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 책은 1장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 책을 굳이 더 읽어야할까라고 고민할 만큼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다. 나이에 대해 이 정도로 심하게 의식하는 분도 드물 것 같은데 싶을만큼 의식을 심하게 하시는 게 느껴져서 더 불편했다. 그래도 뒤로 갈수록 점점 좋았다. (작가님은 그걸 오히려 지양해야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지만) 조금이라도 작가님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가 확실히 더 살아있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연역적인 논리 전개를 하는 이론서도 아닌데 아무런 개인적인 경험같은 것이 곁들여지지 않은 채로 논리나 의견만 나열되는 건 내겐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걸 느꼈다. 물론 그런 글에도 독자가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기 경험을 대입해서 읽는다면 얻을 것이 있겠지만서도.
성장기에 오랜 외국 생활을 했던 나는 '쟤는 조금 우리와 다른 아이,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아이'라는 시선을 받아서 그것이 약간의 서글픔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그냥 나일 뿐이고, 나는 정확하게 이해받고 싶어'라는 내적 충동이 항상 있었다. 그들의 말대로 '다르고 이상하기 때문에' 고유한 관점을 가질 수 있어서 글쓰기에 있어서는 이점이 되어준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글과 책을 쓸 기회가 있었던 것은 같은 이야기를 해도 조금 다른 관점을 피력하거나 남들은 꺼려할 만한 솔직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했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중략)
물론 장기적으로 저술업을 계속한다면 이것 '만'으로는 모자라 보다 많은 것을 새로이 흡수해야 하겠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내 안에서 나와야 한다. 나의 내면에 항상 남아 있는 어떤 명제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99쪽
지속적으로 작가 일을 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오늘 어떻게 쓰지?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루틴으로써 글을 쓰는 것이고 내가 쓸 수 있을까? 라는 자기 의심은 하지 않는다. 그냥 쓰는 것이다. 루틴은 다른 말로 집중력이다. 언제 어디에 갖다 놔도 쓸 수 있는 힘, 뭐라도 쓰는 것. 글이 조금 별로여도 상관없다. 나중에 고치면 된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저런 이유로 못 쓰겠다고 생각한다면 아예 직업으로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오늘은 영감이 떠오르지 않고 기분도 별로고•••••. 영감이 떠오르지도 않고 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때도 쓸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작가다. 인내를 '고통'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자연스러운' 인내심을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작가업의 가장 중요한 과정을 진심으로 좋아해야 한다. 그 과정이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혼자, 과묵하게 글을 쓰는 일이다. 이 과정을 좋아할 수 없다면 작가를 할 수가 없는데 사람들은 이걸 너무 간과한다. 작가로서의 삶의 95퍼센트는 그것들로 채워질 것이기에.
107쪽
그렇다 해도 이제 나는 내게 재능이 있나 없나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일단 오늘의 원고를 쓸 수 있을까만을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스스로에게 지지 않으면서 남 잘되는 것엔 신경을 끊고 끊임없이 나를 책상 앞에 갖다 놓는 것, 그뿐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업은 예술보다는 차라리 기술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이 얘기를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
이 세상에는 작가 말고도 좋은 직업이 정말 많다. 사실 작가처럼 효율 떨어지고, 요령이 1도 안 통하는 직업이 없다. 솔직히 아주 가끔은 폼 날 때가 있고 남들이 어쩌다 한 번쯤은 멋지다고 생각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외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고되고, 결과가 예측 안 되고, 돈도 안 되고, 자주 오해받거나 욕먹고, 기약 없는 미래에 마음속에는 지옥 바람이 자비 없이 분다. 정신과 육체 건강에 별로 좋지 않은, 오죽하면 최고 단명하는 직업일까.
