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유전자를 타고 나서 같은 가정에서 자라온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왜 이렇게 다른 성격을 갖게 되는가에 대한 설득력있는 가설을 제시하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추리소설처럼 범인일 것 같지만 범인이 아닌 5가지 용의자의 혐의를 부정하는데 굉장히 긴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꼭 필요한 부분이란 건 알겠지만 결론만 알고 싶은 성급한 사람인 나로서는 꽤나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굉장히 재밌다고 느꼈다.
어느 권위 있는 연구에서 사회심리학자 데이비드 나폴리탄과 조지 고설스 는 윌리엄스 칼리지 대학생인 피험자들에게 임상심리학 대학원생으로 분 한 어느 여성과 마주 보고 짧은 토론을 하라고 주문했다. 그 '대학원생'은 사실 친근하게 혹은 풍명스레 피험자들을 대하도록 훈련받은 연구원들의 동료였다. 그녀는 피험자의 절반에게는 따뜻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태도로 대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냉담하고 비판적이었다.
토론을 끝낸 피험자들은 그 대학원생의 성격과 관련한 문항이 적힌 설문지를 작성했다. 그들은 단순히 그 대학원생의 행동이 아니라 그녀 의 성격을 평가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피험자들은 그 대학원생을 딱 한 번 봤을 뿐이며, 토론 당시의 그녀의 태도 말고는 알고 있는 정보가 없었다. 당연지사, 그녀의 냉담한 연기를 본 사람들은 그녀에게 차갑고 방어적인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였고, 친근한 연기를 본 사람들은 따뜻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정작 뜻밖인 것은 이 절차를 약간 수정하여 새 피험자들에게 그 대학원생이 연구 때문에 친근하게 혹은 쌀쌀맞은 태도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렸을 때의 결과였다. 요는 이 추가 정보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피험자인 학생은 자신과 이야기하는 그 여자가 차갑고 비판적으로 행동하라고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의 '진짜' 성격을 차갑고 냉담하다고 평가했다. 피험자는 그 대학원생이 상황이 그러하여 그렇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이를 영속적인 어떤 특성, 다시 말해 퉁명스럽고 쌀쌀맞게 행동하고 느끼기도 하는 고질적인 성질 탓으로 돌렸다.
나폴리탄과 고설스의 실험과 맥을 같이하는 비슷한 실험이 수없이 행해졌고 결과는 다들 비슷했다. 피험자들은 언제나 사람들의 행동을 영속적인 특성 탓으로 돌리고, 누군가의 행동에 미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의 힘을 하나같이 과소평가한다. 오로지 자기 행동에 대해서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개인 사정에 합당한 무게를 둔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어 본 적도 없는 '근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 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근본적'이라는 말은 약간의 과장에 지나지 않는다. 오류의 규모는 문화마다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인간의 보편성이기는 하다.
핑키의 지적처럼, "누구나 타인의 행위를 예측해야 한다." 사람들의 행동이 이렇게 천차만별이라면 어떻게 이를 예측할까? 근본적 귀인오 류에서 보듯, 보편적 인간 본성뿐만 아니라 특정인들의 본성을 고려하는 것이 그 답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영속적인 특성이 있다고 보고, 여러 행위를 시료로 하여 그러한 특성의 실마리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설사 그 시료가 어찌하지 못할 만큼 부적절하다고 해도 말이다. 우리의 인간 본성 이론은 사람들이 일관되리라는 짐작으로 이어진다. 만약 슈퍼마켓에서 그 대학원생을 만나더라도 실험실에서처럼 친절하거나 불쾌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행위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영속하는 그 사람 내부의 어떤 것, 한때는 성품character이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성격personality이라고 불리는 것 때문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실제로는 빗나간 예측을 초래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일관되지 못하다. 하지만 다른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짐작할 수 있는 최고의 잣대는 그 사람의 과거의 행동이 어떠했냐는 것이므로, 논리적으로 타당한 실수이기는 하다.
21쪽
언어는 인간이 지닌 수많은 특별한 능력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개중에는 다른 종도 갖고 있는 능력도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은 진화에 의해 특별한 직무를 수행하도록 의도된 마음 기관이니 메커니즘이니 본능이니 하는 장치들로 가득하다고 믿는다. 마음은 무엇이든 가능한 마법의 주방용품이 아니라 분화된 용품을 갖춘 세트다. 양파를 자르는 것이 있고 기름에 볶는 것이 있고 손이 데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것이 따로 있다.
마음의 기관이나 메커니즘은 종이 진화하는 동안 그 종의 성원들이 중요한 작업을 성취해 내는 수단을 제공한다. 상당수의 경우 이 장치들 은 이 작업을 하기 위한 동기도 역시 부여한다. 아기는 어떠한 보상이나 격려가 없이도 말을 배운다. 그냥 말을 배우고 싶도록 태어났다. 태어나는 첫날부터 인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뜻을 알아들으려고 애쓰게끔 생겨 먹은 것이다.
