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만남

<세상의 스무 살을 만나다> 지은이와 출판사 대표님을 만나다.

참참. 2013. 5. 10. 08:41

얼마 전 읽은 책 가운데 <세상의 스무 살을 만나다>라는 인상깊은 책이 있었다. 당시 스무 살이던 지은이가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행한 이야기와 그 여행 중 만난 동갑내기 스무 살들을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책을 읽고 쓴 글 보러가기 - 2013/05/09 - [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사는 이들] - 김다은, <세상의 스무 살을 만나다> / 세상의 스무 살들을 만나 그들의 꿈을 듣다)

여행 당시 스무 살이던 지은이는 지금 스물넷인 나와 동갑내기였다. 그런 덕에 책을 더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글자가 잘못된 부분이 몇 군데 있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그런 걸 보아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지장이 없기에 그냥 넘어갔다. 참 이상하게도, 그 책을 읽을 때는 자꾸만 그것들을 적어두고 싶더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을 읽으면서 그 잘못된 부분들의 쪽수를 적어두었다가 책에 써있는 출판사 이메일로 보냈다.

지금 혼자 '생각을담는집' 출판사를 꾸리고 계시는, 대표이자 편집자이신 임후남 선생님께 답장이 왔다. 부끄럽고, 정말 고맙다며 책을 한권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려고 한 일은 전혀 아니지만, 이렇게 무언가 주고 싶어하시는 것도 참 고마운 마음이고, 또 '생각을담는집'의 책들을 검색해보니 보고싶어지는 좋은 책들이 많아서 아주 기뻤다. 근처면 직접 사무실 찾아가서 받겠다고 다시 답장을 드렸다. 그랬더니, <세상의 스무 살을 만나다>를 쓴 김다은 씨와 함께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오겠냐고 하시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한 일은 책을 읽으면서 잠깐 옆에 메모 몇 개 하고 이메일 한 통 쓴 것뿐이다. 별 것도 아니고, 별 생각도 없이 한 그 일 덕에 공짜 책 한권과 글쓴이와, 대표님과의 일대일 만남의 기회까지 얻게 된 것이다.

휴학생이라 즐거운 경험들을 찾아다니는 중이고, 시간도 널널한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제안이 어디 있을까? 당연히 그 시간에 가겠다고 했다. 여행기를 읽으면, 특히나 청춘들이 여행을 하며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그런 여행기를 읽으면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이 사람, 지금 뭐하고 살까?' 나만 그런 생각하는 건 아닐 거다. 멋진 청춘이라고 생각이 들고,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나도 닮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기에, 그 사람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몹시 궁금하곤 했다. 그 사람을 직접 만나서 어떤 분위기의 사람인지도 실제로 보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듣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다. 바로 그 기회를, 이렇게 쉽게 얻었다. 어쩌면, 내가 그 책을 보며 해본 적도 없는 그런 일들을 마치 늘 해왔던 것처럼 하게 된 것이 다 이렇게 되려고 그런 건 아닐까. 책을 읽으며 '이 사람, 만나보고 싶다'라는 나의 바람을 이루어주려 세상이 다 나를 도와준 느낌이다.

그렇게 목동에 있는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두 분은 역시, 멋진 분들이었다. 알고보니, 동갑내기 지은이님은 이사한 곳이 그곳과 가까워 오늘은 잠깐 놀러오셨다고 한다. 지금 만들고 계신 '지구마을청년대학'은 내년에 정식으로 개교를 하고, 페이스북에서 소식 많이 알리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요즈음 토요일마다 노들섬에서 도시농업을 하는데, 재밌다는 이야기를 하시니,  잊고 있던 <게릴라 가드닝> 책을 빨리 구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과,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 박원순 시장님 인터뷰에서 시장실에 있던 실내의 밭(?)과, 어릴 때 할머니께서 농사 지으시던 거 도와드리는 것이 귀찮아서  떼쓰던 추억이 떠올랐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쓰고 사는데, 이게 과연 정말 계속 지속가능한 것이냐, 분명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 것이냐하는 이야기도 하고, 주변에 귀농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왔다.

가기 전에는 이것도 물어보고 저것도 물어봐야지,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오려고 했다. 막상 가서 앉으니, 처음에는 몇몇 궁금한 점들 물어보다가 나중에는 내가 계속 말을 하고 있더라. 내 얘기를 하러 간 건 아닌데, 두 분의 이야기를 더 듣지 못해 뒤늦게 아쉬웠다. 두 분이 내 수다스러움에 질리시지나 않았을까하는 걱정도 살짝 들면서. 아하하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끝도 없이 입이 움직이는 이 수다본능을 어찌하면 좀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조금 고민이다.

임후남 대표님은 내가 출판쪽 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간파하고 계셨다. 좀 놀랐다. 출판일을 꽤 해오셨기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말씀까지 해주셨는데, 정작 그 부분에 대해서는 떠오르는 것이 없어 아무 질문도 못하고 왔다. 그렇지만 오늘만 날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연락할 일 있으면 언제든 하라고 말씀을 해주셔서, 물어볼 것이 있으면 언제든 뻔뻔하게 물어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런 자리를 주선하고 마련해주신 임후남 대표님께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다. 거의 오전 시간 내내 걸려오는 전화에, 팩스까지 받아가며 대화도 함께 나누시고, 내겐 굉장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덧붙임 하나. 실은 오전 10시에 만나자고 하셔서 속으로 점심을 같이 먹고 헤어지려나보다, 생각했는데 그건 완전히 나만의 착각이었다.

덧붙임 둘. 핸드드립으로 직접 내려주신 커피는, 나는 커피맛은 잘 모르지만, 맛있었다.

덧붙임 셋. 분명히 가는 길에서까지만 해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진을 한 장도 안 찍고 왔다. 이럴 수가! 그래서 이 글에 사진이 하나도 없다. 사무실에는 상당히 많은 녹색식물 화분이 있고, 책꽂이에는 책이 꽂혀 있었다. 한 쪽에는 개수대와 컵들이 잔뜩 있어 일반 가정집의 거실이나 원룸같은 느낌이었다. 밖에서 보았을 때도 일반 가정집들이 있는 아파트와 비슷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출판사 사무실이라는 반전!

덧붙임 넷.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찍은 사진을 붙인다. 임후남 대표님께서 직접 쓰신(게다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이 사진을 찍은) <아들과 길을 걷다 제주올레> 책을 선물받은 것이 자랑!

- 2013년 5월 9일 목요일, 목동에 있는 '생각을담는집' 출판사 사무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