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로 현실이 새로운 꿈이 되기도 한다. 그저 안정적이고 좋은 직업을 갖겠다는 현실적인 계산으로 힘겹게 고시 공부를 했지만, 판사로 일하면서 느낀 보람 때문에 어느새 좋은 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내가 꾸었던 것처럼.
꿈도 현실이 되고, 현실도 꿈이 된다. 결국 이 모두가 그저 살면서 거쳐가는 과정일 뿐인 것은 아닐까. 김민기가 <봉우리〉에서 노래했듯이 말이다.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른 봉우리로 다시 이어진다고.
3일 동안 매일 마라 강가에서 기다렸지만 누는 계속 망설일 뿐 강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나는 끝내 누가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당연했다. 어느 강둑 한 편 죽음이 도사리지 않은 곳은 없었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해 건넌 곳은 이곳에 비하면 시냇물은커녕 도랑조차 되지 못한다. 누메 앞의 비탈은 가팔랐고 강 속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가득했다. 그래도 결국 어느 날엔가 누는 문득 뛰어내려 강을 건널 것이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13쪽
책에 나오는 뻔한 악당, 뻔한 기득권자, 뻔한 위선자는 되지 말자. 개천에서 용 나서 고시 합격하고는, 윗사람한테 아부하고 출세를 위해 아등바등하면서 강자 편에만 서는 오만한 엘리트? 그건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에서 천 번은 본 것 같은 전형적인 판검사 캐릭터 클리셰였다. 덕후의 자존심이 있지, 한 번 사는 인생 그렇게 촌스럽게 살고 싶진 않았다. 내가 이래 봬도 소싯적부터 순정만화로 프랑스혁명을 공부하고 할리우드 영화로 헌법 정신을 배운 사람이야. 이건 거창한 윤리•도덕적 결단이라기보다 미학의 문제, 취향의 문제였다.
(중략)
교외 멋진 주택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강아지 키우며 잘 먹고 잘살지만 쪽팔린 짓은 안 하며 사는, 인생에 한 번 용기 낼 때는 용기 내는('한 번'이 핵심이다) 캐릭터 말이다. 이 또한 클리셰 중의 클리셰지만, 기왕 하려면 주인공 캐릭터 클리셰를 해야지 뻔한 빌런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렇다고 독립 영화, 예술영화에나 나오는 독특한 캐릭터를 하는 건 춥고 배고프고 외롭잖아.
자, 그렇다면 뭘 그렇게 법원을 바꿔놓고 싶고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바꿔놓고 싶었냐고? 숫자 세 개로 간략히 대답할 수 있다. 나는 1969년생, 88학번이고 1997년에 판사가 된 사람이다. 전두환 시대에 중고교 시절을 보냈고 YS 말기 IMF사태가 터질 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소리다. 그 당시의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이었다. 지금의 선진국 대한민국과는 아예 다른 나라였다. '뉴진스'와 '국보자매'만큼이나.
당시 나는 우리 사회가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온통 권위주의와 집단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며 시스템보다 음험한 거래와 이권에 따라 움직인다 생각하면서 그 촌스러움에 치를 떨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언제나 동경해왔던 (책으로 배운) 미국식 법치주의, 자유주의, 다원주의, 인도주의, 세련된 세속주의가 자리 잡기를 열망했다(그로부터 24년이 지나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선에 불복하여 물소뿔 모자를 쓴 채 의회를 습격하고, 히피즘의 성지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상점들이 백주에 약탈당하고, 도시마다 펜타닐 중독자들이 좀비처럼 꺾인 허리로 흔들거리고 있을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의 나는 꽤나 시건방진 녀석이었다. 본디 기성 질서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성향에다가, 나름대로 성장기에 풍파 많고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오히려 과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엘리트 그룹 내에는 유복한 환경에서 엄마 치맛바람과 고액 과외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많기 마련인데, 나는 그들에게 참 감사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다 제칠 수 있는 온실 속 화초들로 보여서.
