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심리상담

심리상담 3 - 2

참참. 2021. 9. 4. 13:14

이번 상담은 그동안의 결혼을 포함한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을 오버해서 썼다.

최근의 나는 11년동안 첫사랑이라 불렀던 그 연애에 대한 애도를 드디어 다 끝마쳤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고, 그 모든 연애를 통틀어서도 가장 파괴적이었던 올 상반기의 연애 또한 끝마쳤다. 처음의 연애부터 가장 최근 연애까지의 내 모든 사랑의 경험들을, 어떤 맥락들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정리하고 기준을 세우고 있다. 기준이라고는 없던, 그저 끌리는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사랑하던 것에서 조금 더 나를 알고, 내 기준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야한다는 생각을 이혼하면서 많이 했었다. 중간중간에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더더욱 느끼게 되는 경험들도 계속 있었다. 마지막의 그 가장 극단적인 경험은 강렬했던만큼 나는 과연 어떤 관계를 원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아주 깊이 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심리상담을 통해 그게 필요하다는 내 생각에 더 확신을 얻고 있고, 조금씩 나아지던 것들에 속도가 붙었다. 혼자서 돌아보고 혼자서 기준을 세워야했을 때보다 훨씬 더 수월하고 잘 정리되는 기분이다. 혼자 생각하는 것은 이전까지의 사고패턴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 때문에 아무리 깨달은 게 있어도 관점이 쉽게 바뀌지 않았고 진도가 느렸다.(진도가 느리다는 것조차 어렴풋이 느꼈을 뿐 비교대상이 없으므로 지금 얼마나 느린 건지 자각할 수도 없었다.)

선생님은 명확하고 때로는 극단적인 단어선택도 단호하게 함으로써 내 경험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어주셨다.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경험들, 내가 겪었던 고통들을 또 다르게 다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별개의 경험들로 기억되고 있던 것들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걸, 그래서 맥락이라는 것을 만들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혼자할 때는 각각의 경험들을 따로따로 떠올리는 것이 익숙해서 쉽지 않았던 작업이다. 누군가의 조언이 있으니 훨씬 빠르게 정리가 되고 있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매뉴얼과 조력자가 있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어렴풋한 목표만 가지고 처음 해보는 작업을 하는 것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

변화는 언제나 두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보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살아온 것같이 보일 수도 있는 나조차도 익숙한 것의 편안함을 안다. 상황을 변화시키고 나를 변화시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을 그만두고 진로를 고민하고 활동가로서의 길을 선택했을 때도, 결혼을 결정했을 때도, 서울을 떠나 귀촌했을 때도, 다시 서울로 올 때도, 그 모든 관계들을 맺고 끊을 때도, 당연히 다 어려웠다. 그러나 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은 때로는 안주하는 마음이 되고, 안주하기보다는 변화에 대한 갈망을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익숙함이 불러일으키는 함정이나 해악이 크다고 늘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익숙함' 자체를 나쁜 것으로 여겨서도 안된다는 마음이 든다. 익숙한 건, 그냥 익숙한 것일 뿐이고, 모든 것에는 익숙해질 수밖에 없고, 그것 자체가 나쁜 건 당연히 아니다. 익숙해져야만 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은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것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은, 처음 받아보고 있다.

