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심리상담

심리상담 3 - 1

참참. 2021. 8. 25. 13:39

 

이번이 개인 통산(?) 세번째 심리상담이다. 세번째 심리상담의 첫 상담을 어제 하고 왔다. 근데 지난 두 번의 상담과는 상담에 임하는 내 마음가짐에 차이가 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첫번째랑 두번째 상담을 받았을 때보다는 그래도 여러모로 에너지가 좀 있는 상태라는 점, 그때처럼 무기력하거나 만성적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지 않다는 점과 내 돈을 내고 유료로, 횟수나 기간의 제한없이 긴 호흡으로 할 것을 다짐하고 시작한 상담이라는 점이 이런 차이를 만들지 않나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앞의 두번의 경험이 만들어준 차이도 있을 것이다. 겪으면 겪을수록 나도 경험이 쌓이고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상담이 될 것인지에 대해 나름대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상담사 선생님은 세 번의 상담 모두 여성분이셨다. 굳이 성별을 언급하는 이유는, 아무리 부정하려해도 내가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내담자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나 역시 상담사에게조차 잘 보이고 싶은,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피하게 되는 주제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섹스에 대한 얘기. 젊은 여성 상담사 선생님께 섹스에 관한 얘기를 꺼내는 건 아무리 그곳이 심리상담의 현장이라고 해도 쉽지 않았다. 그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렵더라도 꺼냈을 수도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여기기도 했고,(아무래도 그때는 우울과 무기력이 훨씬 더 거대한 문제였으므로) 8회기밖에 되지 않는 상담에서 그 얘기까지 꺼내서 딱히 무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더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어쩐지 그 얘기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미리 가져서인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냐는 질문에 그 얘길 꺼냈다. 그동안 내가 스킨십이나 성행위에 대해 가졌던 마음들을 얘기했는데, 아무래도 누구와 이야기나누기 어려운 얘기라서 결국은 혼자서 결론을 내리고, 태도를 정하고, 내 마음이나 경험이나 기억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했다. 실은 내 성욕을 부정하고 미워했던 순간도 많았다. 그게 자연스러운 욕구라는 걸 알지만 이 사회에서 남성의 성욕(과 열등감)이 불러일으키는 해악이 너무도 많이 보이기에 그 추잡한 것들을 보고 있자면 내 자연스러운 욕구마저도 죄악처럼 느껴졌다.

그동안의 성경험담을 아주 간략하게 들은 선생님이, 섹스중독이라든가 그런 문제를 갖고 있는 남성들도 많은데 내 어떤 경험을 콕 집으며 이런 걸로 봤을 때 전혀 그런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심 안심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남성들이 섹스에 대해 갖는 욕구의 많은 부분은 안정감의 추구에서 온다고 했다. 가장 안정감을 주는 행위 아니냐고. 끄덕끄덕. 정말 그랬다. 격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남성들이 대화라든가 더 복잡한 방법으로 안정감을 얻지 못할 때 성행위를 통해 손쉽게 안정감을 얻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근데 선생님은 나와 아직 잠깐 대화한 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말이나 글을 좋아하고 자기표현이 강한, 자기표현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대화로도 충분히 어떤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담을 들어봤을 때도,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그런 길로 가지 않고 나름대로 잘 헤쳐온 것 같다고.

선생님의 얘길 듣고보니 내 경험들이 다시 보였다. 확실히, 내 욕구를 안정감에 대한 욕구라는 측면에서 다시 보기도 하고, 게다가 최근에 안정감이 있는 관계를 맺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게 들었어서, 더 그 말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내가 돌아서 나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지 그 행위의 감각만으로 쉽게 뭔가 얻으려고 하는 그 마음으로부터, 그리고 아마 나는 결국 그렇게는 얻을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더 잘 맞는 사람과 더 대화가 통하는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믿음, 내가 앞으로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사실 많이 포기하고 있었다. 나는 별로 좋은 사람도 아니고, 그런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으며 만난다고 해도 결국 내가 다 망쳐버릴 거라는 두려움과 자포자기의 마음이 굉장히 안 좋은 패턴으로 내 안에 흘러다닌 시기가 있었다. 그 생각에 한없이 빠져들었을 때는 영원히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나 자신을 파괴해버릴 것만 같았는데, 다행히, 몸도 마음도 돌려세울 수 있었다.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고 싶은 방향이 어딘지 모르는 줄 알았는데, 우연히 내디딘 발걸음에서 아, 여기였구나, 하고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음 상담이 기대되고, 내일의 내가 기대된다. 앞으로 만날 행복한 일들이 날 기다리고 있고,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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