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심리상담

애도의 시간

참참. 2022. 3. 20. 14:10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책을 보다가도 울고, 드라마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도 운다. 요즘 자주 우는구나하고 깨닫자, 몇 년 전 어느날 문득 마지막으로 울어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내가 메말라버린 느낌이었다. 메말라가는 나 자신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이혼을 하면서도 법원의 이혼절차가 다 끝날 때까지 한번도 울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울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양다솔 작가님의 <간지럼 태우기> 서문에 나오는 "잘못 자리 잡은 현재가 계속해서 내일을 껴안고, 나는 다른 나를 상상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는데, 그 문장이 불러오는 내 과거들 중 하나가 바로 그 기억이었다. 고작 서른 언저리에 나는 내 삶이나 나라는 인간이 (어떤 면에서는) 끝장났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새로 취직한 직장에 적응을 하고, 안정적인 월급이 들어오는 것에도 익숙해지고, 다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고, 심리학 공부모임에도 나가다보니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다. 다시 사람과 관계에 상처받아 울기도 해봤고, 드라마를 보다가도 울고 책을 읽다가 통곡을 하며 펑펑 울기도 했다. 글을 쓰다가 울고, 그렇게 쓴 글을 다시 읽으며 또 울었다. 결혼생활과 이혼에 대해 생각하며 운 것도 이혼절차가 다 끝나고도 몇달이 더 지나서부터였다. 지나온 삶의 고비마다 흘렸어야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당시에 흘리지 못했던 눈물들을 지금 다 쏟아내고 있는 기분이다.

하재영 작가님은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에, "쓰기는 삶의 특정한 순간을 다시 살아내기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뭉뚱그리지 않기. 외면하고 싶었던 고통, 분노, 슬픔, 상실, 결핍을 다시 한 번 겪어내기. 그것은 나 자신의 이방인이 되는 일이다."라고 썼다. 열두 살의 나에게 편지를 쓰다 노트를 눈물로 다 적시고, 열일곱 살의 나를 돌아보는 글을 써놓고 그걸 읽고 또 읽으면서 울고 있으니, 그 순간을 다시 살아낸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만 같다. 외면하고 싶었기에 충분히 겪어내지 않고 덮어두었던 그 감정들을 다시 한 번 겪어낸다는 것도.

상담선생님은 애도하는 시간이라서 그렇다고 하셨다. 다음 목표를 향해 뛰어가느라 돌아보지 못했던 내 안의 상처와 슬픔과 결핍에 대한, 그것들을 어쩌지도 못한 채로 일단 뭔가를 향해 뛰면서 그것들을 잊어버리려 했던 그때의 나 자신에 대한 애도. 그 불행 속에서 머물기를 선택하거나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괜찮은 선택들을 해왔다고, 잘 컸다고 하시는 말씀에 또 울컥했다.

잘 컸다니,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생각했다. 나의 과거와 그 안에서 내가 겪었던 일들, 느꼈던 감정들과 그래서 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들과 그 결과를 다 알게 된 사람이 말하는 "잘 컸다"는 말을 듣는 일은 내 모든 과거를 긍정받는 느낌을 주었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되뇌어보게 됐다. 잘 컸다. 나는 잘 커왔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큰 거라고. 다행이었다. 그 어린 시절의 온라인 채팅을 통해 만났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과, 내 결핍에 힘겨워하던 내가 완전히 혼자이지 않게 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제 읽은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맨 앞에는 박막례 할머니의 "염병하네. 70대까지 버텨보길 잘했다."라는 말이 쓰여있다. 나도 요즘은 전에 해본 적 없던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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