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만남

<청춘대학>을 쓴 이인 연사님 강연 후기

참참. 2013. 5. 9. 16:40



* 이 글은 2010년 9월 19일에 쓴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kimjh620/20113803182

 스무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장문의 대자보를 붙이고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 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책을 읽으며 김예슬 씨의 모든 생각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문제의식만은 왜 대학을 다녀야하는지, 이르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주욱 내가 왜 이토록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지 내 꿈은 대체 뭔지 고민해 본 20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중에서도 저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죠.

 저 역시 꿈을 찾는게 꿈인 스물하나의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강연 재미있었습니다. 드라마틱하게 갑자기 제 인생이 180도쯤 회전하는 그런 강연은 아니었습니다.
 그러기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그 은은함이 오히려 매력이었달까요?

 어떤 정말 감명깊은 이야기를 듣거나 읽고 크게 깨달음을 얻어 그 순간부터 삶이 변화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요.
 하지만 굉장히 적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정말 감명깊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순간이 지나고 지나서 감동이 잊혀지고 그저 그런 감동이 있는 이야기였다 - 정도로만 기억하고 그마저도 희미해지고, 직접적인 삶의 모습에는 미미한 변화조차 있을까말까합니다. 그리고 살면서 작은 감동과 깨달음들을 정말 여러 곳에서 얻지만 스치듯이 지나가버리고 마는게 너무너무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 구멍을 메우는 작업이 글쓰기라고 강연 중 말씀하셨는데, 알고 있던, 느껴본 적 있던 그런 이야긴데 너무 와닿더군요.
 글을 쓴다는 작업은 과장 좀 섞어서 우리에게 있어서 마법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듣고 있는 학술적 글쓰기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시는데, 정말 공감되는게, 글이란 건 머릿속에 대충 이러이러한 내용을 이렇게 써볼까 하는 생각은 있지만 전체 글이 전부 머릿속으로 작성되어서 그걸 그저 필기하거나 타이핑하여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조금만 글을 써보다 보면 내가 원래 쓰려고 했던 글이 이런 것이었던가? 어라? 왜 이런 글이 나왔지? 내가 뭘 쓴거지? 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앞에 느낌은 좀 극단적인 표현이구요.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내 생각을 좀 더 확실하게 알게 되면서, 그걸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그러면서 생각을 좀 더 깊이 해보게 되는 그런 정도의 경험은 정말 많이 하게 되죠.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살다보면 다양한 이유(주로 귀찮아서)로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들은 후 '아, 괜찮았어'라고만 하고 글로 남기지 않는 때가 더 많습니다. 블로깅 등으로 습관이 좀 다져진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죠. 예전에 쓴 글들을 보다보면 굉장히 소중한 느낌이 듭니다. 사실 인간의 기억력이라는게 정말 안타깝거든요. 특히 저라는 개체는 더 심하다고 느끼고 있고요.
 어쩌면 이 글도 그래서, 그 말씀에 힘입어서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핫.

 아, 어찌보면 강연의 주 내용은 아닌 부분에 대한 잡설이 너무 길었나요?

 꿈, 이상은 도달할 수 없더라도 오히려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원한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 북극성과 같은 존재다. 북극성처럼 정말 진실로 철저하게 도달의 가능성이 제로라면 좀 슬픈 일이겠지만, 와닿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북극성은 바라보는 자에게만 빛을 주겠죠.
 치열하게 매일 꿈을 고민하는가, 또한 글쓰기 등으로 구멍을 메우고 계속하여 변화하려는 의지를 유지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이야기도 인상깊었구요. 아직 그러한 정도로 강력한 꿈을 못 찾은 저는 우선 탐색과 다듬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지만 말이죠.

 꿈은 직업과 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보아야한다는 이야기도 위 이야기들과 일맥상통하면서 상당히 느껴지는 바가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어떤 직업이라든지 명사라는 것은, 연사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고자 하신 것 같은데, 거의 표현하고 있는게 없다고 보는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사? 의사라고 하더라도 만약 100명의 의사가 있다면 100명의 다른 삶과 직업을 가진 의사가 있죠. 그러니까 그런걸 꿈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생각이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들었습니다.
 내가 어떠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떠어떠한 일을 어떠어떠하게 하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그런 방향성과 원하는 삶의 상을(즉 이런 것이 꿈이라고 하는 것인데) 명사로 손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끊임없이 고개를 돌리고, 이인 연사님과 같이 진심으로 찾아헤메고 고민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동참하고 의문들에 손을 내밀고 정해져있는, 따라가는 것이 편하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그 레일의 밖으로 발을 내밀어 다른 사람의 욕망이 아닌 나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 신비로운 삶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이해가 됩니다. 매 순간이 가슴 떨리는 그런 삶이 아닐까 어찌보면 좀 심하게 상상의 나래를 편 것 같지만, 어쨌든, 북극성과 같은 것이니까요(!?).
 
 이 정도 이야기를 후기에 남길 수 있던 것도 메모 덕분인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까진 순수 기억력으로도 조금 기억이 나기는 하는데, 애써 되짚어보거나 하지 않았다면 정말 기억나는 것이 얼마 없었겠죠.
 사실 저는 강연이나 수업을 들으면서 메모, 필기하는 것을 별로 안좋아했고, 지금도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적고 있을 때도 강연이나 수업은 진행되고 있고, 그로 인해 놓치는 부분이 생기는 걸 너무너무 안타깝게 생각하거든요.
 중학교때까지는 제 기억력도 200% 신뢰하고는 했고요. 그래서 노트 한 권 제대로 다 써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새겨넣는 작업 - 물론 놓침은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요 - 이라는 생각에 요새는 좀 긍정적인 마인드입니다. 지금도 그 메모들을 보면서 글을 쓰고 있어서, 오랜만에 메모한 것이 뿌듯하네요. 이 순간만큼은 제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제 볼펜과 종이도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겠죠?

 끝으로 이야기해볼 것은, 행복이라는 단어인데, 연사님께서 이야기하셨죠.
 나는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요.
 음, 그런 믿음을 확고하게 갖고 살 수 있었다는 것 자체도 이미 상당수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살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아니,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사람이 될 거라고, 그리고 지금도 행복해지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야하는 거겠죠. 너무나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진 않지만 끊임없이는 바뀐다. 희망과 믿음. 그리고 끊임없이. 잊어버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남는 것들을 채우고 구멍도 메우고 끊임없이 '원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점심도 못 먹고 가서 들어서 배고팠지만, 연사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원래 피곤한 일이니까요. 그 배고픔도 그것의 일종이었겠죠(?).
 



 이인 연사님과 모두 프로젝트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회 많이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켜보는 역할로 만족할게요(!?). 아, 그리고 추신인데, 이런 강연들을 중고등학생들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사님께서도 짧게 언급하셨지만, 현재의 이런 교육제도에서는 대학생조차 얼마나 이런게 안되면, 모두 프로젝트도 그래서 생긴 것 아니겠습니까. 근데 중고등학생때야말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잖아요, 사실. 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중고등학교 교육제도에 관심과 문제의식도 있구요. 이인 연사님께서는 현재 교육제도에 대해서 어떤 문제의식과 또 어떤 이상적인, 그리고 실천적인 방향을 갖고 계신지도 문득 궁금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