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심리상담

어린 시절

참참. 2022. 3. 12. 23:40

 

아빠는 곤란하거나 미안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무는 사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말로 못했던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보내는 사람이었다. 인터넷을 배워 이메일 계정을 만든 아빠가 가장 먼저 편지를 보낸 사람은 나였다. 아빠는 한 번도 나의 자취방에 온 적 없었지만 그 시기에 수많은 메일을 보냈다. 편지들을 읽을 때마다 내가 아는 아빠와 모르는 아빠에 대해, 두 아빠 사이에 놓인 아득한 간극에 대해 생각했다. 아빠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쓰고 또 썼다.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착한 딸이어서 고맙다고 썼다. 그 편지들에서 예전에는 보지 못한 아빠의 표정을 보았다. 미안해서 나타나지 못했던 아빠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하재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중에서 

치과에 가는 길이었다. 2호선 지하철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아마 신촌역쯤을 지나고 있었는데, 이 대목에서 눈물이 너무 나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더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심리상담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요즘 내 어린 시절을 탐구해나가고 있다. 7살 이전의 기억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여쭤보셨지만, 90% 이상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 그러했다. 희미한 이미지나 감정이나 어떤 잔상같은 것이라도 기억날 법도 한데, 그런 것조차 거의 없었다. 나는 예전부터 그렇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선생님도 이 정도까지 없는 것은 신기하다고, 그것에 대한 이유가 있을지도 탐구해봐야겠다고 하셨다. 동생한테 어떤 사람이었는지 뭘 좋아했는지라도 물어보라고도.

그 다음은 청소년시절로 넘어갔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나는 학교에서 성적이 굉장히 좋은 편인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워낙 시골학교다보니 상대적으로 그랬을 뿐,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은 없었다. 아니 사실 우리 사회가 흔히 말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3학년 1학기까지만 해도 나에게 공부란 그저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해주는 이야기들을 재밌게 듣는 것이었지 고통스럽게 뭔가 노력하는 게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굳이 다닐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후회된다. 괜히 지치기만 했고 예습이란 본수업을 재미없게 만들 뿐이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부모들이 공부 좀 시켰다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1학년 1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본 첫 시험에서 전교 꼴찌를 했다. 그런 걸 준비해야하는지 몰라서 고등학교 참고서나 문제집도 제대로 가지고 오지 않은 학생은 나 뿐이었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학생 역시 거의 나밖에 없었다.

그건 세상 자유롭게, 그리고 한껏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며 살던 나에게는 세상이 뒤집히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상을 치렀고, 사흘쯤 뒤에 기숙사로 돌아와 일주일쯤 뒤에 시험을 봤다. 기숙사는 3인 1실이었고, 학교에 혼자 울 수 있는 공간같은 건 없었으므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종종 숨죽여 울었다. 물론 2층침대 두 개와 옷장 하나가 다인 그 작은 방에 함께 누워있던 선배와 동기는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일에 대해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 당시의 나였어도 그런 일을 당한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운전을 할 줄 몰랐던 어머니는 시내로 이사를 하셨다. 다섯이 살던 집에 갑자기 할머니 혼자 남게 됐다. 월 1회 기숙사에서 나와 2박3일 집에 갈 수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이사한 집으로 갔다. 그리고 2박3일 내내 컴퓨터 앞에서 게임만 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곤 했다.

학교에선 책을 많이 읽었다. 독서실에 앉아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소설과 사회과학도서와 철학서같은 것들을 집히는대로 읽었다. 책은 도피처였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책 속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는 동안에는 나를 잊을 수 있었다. 그게 좋았다.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현실의 고민들을 잊을 수 있다는 게.

곁엔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 혼자라고 느꼈다. 누구도 나에게, 나의 안위와 나의 행복과 나의 감정에 크게 관심 가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럴 것만 같았다. 지독하게 외로웠다. 그리고 나의 불행을 사회구조의 문제로, 한국의 교육현실의 문제로 이해해보려고 했다. 어떻게든 내 불행을 해석하고 받아들여야했으므로. 그럴 듯한 이유를 붙여놓으면, 원인의 용의선상에 무언가를 올려놓으면 그래도 좀 나으니까. 아플 때 무슨 병인지 병명이라도 알고 있으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고 이러한 병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아프다는 게 내 착각이나 환상이 아닌 사실이라는 걸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좀 덜 답답해지는 것처럼.

어머니도, 나도, 동생도, 할머니도 각자의 인생과 싸우느라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것 같다. (적어도 감정적인 면에서)알아서 각자 살아나가야 했다. 부모님의 지나친 참견으로 고통받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자유로워서 좋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근데 한편으로는 늘 공허했다. 

어쨌든 나의 실존에 대해 나만큼 관심이 있는 존재가 어디엔가 있다는 것, 주저앉아 뽁뽁이를 붙이는 긴 시간을 자랑처럼 늘어놓고 칭찬받을 데가 있는 것으로 괜찮았다.(양다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중)
우리는 아무 이야기나 서로에게 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낯 뜨거운 욕심이나 남들이 들었다면 재수 없다고 혀를 찼을 생각, 별로 재미없지만 꼭 하고 싶은 농담 같은 것을 얼마든지 들어준다. 네가 소철 화분에 물을 많이 줘 죽인 것에 두고두고 죄책감을 느낀다는 건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지만 나는 알고 싶다. 내가 어제저녁 고양이 키우는 꿈을 꿨다는 건 누구도 알 필요 없지만 그게 어떤 고양이였는지 너에게는 말해줄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아니었다면 무심히 흘려보냈을 삶의 사소한 조각들을 발견하고 있다.(서밤, <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 중)
"내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을 곁에 둬야 한다. 그리고 나도 상대의 마음을 궁금해해야 한다. 나에 대한 마음을 궁금해하는 것 말고 그냥 상대의 마음이 궁금해야 한다. 우리는 궁금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따뜻한 경험인지."
언젠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서천석 박사의 SNS에서 보고 노트에 옮겨 적어 둔 말이다.
(김신지, <평일도 인생이니까> 중)

그래서 이런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눈물이 났는지도 모른다.

상담선생님은 "도대체 어떻게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들으니, 열일곱 살의 내가 참 많이 애썼다는 걸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혼자 그 모든 것을 이겨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이 얘길 들은 재인은 "힘든 시절 혼자 보내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젠 나에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내가 그때의 나를 안쓰러워하고 위로해줄 수 있을만큼 컸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열일곱의 나에게 고생했다고, 애썼다고, 잘 헤쳐왔다고, 대단하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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