젊음이란 참 단순해서 세상을 쉽게, 선명하게 규정한다. 그때의 내 생각은 이랬다. 출세하겠다는 야망,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겠다는 욕망만 포기하면 헌법상 판사는 '언터처블'이다. 판사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지덕지다. 어차피 더 고위직으로 올라간다고 연봉 차이가 큰 것도 아니고 일이 적어지는 것도 아니다(나는 젊을 때부터 매우 실리적이었다). 전관예우 문제에 대해서도 애초에 선배를 그닥 존경하지 않는데다가 혈연, 학연, 지연은 고사하고 인생이란 열 명 미만의 사람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극도의 개인주의 성향이라 누가 부탁하든 콧방귀도 안 뀔 자신이 있었다(실제로 그랬다. 매몰찬 인간 같으니).
바로 그런 개인주의 성향 탓에 변호사를 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 개업할 경우에 대비해서 누구한테 잘해주며 인맥을 쌓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군사독재 시절처럼 군인들이 법원에 난입하고 판사를 협박하는 시대도 아니니 무서울 것이 없지 않나. 업무 자체에 대해서도 당시 나는 재판을 수학처럼 정답이 있는 문제풀이로 보았다. 법이라는 채점기준이 있지 않나. 윗사람의 압력이니 전관예우니 신경쓰지 않고 내가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풀기만 하면 정답을 맞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35쪽
살인, 강간 등 흉악범죄와 권력형 범죄에 대한 형량을 대폭 올리는 반면 곤궁 범죄나 치료가 필요한 피고인에 대해서는 처벌은 하되 재범 방지를 위한 대책도 모색하는 '문제해결 법원'식 접근을 시도하는 방향이었다.
일이 많아서 몸은 고됐지만 솔직히 신이 났다. 사람이란 참 묘해서 놀기만 한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나도 참 노는 것 좋아하는데(오죽하면 책에 '나는 놀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글까지 썼겠나) 돌이켜보면 가장 신나고 행복했던 시절은 뭔가에 꽂혀서 온 힘을 끌어올려 일에 매진한 때였던 것 같다. 초임판사 때의 열정이 다시 돌아온 듯했다. 행정처에서 느꼈던 실망감과 좌절감이 치유됨을 느꼈다.
마침 당시 같이 일하던 동기와 후배들 중에는 '좋은 재판'을 해보겠다는 열정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면 법원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다시 차오르곤 했다.
이 초임 부장판사 시절이 내 특유의 나이브한 이상주의적 열정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이었던 것 같다. 그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밤마다 글까지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청탁한 적 없는데도 '초임부장 일기'라는 제목으로 법관 게시판에 연재를 시작했 다. 그 내용은 재판 개선에 관한 아이디어, 법원의 경직된 조직 문화에 대한 풍자, 인상 깊었던 재판에 대한 소회 등등이었다.
64쪽
그 외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무나 평화롭게,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평화로운 일상의 대화들만 나누시더라. 역시 엘리트들은 나이스하다. 젠틀하고.
<미스 함무라비>에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고민해서 묘사했지만, 머리로 이해했을 뿐 몸으로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나는 강자였기 때문이다. 피해자, 약자의 처지를 나름대로 공감하려고 노력했지만 나 스스로가 그 처지에 놓인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공부 하나 잘해서 젊은 나이에 과분하게 출세한 사람이고, 조직에서도 인정받아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다. 오만할 정도로 자존감이 강하여 일생 열등감이라고는 느껴본 적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경쟁 앞에서 오히려 느긋했다.
누군가 감히 불합리한 공격을 가한다면 내가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치밀하게 반격할 의지도 충분했다. 마음만 먹으면 지독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강자였다. 피해자는 내게 절대로 걸맞은 정체성이 아니다. 나는 단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조심하려는 '나이스한' 강자로 자신을 규정해왔다.
