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윤이형의 '졸업', 김보영 기획의 '다행히 졸업'

참참. 2016. 12. 19. 22:11




정말 오랜만에 소설책을 두 권 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작가님께서 올해 세상에 내어놓으신 책인데, 무슨 우연인지 제목이 하나는 ‘졸업’(윤이형 작가님께서 쓰신 소설), 다른 하나는 ‘다행히 졸업’(김보영 작가님께서 기획하신 단편소설집)이다. 도저히 그러지 않을 수가 없어서 두 권을 함께 샀다.

 

양쪽 다 고등학생들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졸업은 SF로 분류될 수 있을만한 내용으로, 내가 SF를 사랑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재와는 다르지만 과학기술 측면에서 개연성 있는 어떤 배경에 등장인물들을 던져 넣고, 지금을 사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의 고뇌와 선택, 감정들을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가치관이라든지 살고 있는 모습들, 또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시스템과 같은 것들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 세계에 사는 고등학생들은 졸업을 맞이하면서 인생을 너무나도 다른 곳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것도 참 웃기는 방식으로. 어쨌거나 세계는 그런 곳이 됐고, 정치인들은 그 변화된 환경을 그런 제도로 만들어 놓았다. 지금 세계와 지금 정치인들, 제도들을 봤을 때 그 정도 제도면 그다지 최악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최소한 최종 선택권은 개인에게 있으니까. 여하튼 그 덕에 우리 주인공은 19년 살아온 경험으로 결정하기엔 좀 거시기한 선택의 순간에 서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어떤 선택을 한다. 혹은 선택하지 않는다.

 

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리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될 일들을 결정하게 된다는 생각을 전에 해본 적이 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그것도 평생동안이나 하고 싶은 일 같은 것은 19년 아니라 59년 산 사람들도 대부분 잘 모르는 것 같아 보인다. 근데 마치 그걸 왜 모르냐는 듯이 쉽게도 물어보고 선택하라 한다. 심지어 그 직전까지 18년 세월동안에는 그런 고민을 할라치면 ‘쓸데없는’ 생각한다며 몰아붙여놓고서는 말이지.

 

상황은 전보다 더 안 좋아졌는데, 이젠 학교와 전공뿐 아니라 학자금 대출이라는 거대한 선택이 패키지처럼 따라오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흔한 전단지처럼 슬쩍 따라온 이 선택은 향후 약 10년의 시간과 그 이상의 삶을 볼모로 잡는다. 많은 사람들은 그 선택을 할 당시에 너무 어리거나, 부모님께서 갚아줄 것 같거나, 결국 대부분이 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고민을 깊이 한다하더라도 대학조차 안 나오면 답이 없는 걸 알기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진학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거 ‘선택’이라고 할 수 있나. 뭔가 이상하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사회적으로 인식됐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아는 분이 대학을 그만둔 걸 후회한다며 고등학교를 그만뒀어야 했다고 썼는데, 맥락은 자세히 몰라도 심정적으로 공감이 됐다. 나도 대학까지 다녀보고나서야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소설집의 제목이 ‘다행히 졸업’이지만 오히려 불행히도 졸업까지 버티고야 만 건 아닐까 싶다. 많은 선택들이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선택된다. 두 가지 선택지가 분명 있는데, 그게 현재 상황을 바꾸는 쪽과 그냥 있는 쪽의 두 가지이고 양쪽을 저울질하며 계속 고민을 하면 그 고민하는 동안 현재 상황 쪽으로 계속 유지가 되니까, 그러다가 그냥 결정을 못함으로써 ‘그냥 있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는 거다. ‘졸업’의 주인공도, ‘다행히 졸업’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어쩌면 내 학창시절도 그렇지 않았나 돌아본다.

 

읽어보면 밝고 즐거운 학창시절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는 없다시피 하다. 그나마 유쾌한 게 2002년 월드컵 때의 남고생들 이야기 정도? 그도 그럴 것이 김보영 작가님의 기획자의 말을 보면 섭외할 때 “당신의 학창시절은 거지같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읽다보면 너무 거지같아서 진짜 화가 나고 눈물도 난다. 내 학창시절이 떠올라서 같이 답답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나 정도면 참 좋은 학교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구나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흔들리면서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결국 작가가 된 사람들의 학창시절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였다.

 

이 작품집은 기획부터가 정말 탁월한데, 1990년에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의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2015년도의 고등학생의 이야기까지(이 작품은 유일하게 본인의 경험에 바탕을 두지 않고 취재를 통해 썼지만)를 단편으로 만들어 엮었다는 거다. 가장 최근의 시간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순서로 작품들이 놓여있는데, 참 많이 다른 시대와 아이들이라는 게 느껴지면서도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묘한 비슷함이 있다. 그런데 그 묘한 비슷함이 대체로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것들에서 기인한다는 게 슬프다. 그런 곳에서 잘도, 사람들이, 커왔다.

 

벌써 기억도 희미하고 뭐 그리 대단한 사건이 있었나 싶긴 하지만, 나도 언젠가 내 고등학교 시절을 글로 남기고 정리해보고 싶다. 꼭 소설은 아니더라도. 이 단편집의 기획의도대로, 그런 기억들이 다 잊히고 사라져버리길 원치 않는다. 우린 어떤 학교들을 지내왔으며, 학교란 대체 어떤 곳이어야 할까? 이 질문에 답은 없겠지만, ‘적어도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공감대를 계속해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추신: 이런 기획이 가능하다면 서로 다른 시대의 군대 경험 단편소설집이라든가 뭐 그런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군대 경험 역시 제대로 정리되지도 연결되지도 않은 채 ‘우리 땐 더했어’, ‘너넨 많이 좋아진 거다’ 식의 이야기만이 반복되고 있으니까. 군대와 학교의 공통점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예전엔 지금보다 더했다며 많이 나아졌다고 얘길 하는데도, 그렇다면 그 오랜 시간동안 마땅히 참 많이도 좋아졌어야하는데도, 여전히 뭣같다는 미스테리를 간직한 곳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