이전까지 내가 겪어온 변화들은 과거와의 단절에 가까운 무엇이었으나 지금은 과거의 나들을 통합해가는 과정에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내가 기억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땅에 제대로 발을 딛고 있다.  뿌리를 내린다는 그 흔한 표현을 조금 있으면 그게 정말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상담선생님과도 그런 작업을 할 힘이 충분히 있다는 느낌이다. 흩어져있는 경험들에서 나의 기준을 세우고 내가 원하는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상담을 하며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끌려다니기도 했던 나를 바라보았다. 주도권이 넘어간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면서 넘긴 적도 있고, 그렇다는 걸 느끼면서도 넘겨준 적도 있었다. 반대로 초반에는 그러는 줄도 모르고 내가 주도권을 쥐고 흔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것에 대한 반성이 오히려 반대쪽 극단으로 치달은 면도 있지 않나 싶다. 내가 먼저 좋아했는지 상대방이 먼저 다가왔는지에 따라서도 달랐다. 늘 사랑받고 싶었으나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정말로 받고싶은 게 뭔지 알지 못했다. 어떨 때는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것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마지막에는 쓰리레벨이라고 해서, 상담을 시작하기 전과 상담이 끝난 뒤의 상태가 어떻게 다른지 3가지 면에서 얘기해보라고 하셨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이 상담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돌아보기 위해서. 개발을 공부하면서 TIL이나 WIL(Today I learned, Weekly I learned)를 정리하라는 조언이 있듯이, 그리고 이전의 상담경험들을 통해 나도 오늘의 상담을 다시 내 언어로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선생님이 강조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첫째는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였다. 나는 나 자신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고통과 상처를 겪었고 그것들에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게다가 선생님은 같이 적절한 작업을 하면 굉장히 회복속도가 빠를 것으로(의사의 표현으로 바꾸자면) 보인다고 말씀해주셨다. 또, 내 과거의 사랑이나 연애의 경험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맥락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그것들을 연결지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무엇을 통해 연결지을 것인가에 대해.

감정적으로 나는, 기분이 좋고 약간 들떠있는 상태에서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이 끝난 직후에는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겠다는 마음이었다. 약간 멍했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 같은. 그러나 처음에는 왜 들떠있었냐는 질문에 답을 하다가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 다시 글을 쓰며 그 들뜨는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그 들뜸이 이끄는 대로 발을 땅에서 띄우고 날아가듯이 그 들뜸을 마구 폭발시켰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걸 새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들뜨고 있다는 걸 알고, 그 들뜨는 마음을 기쁘게 바라보면서도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고자 한다. 흥분해서 기쁜 마음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고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은 더 좋을 수 있다는 걸 알고, 그게 서로에게 더 자연스럽고 좋다는 느낌이 든다.

신체적으로는 이번주 내내 안좋던 컨디션이 아침부터 좋아서, 계속 좋은 상태였다. 그래도 상담이 끝난 직후에는 머리가 약간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원래 몸살기가 오면 머리가 무겁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아무래도 일이 끝나자마자 왔고 저녁밥도 안 먹은 채로 긴 시간동안 이전의 상처들과 격했던 감정들을 느꼈던 경험들을 꺼내놓았고, 또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적극적으로 그 경험들을 재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어떤 맥락에 따라 이야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도 금방 다시 가벼워졌다.

다음주에는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선생님은 미술치료도 같이 하고 계셔서, 이것도 기대된다. 이번 상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해요"라는 말이었다. 내가 설마 그런 것도 모를까봐라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귀한 것을 알아보고 있었나, 그걸 어떻게 귀하게 여기는 방법은 알고 있었나,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렇지 않았다는 걸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자마자, 지금의 나는 나도 모르게 그걸 배워가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 '귀한 것'과 '귀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바로 지금의 관계와 연결되면서 아, 그렇구나. 맞다, 그렇다, 그게 좋다. 끄덕끄덕. 이게 그거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정말 소중해서, 소중한 것을 계속 소중히 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고,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하고 있다. 근데 또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그런 말들이 내게 불러일으키던 감상과는 다르게 참 자연스럽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뭔가 '무리하는' 것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무리하지 않고 내 최선과 진심을 다하고 싶고 그렇게 되고 있고, 다른 무언가를 뒷전으로 미뤄버리거나 놓치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다는 감각을 가지고 가고 있다. 조심스럽게, 소중하게.

'일상 > 심리상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리상담 3 - 3 (feat. 그림, HTP 검사)  (0) 2021.09.15
심리상담 3 - 1  (0) 2021.08.25
세번째 심리상담의 첫 상담  (0) 202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