인간은 또한 개개인을 식별하고 구분하는 데에도 능하다. 이는 단 순히 남녀를 구별하거나 어떤 여자가 너무 어리다, 너무 늙었다. 혼기가 찼다는 것 따위를 구별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특정한 사람들을 인식하고 기억한다. "인간은 개체를 대단히 중시한다"고 핑커는 지적한 바 있다. 나는 우리 인간 종이 이러한 목적을 위한 마음의 장치를 구비하고 있으며, 이러한 마음의 장치가 자체적으로 동기를 부여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기가 말을 배우려는 욕구를 타고나는 것처럼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에 대한 엄청난 관심도 생래적으로 갖고 태어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혹은 그전부터 사람들의 목소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아주 어린 아기도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고 엄마를 인식해 낸다. 누나나 이모, 혹은 보모를 눈으로 보거나 목소리를 듣고는 그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9쪽
사람들이 어떤 동인에서 움직이는가, 하는 문제는 모두의 관심사다. 일반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의 동인은 특히 궁금증을 자아낸다. 사람들이 모두 같은 동인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사람들의 차이에 매혹되게끔 생겨 먹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진화를 거듭해 오는 동안 특정한 개인의 동인을 앎으로 해서 그들의 행동을 예측하기가 한결 수월해졌기 때문에 그만큼 득이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할 것인지, 짝을 지을 것인지, 믿을 것인지, 무서워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미리 섰던 것이다. 이 책에서 앞으로도 이런저런 제안을 하겠지만, 인간의 뇌가 인물 정보 수집을 위한 특수한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는 나의 제안은 진화심리학의 원칙과 맥을 같이한다.
인물 정보 습득 장치는 정보 수집을 수행할 뿐 아니라 정보 수집의 동기도 부여한다. 우리는 의도적인 노력이나 연습,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인물 정보를 수집한다. 수집 자체가 보상인 셈이다. 얼굴 인식 모듈은 이러한 메커니즘의 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설사 얼굴을 모른다고 해도 그 사람의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이다.
35쪽
던바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 공유 능력이 인류의 조상들에게 중요한 생존과 번식의 이점을 지녔다고 믿는다. 그는 말한다. "한마디로, 언어는 남의 뒷말을 하기 위해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가십이 언어의 주된 목적이라는 제안은 내가 보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다. 수많은 중요한 가능을 수행하는 언어가 단순히 A가 B한테 C가 D랑 무엇을 하는가를 말해 주려고 진화했을 공산은 없다. 하지만 던바의 제안의 수위를 조금만 낮춘다면 그럴듯해진다. 언어가 진화한 이유에는 남의 말을 하기 위한 것도 있다고 말이다.
38쪽
자폐아에게 없거나 아니면 심각하게 손상당한 능력이 바로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자폐증 환자들은 사람의 얼굴을 일반인들이 사물을 처리하듯 처리한다는 신경생리학적 증거가 있다. 대상물을 구별하듯 사람을 구별하는 법을 배운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 그리고 자폐아들은 그런 일에 아무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정상적인 아기는 탐욕스런 눈길로 사람들의 얼굴을 응시한다. 자폐아들은 아니다. 사람을 식별하는 데 도통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인물 정보 습득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 뿐 아니라, 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면 정보 수집뿐만 아니라 동기부여도 시켜준다는 증거다.
자폐증을 지닌 사람들은 사람들이 행동하는 동인을 파악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그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행동 자체도 파악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인지과학자들이 말하는 '마음의 이론'이 없다.
39쪽
아직 자폐증에 관한 논문에서 언급된 바 없는 사실을 들자면, 이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마음의 변화도 인식하지 못한다. 자폐아들은 사람들이 성격을 달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며, 그 사실에 관심도 없다. 사람들마다 성격이 있다는 사실이며, 성격을 알면 그 사람의 추후 행동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 또한 자폐아들은 개인의 정보를 공유하려는 동기부여도 되어 있지 않다. 자폐아들은 남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40쪽
마음의 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비용은 만만치가 않다. 개중 고급 기관은 제대로 작동하기까지는 엄청난 진화의 시간을 요한다. 어느 것도 우연한 진화는 없다. 생존이나 번식이라는 측면에서 주인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데 진화하는 경우는 없다. 인물 정보 습득 장치가 작동하는 방식은 다음의 사항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이나 우리 인간 종이 진화를 거듭하던 당시에도 해당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에게는 성격이 있었고, 성격은 개인마다 달랐으며, 행위는 성격을 나타내는 표지였고, 사람들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일관성이 있었으므로 특정 개인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었다. 이러한 정보는 장차 그 개인에게 어떤 것을 예상할 것인가를 알려 준다는 차원에서 그만한 가치가 있는 정보였다.