그런 나도 결국은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마치 학급에서 왕따당한 중학생처럼 움츠러들어버렸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구내식당에서 먹지 않고 샌드위치를 배달시켜 판사실에서 혼자 점심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거의 1년 동안······ 그제야 내가 글로 묘사하던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 피해자들이 어떤 심정일지 만분의 일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동안 안다고 여긴 것은 착각이었다. 인간이란 왜 직접 당하지 않고는 진짜로 타인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처음으로, 아무 의심 없이 평생 법관으로 살아가려던 마음을 접었다. 그로부터 1년여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이 책 첫 머리에 나오는 두번째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의 첫번째 삶을 떠났다.
75쪽
여행도 휴식도 일과 일 사이의 재충전일 때 꿀처럼 달았다.
그렇지 않을 때는 그저 똑같은 일상일 뿐이었다. 그것도 왠지 모를 불안과 초조함, 무력감 속에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는 듯한 일상. 나는 법원생활 내내 내가 베짱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일개미였던 것이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일과 결부되어 있다. 처음으로 형사단독판사가 되어 매일 야근하면서 동료들과 각자의 사건에 대해 격렬하게 토론하던 기억, 파산부에서 파산제도 개선을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하던 기억, 형사합의부 재판장이 되어 좋은 재판을 해보겠다며 배석판사들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하느라 애쓰던 기억, 『개인주의자 선언』을 쓰고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같은 신문 칼럼을 쓰면서 내 딴에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문제제기를 해보려고 노력하던 기억.
물론 놀 때도 즐겁기는 하지만, 보람 있는 일에 신나게 몰두하여 내 에너지의 100퍼센트를 쏟아넣을 때의 만족감은 다르다. 삶의 밀도가 다른 느낌이다.
154쪽
위 64쪽에 언급된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내 시간 설계의 기술>, <전진의 법칙> 등 요즘 재밌게 읽은 다른 책과도 통한다. 사람이 마냥 놀면 행복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그렇지가 않다. <내 시간 설계의 기술> 리뷰에도 언급했지만 나도 진짜 내 시간 자유롭게 쓰면 내가 뭘 많이 하기도 하고 인생이 즐거울 줄 알았는데, 회사 다니면서 평일 깨어있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일하며 보내는 지금이 더 즐겁다. 물론 일이 고통스럽기만 하지 않고 나름대로 즐거운 점이 있으려면 이런저런 조건들이 필요하지만! (그래서 그 포인트들이 항상 궁금해서 이런저런 조직문화, 기업문화, 생산성 등에 대한 책을 읽곤 한다)
내가 만약 국문과나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면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처럼 평생 온갖 이야기를 상상만 했다면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소설가로서도 극작가로서도 비범한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야기꾼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이유로 택한 법관의 삶이 작가의 길을 열어주었다. 판사는 이 사회 구석구석의 수많은 '진짜 이야기'를 평생 들여다보며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처음 판사가 되었을 때만 해도 내가 나름대로 힘든 일들을 겪으며 성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도 안 되는 착각임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는 내가 상상조차 못한 끔찍한 빈곤과 폭력이 가득했다. 파산부에서는 모든 것을 잃고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일 들어야 했고, 가사재판을 할 때는 한때 사랑했던 부부가 서로를 인간쓰레기로 매도하는 이야기를 매일 들어야 했다. 전국을 통틀어 드물 것이라고 생각했던 친딸 성폭행 사건이 내가 근무했던 한 도시에만도 1년에 수십 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란 왜 이렇게까지 잔혹한 것일까. 자꾸만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그리고 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피가 흥건한 응급실에 붕대와 반창고 몇 개만 들고 서 있는 듯한 무력감을 느꼈다. 첨예하게 다투는 살인 사건의 유무죄를 여러 날 잠 못 이루며 고민할 때는 정말이지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오판하면 합법적인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직이 판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겪은 진짜 경험이, 나를 뒤흔든 진짜 감정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 나도 모르는 새 조금씩 작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히 있지만 이야기를 만들고 전달하는 방법은 미숙한 내게 드라마는 좋은 매체였다. 소설은 오로지 내가 쓴 글에만 의지해야 하지만 드라마는 수많은 동료에게 의지할 수 있었다. 배우, 연출, 카메라감독, 미술감독, 음악감독, 프로듀서들······ 설계도만 그리면 거기에 다채로운 색을 입힐 동료들이 있었다. 내 글이 드라마가 되어가는 놀라운 과정을 지켜보면서 짜릿했다. 마술 같았다.
