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만남

<삶의 마지막 축제>, 용서해 선생님 수요북콘 뒷이야기

참참. 2013. 5. 10. 10:33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나를 사랑하며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아이에게도 그럴 수 있도록 행동으로 격려해주는 사람.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일관되게 따뜻한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 말로써가 아니라 삶으로써 느끼게 하는 사람. 용서해 선생님, 존경합니다.

 

사람이 그리 많이 오지 않아 조촐하게 진행된 수요북콘.

진행하는 분과 용서해 선생님, 손님으로 오신 백반종 선생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몇몇 음악을 연주하고, 듣고. 끝에 가서는 전부터 궁금하던 질문을 했다.

선생님의 따님은 어떻게 키우셨는지, 선생님처럼 안정적인 길에서 벗어나는 삶을 자식에게도 선뜻 권할 수 있으신지에 대해서.


답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미 서울시향에 계실 때부터 딸을 어찌나 자유분방하게 키우셨던지, 고등학생 때부터 호주에 유학 중이라신다. 수의사의 꿈을 품고. 공부하라 시킨 적도 없고, A학점은 오히려 인생에서는 마이너스라고 생각하신단다. C학점 받을 정도만 알아도 되는데, 그리고 그 시간에 다양하고 소중한 경험들을 얼마나 할 수 있는데 그 경험들이 인생 전체로 보았을 때는 훨씬 값지다는 것이다. 그래서 C학점이 인생에서는 더 플러스라고 생각하신다고.

진심이셨다.


말로 진보를 외치고 대안을 외치고 사회와 교육을 비판하고 바꿔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자기 자식은 서울대에 보내고 싶어하는 이중적인 진보지식인들도 있다.

그래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논리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아니, 그 자신조차 바꾸기 어렵다.

다만 진정한 행복을 찾아 사는 사람들만이 진짜 대안이고 진짜 진보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 뿐.

우리가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는 오직 나 자신의 삶뿐.

말과 글은 어떤 의미에서는 공허하다. 그것이 단지 말과 글일 뿐일 때에는.

그러나 그 뒤에 진실한 삶이 조용히 자리를 지킬 때,

말과 글도 '진짜'가 되어 빛난다.


예수의 삶을 실제로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무슨 말이 필요했을까,

그의 말에 대해 무슨 글이 필요했을까.

그들은 그의 행동과 태도와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책과 강의에서도 얻을 수 없는 깨우침을 얻지 않았을까.


그 삶의 모습들을 직접 볼 수 없는 후대의 사람들만이

성경의 한 구절 뜻조차 제대로 확신할 수 없어 쩔쩔 매게 되는 것 아닐까.


단지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놀랍다.

부디 그런 사람들을 더 만나고 더 배우고 더 깨달아

마침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기를..


* 이 글은 2013년 3월 21일에 쓴 글입니다.

* 아래는 <삶의 마지막 축제> 책을 읽고 쓴 글 보러가기

2013/05/10 - [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사는 이들] - 용서해, <삶의 마지막 축제> / 서울시향 플루티스트에서 호스피스 요리사, 음악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