41쪽
나의 가설은 진화가 성격을 유연하게 만들어 아이들이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이득을 얻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보탬이 될 만한 행동방식을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생존과 번식 경제에서 우위를 제공하거나 불리한 점을 개선하도록 하는 적응성을 가정한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고 나는 최선을 다해 이를 제공하고자 한다.
82쪽
연구원들 중 데이비드 라이스가 연구결과를 요약했다.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우리는 각기 다른 결혼 생활의 갈등, 형제에 대한 차별적인 육아, 그리고 형제끼리의 비대칭적 관계와 같은 가족의 특성이 청소년에 대해 비유전적인 비공유 영향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12년에 걸친 우리의 대규모 연구가 비유전적 비공유 요인을 규명하기 위해 계획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빈약한 연구결과는 실망스럽지 그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운이 솟는다.
라이스는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했다. "나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가 실토했다. 데이비드 라이스는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역학 가족치료사다. 가엾은 양반.
136쪽
'개인의 최초의 도식'의 일반화에 관한 피아제의 진술에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미셸이었다. 미셸은 아버지 도식과 관련된 부분을 인용한 다음, 부자 관계와 그 밖의 권위적 인물과의 관계는 거의 혹은 아예 닮은 데가 없다는 사설을 보여 주는 증거를 언급했다. "예를 들어, 아버지에 대한 태도와 직장 상사에 대한 태도의 상관계수는 0.03이었다."
(중략)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사람은 상황이 다르면 행동도 달라진다. 그는 이것이 성격심리학에 중대한 함축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180쪽
사람들이 일관된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미셸은 조기 학습의 일반화뿐 아니라 사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기질을 타고 난다는 사실, 다시 말해 성격에 미치는 유전적인 영향이 있다는 사실도 부인했다. 그는 "기저에 깔린 동일한 성향(혹은 '유전자형')"이 다양한 상황에서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견해에 반대했다.
지금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기저에 깔린 성향이 없다는 미셸의 생각은 틀렸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 즉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달리 행동하 며 '개인의 도식'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일반화되지는 않는다는 그의 말은 옳았다.
상황마다 행동을 달리한다는 사실은 <양육 가설>에서 장장 한 장에 걸쳐 이야기된 문제다. 그러나 각기 다른 두 상황에서의 개인의 행동방식이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은 한 적이 없다. 미셸이 그런 주장을 한 것도 아니다. 미셸의 논점은 그저 상관관계가 낮다는 것이었다. 나의 논점은 그 것이 놀라우리만치 낮다는 것이다. 유전자가 성격과 사회적 행동 분산의 45퍼센트가량을 차지한다는 행동유전학적 증거를 감안하면 말이다.
183쪽
아기의 행동에 대한 애착이론가들의 설명이 틀린 것은 없다. 나는 아기가 정말로 모자 관계에 대한 마음의 원형을 만들어 엄마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예측한다고 생각한다. 아기는 엄마와 있었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자기가 불안할 때 기분을 풀어 줄 만한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고, 반대로 엄마가 이런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사 후자의 결론이 난다 해도 아이의 삶이 망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이 내가 애착이론가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지점이다. 왜냐하면 엄마가 아이의 인생에서 유일한 사람은 아닐 것이며, 아이도 사람들이 모두 똑같다고 기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생후 12개월 동안 만나는 사람 이후 귀여움만 받은 아기도 낯선 사람이 안으려고 하면 겁을 먹고 울음보를 터뜨린다.
근본적 귀인 오류는 어른들은 사람이 일관되리라고, 실제보다 더 일관되리라고 기대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애착이론가들의 연구는 아기 역시 이러한 선입견을 지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실험실의 환경은 이런 연구에 참가한 아기에게는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아이는 이런 방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가 친숙한 환경에서 그랬던 것과 똑같이 행동하리라고 기대한다. 옷차림이 다르거나 머리 모양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기 엄마다. 그래서 엄마와 가졌던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아이는 엄마가 도움이 되거나 혹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를 다른 사람들에게 일반화하지는 않는다. 설사 그 사람이 엄마와 같은 성별, 같은 나이, 같은 색깔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아기는 낯선 사람을 향해 팔을 뻗지는 않는다.
연구원들은 산후우울증을 겪는 산모들의 아기가 엄마와 함께 있을 때 진지하고 조용하게 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보살펴 주는 다른 친숙한 사람과 있을 때는 정상적으로, 훨씬 생기 있게 행동한다. 연구원들에 의하면 이러한 조용한 행동은 "우울증에 걸린 엄마와의 상호작용에서만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 행동이 일반화되느냐 여부는 상황이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느냐 아니면 다른 것으로 간주되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에게 있어 '동일하다'거나 '다르다'는 것의 가장 확실한 단서는 아마 어떤 등장인물이 출연하느냐는 사실일 것이다.