방영이 된 후에는 또 새로운 기쁨에 눈을 떴다. 내가 쓴 이야기를 보면서 웃고 울고 감동해주는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나는 그때 시청자 댓글, 드라마 커뮤니티의 글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찾아 읽었다. 드라마의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보아주는 이들의 정성스러운 글들, 드라마에 나온 장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올린 글들을 밤마다 읽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절 혼자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상상만 할 때는 모르던 기쁨이었다. 종영 후에는 드라마 팬들이 감상문을 모아서 두툼한 책으로 만들어 보내주기까지 했다.
174쪽
누군가는 싸구려 천만 영화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의 고급 취향을 자랑하고, 누군가는 칸에서 상 탔다고 잘난 척하는 지루한 예술영화는 무조건 거른다며 학을 뗀다. 과연 모두가 동의하는 좋은 글, 좋은 이야기라는 게 있긴 있을까? 물론 좋은 콘텐츠가 가져야 할 여러 덕목이나 오랜 시간 발전해온 창작 이론, 비평 기준을 깡그리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이론도 무엇이 좋은 콘텐츠인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정답을 안다면 오만이다.
결국 나는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누가 좋아하는 글을 쓸 것인가?
글 자체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찾으려는 '절대주의적 관점'에서 수용자 집단의 취향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는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시각을 바꿔본 것이다. 신기하게도 질문을 달리하니 그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극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나는 누구에게 말을 걸고 싶은 것인가. 왜.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니 비로소 질문 뒤에 숨어 있던 것이 드러났다. 욕망이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추상적이고 '누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은가? 왜?'라는 질문은 구체적이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기만 하다면 답을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뻔뻔할 만큼 솔직하게 자문자답해보자. 돈을 벌고 싶은가? 그러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좋아할 쉽고 대중적인 이야기를 쓰는 게 성공 확률이 높다. 대신 그런 거나 쓰고 있느냐는 비아냥을 들어도 감수해야 한다. 스스로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해 괴로울 수도 있다. 명예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 분야에서 가장 눈 높은 독자들과 평론가가 좋아할 예술적인 이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신 배는 고플 가능성이 높다. '가장 눈 높은' 이라는 수식어 자체가 개념적으로 소수를 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중에는 누군가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취향을 증명하려는, 인정욕구가 강한 이들도 상당히 많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진짜로 세상을 낫게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와 생각이 반대인 사람을 대상으로 조심스럽게 최소한이라도 공감대를 찾아가는 글을 써야 한다. 그게 아니라 '세상을 낫게 만들고 싶은 사람인 척'해서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은 게 진짜 목적인가?
그렇다면 나와 같은 편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른 편인 사람들을 최대한 극렬하게 욕하고 비웃는 글을 쓰며 선명성을 과시해 야 한다.
182쪽
잘 시작하고도 번번이 특정 지점에서 벽에 부딪혔다. 바로 나 자신이라는 벽이다.