121쪽
대필 작가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질문)
대필 작가로 오래 일했는데 사람들은 '내 책'을 쓰라고 한다. 하지만 대필 작가를 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쓰는 일에 대한 자격지심은 없었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은 이름을 드러내고 쓰는 일이 훨씬 어렵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잘 쓴 책 한 권 정도를 가져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변)
대필 작가만 하는 건 아깝다, 내 이름을 단 책이어야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아실현으로서의 글쓰기도 일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두가 저마다 하나의 엄연한 직업이자 프로페셔널의 세계인 것이다. 특정 글의 장르나 방식이 비하받을 이유는 없다. 타인의 평가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그 일을 할 필요는 없다.
139쪽
이 일을 제기로 선택에 관한 나의 경향성 한 가지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내가 여러 사람들한테 이거 할까 말까라고 묻고 다닐 때는 용기가 없어서 혹은 응원을 받고 싶어서 묻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그저 내가 실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묻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음속 확신과는 거리가 먼 일이라는 뜻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이나 확신이 생긴 일이면 그 누구에게도 의견을 구하지 않고 그냥 생각과 더불어 해버리는 사람인 것이다. 여러 사람들한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있다는 것은 이미 내 안에서 직감적으로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일곱 명의 현자 지인들의 이야기도 결코 틀리지만은 않았다. 새로운 도전에서 소득을 얻지 못한 적이 없으니 해야 한다는 말도 맞았다. 나는 이 거친 반년 간의 경험을 통해 캐릭터의 대사를 쓰는 능력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나아졌고 그것은 고스란히 그 후 소설 작업에 반영되었다.
167쪽
하지만 여기서 싶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현명하고 합리적인 선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어렵게 고민하고 선택을 내리는 목적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인 것이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어렵다면 '자기만족, 충족'으로 바꿔보면 된다. 그리고 행복에는 객관적인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 이렇게 생각하면 어쩌면 바보 같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자꾸 하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이 이해될 것이다. 이 선택이 내게 이득이니까, 내가 편해지니까 머릿속 계산으로 선택하면 얻어지는 것은 딱 거기까지다. 조금 손해 봐도 되니까, 힘들어도 좋으니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으니까, 라면서 간절히 선택한 것에는 단순히 계산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더 큰 가치가 숨겨져 있다. 거기에는 누가 뭐래도 내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모습이 들어 있을 것이다. 내 경우 그 어떤 모습은 '자유'와 '아름다움'이었다.
170쪽
내가 나 자신과 어긋남이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라면 책임, 노력, 미움 받거나 실패할 가능성 등의 여러 가지 대가를 얼마든지 치를 수 있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다행인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선택을 용기 있게 내리면서 시행착오를 경험해나가다 보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점점 알게 된다는 것이다.
173쪽
회사는 공적인 관계의 장이기 때문에 보고 싶다. 보고 싶지 않다를 논할 수 없다. 그냥 같은 공간에 있어야 되는 것이고 일로 최소한만 엮이게끔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얼굴에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는 것은 사회인의 에티켓이라고 생각한다. 공적인 인간관계는 그렇게 '머리'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로 사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최대한 자유롭고 자연스럽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결혼 생활에서 그런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 은 상당히 마음이 무거운 일인데•·••·•. 그 대상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러나저러나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라면 내 감정에 솔직해지면서 고통스러워지는 편을 택할 것 같다. 내키지 않는 사람 가급적 보지 말고, 좋아하는 척하지 말고,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것은 신경 끊는 것이다. 특정 이유 때문에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보고 지내기도 한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고통이 단기간 내에 끝날 것을 확신할 때의 얘기고 이것이 향후 내 삶을 오래도록 지배할 것 같으면 나 자신부터 구해내야 하지 않을까.