191쪽
생후 첫 2~3년 동안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인간의 아기는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 영구적으로 손상된다는 증거가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아기는 모두 애착을 형성한다. 애착이론가들이 애착을 형성하느냐 못 하느냐가 아니라, 확고한 애착이나 불안정한 애착이냐를 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지어 엄마에게 학대를 당한 아기들도 엄마한테 애착을 형성한다. 비록 불안정한 애착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말이다.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아이는 어려서부터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전전하는 최악의 제도적 환경에서 흔히 발생한다.
(중략)
이러한 조기의 경험 때문에 두뇌가 앞서와 동일한 것만을 고집한다는 증거도 없다. 폴란드어나 한국어 혹은 기호언어를 제1언어로 쓰는 유아들은 나중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언어가 영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별로 구애받지 않는다. 청각장애 부모를 둔, 들을 수 있는 아이는 대체로 기호언어를 먼저 배우지만 이내 집 밖에서는 발화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어떤 언어를 먼저 배우느냐는 일단 아이가 어떤 언어든 배우기만 하면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집 밖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부모에게서 배운 언어와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열려 있다.
애착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유아가 생후 몇 년 사이에 어떤 애착이든 애착을 형성하기만 하면, 발달은 예정대로 이루어진다. 최초의 관계가 잘 굴러가지 않더라도 아이는 다음 번 관계는 잘되리라는 가능성에 열려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엄마처럼 행동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195쪽
부모는 자기들이 일본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터라 자식들이 너무 미국화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의 성공 여부는 아이들의 나이와 체류 기간에 달려 있었다. 미노우라는 아홉 살 이전에 캘리포니아에 와서 적어도 4년 동안 체류한 아이들은 완전히 동화되어 미국적인 사회 행동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들의 상당수는 일본으로 돌아가 또래들과의 사이에서 사회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해할 만큼 철이 든 아이들은 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미노우라는 일본의 규범에 맞는 사회 행동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네 살 혹은 열다섯 살로 상한선을 두고 있지만, 열둘 혹은 열셋이 넘으면 의식적인 변화의 노력을 필요로 했으며 상당한 노력이 들었다. 그보다 어린 아이들은 의식적인 노력이 없이도 사회규범의 변화에 적응했다.
278쪽
만장일치를 이룬 집단의 의견에 굴복하여 틀린 답을 낸 것은 총 실험 횟수 가운데 평균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러나 실험이 끝나고 난 뒤에 피험자들은 논평을 통해 자신이 난처한 처지에 처했다고 느꼈다고 분명해 말했다. 그들 모두 남들과 다르지 않으려는 욕구와 정답을 말하려는 욕구 사이에서 내부 갈등을 겪었다.
두 마음 체계-하나는 순응하려는 동기를 부여하고 다른 하나는 남보다 앞서려는(이 경우에는 남보다 정확하려는) 동기를 부여한다-가 상 반된 지시를 내린 것이다. "행동은 여러 마음 모듈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적 투쟁의 결과이고, 타인들의 행동에 의해 규정되는 기회와 제약의 체스판 위에서 벌어진다"고 스티븐 핑커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말했다. 이러한 내적 투쟁은 대개는 조용히 치러지지만 간혹 충돌의 소음이 의식에까지 도달할 정도로 커지기도 한다. 간혹 이 소음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한다.
316쪽
순응과 경쟁의 동기가 타고난 장치에 의해 제공되는 것이라면 어떠한 외적인 보상이나 처벌이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보상이나 처벌이 없다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이 성공적인지 아닌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환경으로부터의 피드백, 즉 사회적 피드백이 요구된다. 집단의 기준에서 벗어나게 되면 조직에서의 용인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러므로 사회화 체계는 집단수용도 정보를 이용하여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를 매순간 체크한다. 지위 체계가 요구하는 정보는 이와 다르다. 진화 심리학자 리 커크패트릭과 브루스 엘리스가 지적했다시피, 조직에서 받아들여지는 것과 그 조직 내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며,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격렬한 지위 다툼이 사회 편입을 저해할 수 있어 자고로 '정상은 외로운 법'이다." 커크패트릭과 엘리스는 인간은 다양한 사회생활 영역에서의 성패를 감시할 수 있는 일련의 '사회계량기sociometer'를 갖추고 있다고 제안했다. 이 계량기는 집단수용도를 꾸준히 체크해 주는 장치와 지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를 포함한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연구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이 실험 에서 대학생들은 각기 다른 두 가지 (가상의) 사회적 피드백을 제공받았다. 하나는 집단의 수용 혹은 거부에 대한 피드백이고 다른 하나는 집단의 다른 하나는 집단의 다른 성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피드백이었다. 연구원들은 그 두 유형의 피드백이 피험자들의 자아존중감에 독자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은 집단의 일원이 된 것을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조직 내의 자신의 지위에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혹은 그 역도 가능하다.