나는 초능력 히어로물을 구상해놓고도 정작 집필에 들어가면 자꾸만 자기 자신이 초능력자가 진짜 맞는지 혼돈과 회의에 빠진 햄릿을 그리거나, 반대로 실제로는 아무 능력이 없는데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고 착각한 바보가 우연의 일치로 세상을 구하는 돈키호테 이야기로 빠지곤 했다. 초반 기획에 관심을 보였던 투자자들은 주인공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초능력을 어떤 비주얼로 멋지게 보여주며 사이다 활약을 펼칠지 보고 싶어하는데 나는 자꾸만 이 주인공에게 이 능력은 어떤 의미인지, 그 능력이 진짜로 그에게 행복을 주는지, 세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만 집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모두 판사생활을 하던 시절 나 자신의 고민과 결부된 문제들이었다. 남을 판단하는 무거운 권한은 때로는 보람을 주었지만, 나를 짓누르기도 했던 것이다.
대중이 원하는 기획상품을 만들어보겠다고 시작해놓고는 자꾸만 도돌이표처럼 나 자신의 고민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무겁게 만들어버리곤 했다. 마음을 다잡고 투자자들이 원하는 초능력의 구체적인 설정값과 사이다 활약상 등을 짜려고 하면 자꾸만 열의가 식고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다. 더이상 글쓰기가 즐겁지 않고 하기 싫은 숙제를 억지로 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애초에 어떤 이야기든 상관없이 능수능란하게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지 못하다. 50대에 접어든 사람으로서 젊은이들만큼 유연하고 트렌드에 민감하지도 못하다. 이미 확고하게 형성된 가치관과 취향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살아오면서 했던 경험과 고민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곤 한다. 나 자신이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쓰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프로 이야기꾼으로서 나의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그 한계가 동시에 나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어차피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보다 훨씬 잘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열심히 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니 딸들이 사춘기 시절 진로를 고민할 때 내가 해주던 이야기가 있다. '노래방 이론'이라고 내 마음대로 이름 붙인 것인데,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네가 하고 싶은 노래 말고 잘하는 노래를 부르라는 이야기다. 잘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노래를 억지로 부르면 싸늘한 반응에 위축될 뿐이다. 하지만 능숙하게 잘하는 노래를 하면 모두가 따라 부르며 호응하고 스스로도 신이 나고 행복해진다. 너 혼자 하고 싶은 노래는 코인노래방 가서 해라. 그것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숙명이다.
결국 나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그것이 지금 쓰고 있는 공익변호사 이야기다. 그것도 이기적인 속물 판사가 사고 치고는 본의 아니게 공익변호사가 되어 마지 못해 공익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 그러자 놀랍게도 바로 업계에서 좋은 반응이 와서 일이 착착 진행되어 방송을 앞두고 있다. 이번 노래는 다행히 들을 만했나보다.
이제는 헛된 욕심과 망상은 다 내려놓고 앞으로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자기 일에 애정을 가진 성실한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을 여러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타고난 영웅보다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속물인 현실적인 인물들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이 느슨하지만 든든하게 연대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가 살면서 실제로 본 바가 그렇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나를 감동시킨 동료들은 잘나가는 엘리트 판사들도 아니었고, 대학 때 투사로 이름 날리고 엄청나게 진보적인 발언을 내뱉는 이들도 아니었다. 밤마다 짜장면 시켜 먹으면서 끝도 없이 밀려오는 개인 파산 사건기록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읽고 고민하던 동료들, 전관변호사는커녕 국선변호사 하나 없는 작은 벌금 사건 피고인의 하소연을 미련할 만큼 귀기울여 듣고 억울함이 없도록 재판하려던 동료들, 아이들 키우면서 일하느라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슬쩍 훔치던 여성 판사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그래도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결국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내내 하던 이야기와 같다. 거창한 이념도 집단도 아닌, 서로의 경계를 존중할 줄 아는 합리적인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가 세상을 실질적으로 낫게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유감스럽게도 요즘 세상은 자꾸만 그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사이비종교, 무속, 맹목적인 혐오와 진영논리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시대에 내가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려고 한다. 어차피 나는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쓸 수 없는 사람이니까.