181쪽
정말 맞다. 꼭 상대방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이 관계가 앞으로 계속되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부터 구해내야한다.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고 부추기지만 나 자신보다도 주변이 내게 원하는 것을 하는 것도 하나의 존중받아야 할 선택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모험하고 지르지 않으면 그 인생은 덜 멋진 것이다'라고 강요하는 주변 분위기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나의 경우 저술업을 하기 때문에 상당히 '나답지 않으면 안 되는' 특수한 일은 하는 셈인데 사실 글로 먹고사는 일은 처음엔 '최선(당시의 나에게 최선은 회사 중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차선(몸이 약해서 집에서 쉬엄쉬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차선의 선택은 어떻게 임하느냐에 따라서 차후 '최선'의 선택으로 위치를 옮기게 되었다.
188쪽
'남들이 하는 선택'이라고 하면 어쩐지 '내가 하기 싫은 선택'과 동의어처럼 들리지만 '가지 않은 길'은 사실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남들이 하는 선택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끌린다는 뜻일 터인데 그것으로 내가 본질적으로 훼손이 되거나 망가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잘할 수 있고 편안할 수 있는 방향이라면 기회를 쥐봐도 괜찮지 않을까.
의외로 내가 이런 것도 좋아하는구나 깨닫기도 하고,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남들이 하는 선택으로 잠시 활로를 넓혔다가 내가 원하는 것을 재확인한 후 다시 좁혀도 되지 않을까. 약간의 '여지'를 유연하게 준다고 생각하자.
196쪽
대개의 경우, 나는 한계에 부딪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지 자문해보고 조금이라도 흐릿한 마음이 들면 바로 리셋. 다시 말해 다른 길을 선택하는 편이다. 성장기 시절, 변화에 유연한 삶을 줄곧 살아왔기 때문이다. 유학 대신 직장 생활을 선택했고, 직장 생활 대신 건강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저술업을 선택했다. 저술업을 하면서는 고비 고비마다 아슬아슬한 난관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꾸역꾸역 어떻게든 넘겼던 것 같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18년간 이 길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계속 쓰고 싶었던 것 같다.
198쪽
(질문)
물 흐르듯이 가는 선택도 나쁘지 않다고 했지만 이게 맞는 것일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선택하고서도 이렇게 불안감이 들 때 그 불안을 어떻게 이겨낼 수가 있는가.
(답변)
그건 그 선택으로 인해 완벽한 상황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런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이야기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내리게 되는 선택'에는 불안감이 없다. 그것이 완벽한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선택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선택을 통해 객관적으로 손해를 봐도 괜찮다는 너그러운 마음이 받쳐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잘 안 되어도 어쩐지 괜찮을 것 같아, 여전히 이 선택을 내리고 싶어, 같은 마음인 것이다. 밑져도 상관없다는 마음이 있을 때는 선택의 결과로써의 성공이나 실패가 별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타인의 잣대가 아닌 자기만족, 자기 납득이 중요한 것이고 그것들이 있는 한 불안이나 후회가 끼어들 여지가 적다.
나중에 뜻한 바대로 잘 안 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왜 내가 그런 선택을 내렸지?'하고 후회하기보다 다시 새로 그 시점에서 선택을 마주하면 된다. 그저 현재 상황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볼 뿐이다. 우리 인생은 끝없이 선택이 있고, 끝없이 변화가 있기 때문에, 토막 내서 A학점, B학점 점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다할 때까지 계속 가는 것이다. 그때그때 새로 해결해야 될 문제점, 내려야 하는 선택, 해결해야 될 어떤 과제들이 있고, 그렇게 계속 앞을 보고 가는 것이지, 돌아볼 필요가 없다.
선택을 하고 나서도 불안감이 계속 강하게 이어진다면 그것은 어쩌면 마음속에서 원치 않은 선택을 내렸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적어도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고 있을 때는 나의 압도적인 원함/갈망이 불안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들이 보기에 무모한 짓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나는 그런 비합리성이 인간다움을 설명하는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 완결된 성취 같은 것은 없다. 그저 계속 가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참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이라고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은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모든 선택의 순간에 고뇌가 있고 그 결과를 짊어지면서 또 앞으로 걸어나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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