이처럼 두 가지 별개의 자아존중감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놀이터에서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남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기분 나빠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덩치 크고 거친 아이들은 대개 미움을 사기 때문에 많은 발달심리학자들은 그 아이들의 자아존중감이 낮을 것이라고 가정해 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공격적인 어른이 자아존중감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공격적인 사람들은 집단수용도의 측면에서 음의 피드백을 지닐 수도 있겠지만, 모이 쪼는 서열에서 자신의 지위에 대한 양의 피드백으로 이를 상쇄한다. 대부분의 자아존중감 검사는 이 두 가지 유형의 피드백의 영향을 뭉뚱그려 나타낸다.
317쪽
공부에서의 자아존중감을 측정하면 지위 체계가 사회화 체계와 중 돌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다. 평균 이상의 학력을 지닌 아이는 대개 공부에서의 자아존중감이 평균 이상이다. 그러나 이 아이의 학력이 그저 평균 수준에 지나지 않는 아주 엄선된 학교에 이 아이를 넣으면 공부에서의 자아존중감은 떨어진다. 그렇다면 그 때문에 아이의 학교 성적이 떨어질까? 아니다. 그것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사회화가 이뤄진다. 아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준을 따른다. 25년에 걸친 연구 결과, 아이들은 유능한 학생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학교와 학급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학업 성취와 지적인 활동을 바라보는 태도는 아이가 사회화를 통해 흡수하는 문화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318쪽
지금 필요한 것은 유년기의 덩치나 힘과 성인기의 성격 간의 관련성이다.
이러한 연관성은 신장에 대한 장기적인 종단 연구에서 드러난다. 출발점은 우선 연구를 통해 드러난, 평균적으로 키가 큰 남성이 작은 남성에 비해 급여 수준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차이는 무시해도 좋은 정도가 아니다. 각 인치별로 연소득이 약 800달러 정도 차이가 난다 진화심리학자는 이러한 발견을 놀라워하지 않지만 경제학자는 곤혹스러워 한다. 문제의 근로자는 농구 선수도 아니고 전구를 갈아 끼우는 사람도 아니다. 대부분은 그냥 책상에 앉아 있다. 그저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인데 키가 큰 사람이 왜 고용주에게 더 많은 임금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최근에 세 명의 경제학자, 니콜라 페르시코, 앤드루 포슬웨이트, 댄 실버맨이 이 문제를 풀겠다고 나섰다. 다행히 그들은 방대한 양의 정보가 담긴 두 개의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냈다. 거기에는 약 4500명의 미국인과 영국인 백인 남성의 임금과 성년기의 키(약 서른 살쯤), 열여섯 살 때의 키, 그리고 그 피험자들의 절반가량은 일곱 살과 열한 살 때의 키도 나와 있었다. 게다가 피험자들에 대해 상당히 많은 배경 정보도 담고 있었다.
경제학자들은 컴퓨터에서 연기가 날 지경까지 자료를 분석했지만 키가 큰 사람들이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이유는 찾지 못했다. 되레 그들은 또 다른 수수께끼에 봉착했다. 그들이 알아낸 바로는 고용주들이 키 자체에, 다시 말해 성인이 되어서의 큰 키 때문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었다. 임금에서 중요한 사항은 성인기의 키가 아니라 청소년기의 키다. 성인이 되어서 평균 키보다 큰 사람은 청소년기에도 평균 키보다 컸을 공산이 크지만 개인의 서열은 다를 수 있다. 경제학자들이 각 연령대별로 신장의 영향을 통계적으로 분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들은 급여가 가장 높은 남자들이 나이 서른에 반드시 키가 가장 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지만 열여섯의 나이에는 키가 제일 컸던 것이 사실이었다. 일단 열여섯 살 때의 키를 통계적으로 대조하고 나자 일곱 살과 일한 살 때 의 키는 그다지 중요한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
경제학자들은 '십대의 키 프리미엄teen height premium'을 설명할 수 있는 몇 가지 가설을 테스트했다. 유년기의 건강 차이는 이를 설명해 주지 못했다. 피험자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갖는 기능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살펴본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십대의 키 프리미엄의 3분의 1가량을 설명해 준, 고등학교에서의 과외 활동, 특히 스포츠 활동의 참여였다.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려면 덩치뿐만 아니라 힘도 필요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운동선수들은 대개 또래들 사이에서 지위가 높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고용주들이 단지 키가 큰 직원을 고용하기 위해 추가 요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결론이었다. 고용주들은 무언가 다른 것, 말하자면 청소년기의 큰 키와 스포츠에 능하다는 사실과 관련된 어떤 것, 성인기까지 지속되는 어떤 것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 것이었다. 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그들이 답을 어디에서 찾을지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답을 제공한 것은 훨씬 더 오래전에 이루어진, 그리고 훨씬 규모가 작은 어느 연 구였다. 아니, 이번에는 사회심리학자가 아니라 발달심리학자다. 그녀의 이름은 메리 커버 존스로, 그녀의 연구가 간행된 것은 1957년이었다. 내가 아는 한 여태껏 이 연구는 되풀이된 적이 없다. 세 명의 경제학자들이 간접적으로나마 한 것 빼고는 말이다.