186쪽
자기확신에 이어 인정욕구도 잃었다. 예전에 썼던 글을 요즘 다시 읽어보면 스스로 징그러울 때가 있다. '자랑질'이 심하게 느껴져서다. 나란 인간은 심지어 자기 책에 대학입시 전국 수석한 이야기를 대놓고 쓰는 인간이다. 그것도 공부 하나도 안 하고 만화책 보고 놀면서 했다고 말이다. 겸손한 척한다고 비꼬는 게 싫어서 일부러 더 대놓고 자랑질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예전에 쓴 책들을 다시 읽어보면 곳곳에 센 척하는 허세도 있다. 정작 온실 속 화초 같은 판사생활을 떠나 거친 세상으로 나오니 바로 불안 속에 움츠러든 주제에 말이다.
앞서 말한 시대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대혐오의 시대, 자기검열을 강요받는 시대에 그렇지 않아도 나만의 공간을 침범받고 싶어하지 않는 개인주의 성향의 나 같은 사람은 자신을 지키려면 타인들의 인정보다 무관심이 낫다.
처음에는 자기확신과 오만, 인정욕구를 내려놓고 나면 더 좋은 글이 나올 줄 알았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이란 참 복잡하다. 예상하지 못한 내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옳고 그름에 대해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은 자기확신, 타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모두 사회 속에서 역할을 하고 싶은 욕망이다. 이를 배제하고 나면? 원초적인 생존의 욕구만 남는다. 세상과 상관없이 고립된 개인으로서 나와 가족만 잘 먹고 잘살고 싶다. 세상 아무도 나를 모르는데 돈은 많았으면 좋겠다. 이런 욕망 말이다. 재테크 공부에 몰두하며 온갖 시행착오를 하고, 상업적인 드라마를 써보려고 이리저리 시도해보다가 실패했던 것이 모두 이런 욕망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런 마음 상태로는 글이 써질 리가 없었다. 억지로 쓴다 해도 좋은 글이 나올 리도 없고.
씁쓸했다. 자기 확신, 허세, 가식, 야망 따위 껍데기를 다 내려놓고 나면 진솔하고 겸허한 알맹이가 있을 줄 알았더니 노골적이고 이기적인 욕망만 그 안에 있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프리랜서의 삶은 나를 작은 일에도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만들었다. 갈수록 최악의 내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오랜 슬럼프 끝에 이제는 이 또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런 주제에 공부 하나 잘해서 사회적 존중을 과분하게 받는 직업을 얻었고,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삶을 살았다. 판사라는 일의 성격상 자연스럽게 사회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에 이어 젊음이 주는 자신감과 에너지마저 사라지고 나자 이제는 오롯이 나라는 사람만이 발가벗은 채 남았다. 이제부터는 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의식적으로 공부하고, 고민하고, 부딪치고, 성장해야 한다. 나이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고민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퇴행할 뿐이었다.
글은 삶에서 나온다. 좋은 삶을 살지 않으면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땅에 든든히 발을 딛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만 꾸며내는 글은 생명력이 없다. 작가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공허와 고독, 사회적 고립감 속에서 오로지 스스로의 노력으로 치열하게 당대의 문제들을 화두로 공부하고, 고민하고, 끝까지 생각한 사람들만이 좋은 글을 쓴다. 내가 읽고 사랑했던 작가들에게 새삼 경외감을 느끼곤 한다.
자기확신에 찬 첫번째 삶에서의 경험과 고민들이 그동안 쓴 글의 씨앗이 되었듯이 어쩌면 '두번째 삶'에서 경험한 나의 불안, 회의, 어리석음, 나태, 방황 이 모든 것 역시 언젠가 좋은 글의 씨앗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대는 '불안'의 시대니까 말이다. 모든 것이 회색빛인 '불안'의 시대에 우리가 겪어야 할 고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들. 이런 것들에 대해 쓰고 싶다. 더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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