스들을 내리고, 다시 쌓는 반복되는 일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적용해보는 걸 즐기는 게 인간인 것 같다. 체력적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겠다는 위기감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만)

개발자로 일했던 첫 회사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고 뿌듯했던 일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동료들의 업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수기로 하던 단순반복작업을 자동화해서 불필요한 시간과 휴먼에러를 없애는 등)을 찾아내고 내 시간 더 쪼개서 최선의 해결책을 고민해보고 작업했던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에 자주 했던 생각, 동료들과 했던 대화를 돌이켜보면 나는 진심으로 회사(경영진)가 일을 방해하고 있다고 느꼈다. "도대체 왜 일을 더 잘하려는 직원을 오히려 방해하는지 모르겠다, 일을 방해하면 회사가 손해보는 건데 왜 그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운이 좋게도 지금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작년 말부터 소속해서 일하게 된 스쿼드에서는 지금까지 일했던 어떤 직장이나 조직보다도 더 자율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 결과 직장 다니면서 그 어느때보다도 일에 투자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일이 재밌다. 내 의견이 존중받는다. 어떤 식으로 할건지 언제까지 할건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경우도 많고 최소한 내가 맡게 된 일에 대해서는 내 의견이 최우선으로 고려된다. 자연스럽게 나는 내 말에 책임을 지고 싶어진다. 우리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지금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임팩트있는 거라고 함께 합의한(최소한 의미와 목적에 대해 납득될만큼 설명을 들은) 일을 하니까 무의미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동료들을 위해서 일하니까 그것 또한 더 열심히, 더 잘하고 싶은 동기가 된다.

누구 못지 않게 높은 연봉, 복지 사랑하지만 솔직히 돌아볼 때 진짜 매일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데 (일정 이상은 되어야 현타가 덜 오긴 하지만) 연봉이나 인센티브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조건부 인센티브는 오히려 의욕을 저하시키기도 한다는 걸 느꼈는데 내가 특수한 경우인 줄 알았다.(연초에 처음 발표할 땐 좋고 의욕이 나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 목표가 게임레벨업처럼 내 단순반복행동으로 도달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내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을 느끼기 어려웠고, 너무 높아서 어차피 도달할 수 없단 생각만 점점 커졌다) 근데 <규칙없음>을 보니 넷플릭스도 인센티브 제도의 허점을 발견하고 기본 연봉에다 인건비로 쓸 모든 돈을 녹여서 최대한 연봉을 높인 뒤(이게 인재 영입에도 더 유리하다고 판단) 연초에 정해둔 인센티브 목표같은 잡생각이 아닌 회사를 위해 지금(상황은 매일, 매순간 변하므로) 가장 필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일에 집중하게 하는 게 더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걸 보고 끄덕끄덕했다. (동일한 결론에 이르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올초에는 회사에서 인센티브 발표는 없었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물론 홀가분할 수 있는 건 연봉을 꽤 많이 올려준 덕이다.)

직장 내에서 직원들의 동기가 가장 높아지는 것은 업무가 "진전되고 있다"(progress)는 느낌을 받을 때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쓴 <전진의 법칙>을 보면서 특히 많이 느낀 건, 회사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직원들의 창의성과 헌신을 끌어내는 데 관심이 없거나 무지하다. 근데 그렇다고 내가 해도 잘할 것 같지도 않긴 않아서 이해는 간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최대한 통제하지 않고 자율성을 최대한 부여한다는 게 말이 쉽지, 권력을 가진 사람, 그 사업의 성패에 어떤 직원보다도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소유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 본성을 거스르는 일일 거다. 그렇게 하는 다른 회사나 사례도 거의 없으니 상상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사업이란 게 그런다고 반드시 성공(경제적으로)한단 보장도 없다. <88연승의 비밀>의 존 우든 감독이 "성공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얻은 만족감과 그 덕분에 얻은 마음의 평화"로 정의한 것처럼 아예 다르게 정의한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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