존스는 두 가지 유형의 피험자를 연구했다. 골격 성숙의 면에서 동일 연령에서 하위 20퍼센트에 속하는 성장이 느린 십대 소년과 상위 3퍼센트에 해당하는 성장이 빠른 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였다. 이 소년들은 체구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차이가 가장 많이 벌어진 것은 열네 살 때였는데, 성장이 빠른 아이는 느린 아이보다 평균적으로 키는 무려 20센티미터가량, 그리고 몸무게는 15킬로그램가량 차이가 났다.
청소년기의 체구와 힘, 운동 능력(존스는 지나가는 말로 언급한 적이 있다)의 두드러진 차이는 성격과 사회 행동의 차이를 수반했다. 전문 관찰자들이 매긴 등급에서 성장이 빠른 아이들은 '자기수용을 시사하는 행동 항목'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그 아이들은 침착하고 느긋하고 현실적이었다. 이와 반대로, 성장이 느린 아이들은 열심이고 수다스럽고 긴장이 팽배하며, "영향 받기 쉽고" 남의 "관심을 좇는다"고 존스가 묘사한 독특한 특징을 지닐 공산이 크다. 나이에 비해 체구가 작은 소년들은 또래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 밖에 이러한 소년들이 정신장애를 앓을 비율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한 연구원들도 있다.
성장이 느린 아이들은 결국 체구에 집착하게 된다. 존스가 30대 초반이 된 그들을 다시 방문했을 때 두 피험자 집단의 키 차이는 평균 1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교육 정도도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성장이 빨랐던 아이들은 직장에서 존스가 말하는 '지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status-conferring' 위치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두 집단 사이에는 요즘 표준인성검사에서 측정되는 식의 두드러진 성격 차이도 여전했다. 일찍 성숙한 아이들은 지배와 관련한 성격특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존스의 연구와 세 명의 경제학자가 행한 연구는 레고 블록처럼 아귀가 잘 맞는다. 큰 키와 힘, 그리고 운동 능력 같은 특성이 청소년기의 또래집단에서 높은 지위를 부여하며, 이러한 청소년기의 지위가 성격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강하며, 지배적이고, 경쟁적이며, 리더의 자질을 보인다. 이러한 성격상의 특성이 고용주뿐만 아니라 유권자에게도 좋은 인상을 준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 흔히 키가 큰 쪽이 당선된다.
청소년기의 키가 유년기의 키보다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는 성격이 열여섯 살이라는 늦은 나이까지 바뀔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이는 1장에서 언급한 바 있는 인생 전반에 걸친 성격발달 연구결과와 맥을 같이하며, 지위 체계가 사회화 체계보다 느린 속도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열여섯은 남자아이가 자신감 있는 성격을 발달시키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몇 년을 살았던 일본인 중역의 아들이 일본의 사회 행동규범에 새롭게 적응하기에는 늦은 나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민자가 원래 모국어의 억양 없이 새로운 국가의 언어를 배우기에도 늦은 나이다. 각 체계는 제 나름의 발달상의 시간표를 지닌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경험에 의해 성격이 바뀌기도 한다. 소심한 아이가 소심한 어른이 되고 성실한 아이가 성실한 어른이 된다는 식으로, 아이의 성격이 초기에, 아마도 가정에서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고 믿는 이론가들은 성격의 지속성을 오해한 것이다. 이런 지속성은 주로 소심하 다느니, 성실하다느니 하는 이러한 특성에 미치는 유전적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329쪽
1934년 조지 허버트 미드는 다음과 같이 일렀다.
개인은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자신과 동일한 사회집단의 다른 성원들이 지닌 특정한 관점에서, 혹은 자기가 속한 사회집단 전체의 일반화된 관점을 빌려 오로지 간접적으로만 자신을 경험한다.
사회학자 계리 파인은 좀 더 간결하게 적고 있다. "타자는 자기를 알 수 있는 거울이다." 파인이 말한 '타자'는 미드가 말한 일반화된 타자다. 즉, 한데 합치거나 평균화된 타인이다.
