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만남

반 고흐 뮤지엄 - 암스테르담5

참참. 2020. 2. 9. 09:41

반고흐뮤지엄에 갔다. 다들 사람 많다고 하더니 정말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돌아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아침 9시 반에 갔다). 여긴 오디오가이드가 유료였다. 5유로(6500원). 하지만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어가 있었다! 영어로 들었으면 내용만 겨우 이해하느라 감동이 덜했을 것 같다.

반고흐는 네덜란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농부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자연과 가까운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로서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하고 당대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위해 미술상인으로 일하던 동생 테오가 있는 프랑스 파리로 갔다. 그 뒤론 프랑스에서 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문자 그대로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판매하지 못했고 가난하게 살았다. 그가 자화상을 많이 그린 이유는 모델을 쓸 돈이 없어서였다고도 하고 어느날은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부칠 돈마저 부족했다고 한다. 동생 테오와의 우정은 놀랍다. 테오는 형인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재능과 열정, 작품을 한결같이 믿었다.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 받았다. 테오의 편지 보관용 서랍장이 전시돼있는데, 이불 넣는 장농만 했다. 사실상 그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을 평생 제공해주었다. 그가 자신의 귀를 잘랐을 때는 파리에서 시골 아를까지 한달음에 달려오기도 했다.

빈센트가 죽기 얼마 전 테오 부부가 첫 아들을 낳았다. 테오는 아들에게 형과 같은 빈센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빈센트는 조카의 탄생을 몹시 기뻐했다. 정신병으로 고생하던 와중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작은 빈센트의 침실에 걸어둘 그림을 그렸다. '꽃 피는 아몬드나무'(아몬드꽃). 아몬드나무는 겨울에도 꽃을 피워서 꺼지지 않는 희망과 강인한 의지, 용기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밝은 하늘색 배경으로 꽃이 핀 나뭇가지들이 늘어진 이 그림은 어느 방향에서 보고 그렸는지 알기 어렵다. 마치, 나무 아래에 누워서 나뭇가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그러고보니 결혼선물로 받은 찻잔세트 중에 하늘색 잔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 이 그림이었던 거 같다. 그림의 스토리를 알고보니 다르게 보인다.)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로 기쁨에 차서 그린 걸작. 그러나 결국 그 봄이 그의 마지막 봄이 되고야 만다. 그리고 이 그림을 선물받았던 아기 빈센트는 나중에 빈센트 반 고흐 뮤지엄의 설립자가 된다.

살아있던 당시 폴 고갱같은 동료예술가들에겐 몰라도 그림을 사는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대중에겐 알려지지 못했던 그가 어떻게 죽고나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됐을까? 전적으로 테오의 아내였던 요한나 반 고흐 본헤르 덕분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오 반 고흐마저 죽고 만다. 어린 빈센트와 빈센트의 수많은 작품들이 요한나에게 남겨졌다. 그는 빈센트를 키우며 그 작품들을 지키고 알려냈다. 테오와 빈센트가 주고받았던 수백통의 편지를 정리해서 출판했으며 끊임없이 빈센트의 작품을 알렸다. 역대 최고 규모의 반고흐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유명한 반 고흐도 없을 것이다. 뮤지엄에는 벽에 빈센트의 그림이 잔뜩 걸려있는 집 거실에서 찍은 요한나의 사진이 전시돼있다.

뮤지엄에는 고흐의 작품뿐 아니라 그가 교류했던 작가들의 작품, 그가 영향을 받았거나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이 스토리를 가지고 전시돼있다. 폴 고갱의 의자와 자신의 의자를 그린 고흐의 작품이나, 고갱과 서로 그려주었다든가 그런 식이다.지금은 고흐가 존경했던 선배예술가 중 하나인 밀레(이삭 줍는 사람들과 만종(angelus)의 그 밀레) 작품을 별도의 2층짜리 전시실에서 같이 전시하고 있다. 밀레를 좋아해 밀레의 작품을 따라그린 고흐의 작품과 밀레의 원작을 바로 옆에 걸어두고 감상할 수 있다. 밀레가 후배예술가들에게 미친 어마무시한 영향력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사실 4개 층을 오르내리며 고흐 작품 보다가 지쳐서 대충 봤는데도 그랬다.

오디오 가이드가 있는 작품 정도는 다 보자라는 마인드로 적당히 봤다고 생각했는데도 3시간이 걸렸다. 사실 잘 몰라서 정신병자라고만 알던 그의 끊임없는 열정과 삶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있어서 미술에 문외한인데도 인상적인 뮤지엄이었다.

덧. 이곳만큼은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돼있고 돌아다니면서 잡는 직원도 있는데, 그래도 폰으로 그림 사진을 찍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2019.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