그러므로 지위 체계 역시 자료를 수집하고 통계를 낸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부모가 해주는 말(그들은 여러분이 멋지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이나 여러분의 형제가 해주는 말(놀리기만 한다)이나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가 해주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일반화된 타자가 여러분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타자의 시선이 더 정확하고, 그 때문에 어느 한 개인의 의견보다 더 큰 예언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332쪽
나는 마음 체계가 환경으로부터 특정한 종류의 신호를 받도록 맞춰져 있다고 제안한다. 이들 신호는 유년기에 시험해 볼 수 있는 행동 전략을 펼치도록 도와주며, 혹시 결과가 실망스럽거나 나중에 좀 더 전도유망한 전략이 나오게 되면 기존의 전략을 폐기하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체계는 많은 지력을 요하며 발달을 완성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인간의 아이들은 이 두 가지 전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유아기, 유년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나온 대접을 받는다. 이들은 부모, 교사, 또래, 고용주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존경을 받는다. 이는 곧 어떻게 생겨야 잘생기고 어떻게 생겨야 못생긴 것인가에 대한 폭넓은 합의가 도출되어 있다는 의미이며, 또한 책의 표지를 보고 책의 내용을 판단하는 보편적인 경향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아니, 그건 공평하지 않다. 하지만 진화는 공평함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다들 예상하다시피 잘생긴 사람들은 자기주장과 자신에 대한 확신이 좀 더 강한 편이다. 어느 실험에서는 참가한 여성 피험자에게 무례한 대우를 한 것은 물론이고, 가짜 인터뷰를 하는 도중 연구원이 방을 나가버리기까지 했다. 매력이 떨어지는 여자들은 그냥 앉아서 기다리다가 평균 9분이 지나서야 불만을 제기했다. 반면에 매력적인 여성들은 3분 20초 만에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강한 자기주장을 초래한 것은 잘생긴 외모 그 자체가 아니라 잘생긴 외모가 갖는 사회적 영향이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예쁜 여자아이들은 또래들 사이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사실, 여자아이가 예쁘다는 것은 남자아이가 키가 크고 힘이 세다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문제는 이것이다. 지위가 단순히 누가 누구를 지배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면 아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 알게 될까? 앞 장에서 주목 구조를 설명한 바 있다.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인간이든 유인원이든, 집단에서 지위가 높은 성원들은 지위가 낮은 성원보다 자주 시선을 받는다. 그리고 사이먼 배런-코헨이 남의 의중을 읽는 메커니즘 모델에 포함시킨 시선 탐지기에 대해서도 이미 언급을 했다. 내가 이름 붙인 응시탐지기는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마다 작은 경보음을 울린다.
남의 시선을 많이 받는 사람은 더욱 자신만만해지고 집단 내에서 큰 목소리를 낼 공산이 크다. 캐나다의 어느 미디어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집단토론에 참여한 각 참가자들에게 다른 참가자들의 영상을 보여 주는 화상회의 장비를 테스트했다. 과학자들은 영상을 조작해 간혹 특정한 참가, 즉 실험의 피험자를 정면으로 화면에 잡았다. 화면에 더 많이 잡히는 피험자일수록 토론에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 응시의 타이밍도 문제가 아니었고, 어떤 매체를 통하느냐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피험자가 받는 응시의 횟수었다. 의식의 차원 밑바닥에서 작용하는 단순 셈 장치counting device가 회의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을지, 아니면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를 말이라도 무심코 내뱉고 말지를 결정한다.
셈 장치는 지위 체계에 속하는 요소다. 투표 기계가 득표수를 계산하듯 응시 횟수를 센다. 그리고 이유 또한 상당 부분 동일하다. 이 장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평균 계산처럼 득표수 계산은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서도 관찰되어 왔다.
(중략)
자신이 응시의 눈길을 받는 횟수를 셈하는 것은 아이와 성인이 자신의 지위를 평가하는 방법으로서, 지위 체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서 가운데 하니다. 그러나 응시의 눈길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사회적 삶은 복잡하고 지위는 다차원적이며 아이들이 쓸 수 있는 전략은 끝이 없다. 아이들에게는 좀 더 미묘하고 세세한 정보, 단순히 표수를 세는 것으로는 전달될 수 없는 정보가 필요하다.
이상적으로 볼 때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들이 어떻게 비치는가, '일반화된 타자'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정보다.
(중략)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의 일부, 그것도 아주 중요한 부분은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를 분간해 내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은 서서히 발달하고 그리 정확한 편은 아니며, 개중에는 이 능력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소년과 성인은 타인이 자기에게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두고 합당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 흔히 우리는 얘기 상대가 우리를 좋아하는지, 존중하는지, 우리에게 성적으로 끌리는지를 알 수 있다.
327쪽
어떤 상황이나 어떤 행동을 놓고 보면, 집단 내에서 행동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이 이득이다. 사회화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일례로, 집단 내의 의사소통은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말하고 같은 억양을 지니면 가장 잘 이뤄진다. 더 나은 의사소통은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이롭다.
또 어떤 상황이나 어떤 행동을 놓고 보면, 개인의 행동 차이를 극대화하는 것이 개인에게 이득이다. 유전에 의한 것이 아닌 성격 차이는 처 음에는 달리 행동한 결과다. 나중에 가면 성격 차이가 행동의 차이를 부른다. 나아가 성인의 삶의 행보가 달라진다. 그러한 차이가 지속되는 이유는 뇌의 다른 유전자가 작동되거나 가동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위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의 결과로, 일란성 쌍둥이조차 성격이 달라진다. 한집에서 컸든 다른 집에서 컸든, 아니면 한 집단에 속하든 다 른 집단에 속하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든 가까운 패거리는 두 사람을 별개의 개인으로 볼 것이다. 일단 별개의 사람으로 보고 나면 두 사람이 쌍둥이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은 쌍둥이 가운데 하나이든, 형제자매 가운데 하나이든, 아니면 친구들 가운데 하나이든, 개인으로만 비쳐질 뿐이다. 우리는 사람을 유일무이한 개개인으로 본다. 관계 체계가 그들을 구별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인 것이 아닌 인간의 성격 차이는 여러분 머릿속의 관계 체계와 내 머릿속의 지위 체계의 합작품이다.
관계 체계와 지위 체계의 합작품은 쌍둥이만 차별화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그리고 쌍둥이끼리만 서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각 쌍둥이를 다른 모든 사람, 집단 내의 모든 사람, 성별과 연령이 같은 모든 사람들과 구별한다. 성인기에 서로 경쟁해야 하는 모든 사람과 구별하는 것이다.
361쪽
노동 분업은 개미 집단이 그런 것처럼, 인간 집단의 창발적 특성이다. 사회화 체계는 아이한테 순응하게끔-'나는 남이 하는 대로 한다'- 동기를 부여하는 반면, 지위 체계는 어쩌면 다른 누구도 하지 않는데 아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나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한다'-을 찾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이 모든 것이 일란성 쌍둥이의 행동의 차이를 만들거나 그 격차를 넓힌다. 이러한 차이가 지속되는 경우 두뇌 차이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과가 되기도 한다. 행동의 차이는 다른 시냅스를 형성하고 다른 유전자의 발현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뇌 변화는 이러한 행동을 지속시킨다.
지금까지 설명한 세 가지 체계는 제각기 사람들에게 사회 환경의 특정한 측면에 적용하거나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371쪽
왜 부모는 자녀의 인생에서 자신의 중요성을 그렇게나 확신하는 것일까? 왜 아이의 미래의 성패가 현재 집에서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믿는 것일까? 나는 오랫동안 이 질문에 천착해 왔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
(중략)
세 번째 가설은 부모의 힘에 대한 감정은 우리 문화의 특색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힘과 동전의 양면에 있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다. 아이가 잘못되면 그것이 부모의 잘못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이 유럽과 미국 문화의 일부로 뿌리를 내린 것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때문이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저술 활동의 대부분을 20세기 초에 했고, 부모의 책임이라는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퍼지기 시작했다. 두 가지가 필요한 촉진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나치가 저지른 짓과 그 이유를 알고는 행동의 유전적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프로이트 이론의 해석이 부모를 위한 조언을 다룬 책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이 개념을 보급하는 데 앞장 선 사람은 상담을 많이 했던 소아과 의사 벤저민 스폭이었다.
상호적으로 작용하는 이 두 가지 문화의 영향은 평범한 중산층 부모의 육아 철학에 일대 격변을 일으켰다. 194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어린 꼬마였을 때는 문제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다"는 것이 주된 견해였다. 나는 문제아였고 부모님은 나를 비난하기보다 측은해하셨다. 당신들은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운이 없다고 느꼈다. 그로부터 불과 10년 후에 죄책감은 육아를 묘사하는 일부가 되었다. 덴마크 사회학자 라스 덴식이 주장했다시피, "최근에 부모와 그 밖에 육아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저주처럼 내려진, 아이의 관심사에 충분한 관심을 쏟지 않았다고 책하는 양심의 가책은 사실 현대에 접어들어 나타난 아주 새로운, 그리고 비교적 독특한 감정이다."
북미와 서유럽의 중산중 가정에서, 현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도래했고, 일련의 문화적 통념이 뒤따랐다. 전통 문화의 사람들이 아이의 결함을 임신 중에 산모가 먹고 본 것이나 질투에 사로잡힌 아웃의 저주나 신에 의한 응징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우리 문화의 사람들은 아이의 결함을 자식이 태어난 후 부모가 잘못한 짓의 탓이라고 돌리고 있다.
새로운 통념은 기존의 통념을 대체한다.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이 어떤 것을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인 것은 아니다.
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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