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에밀 파게 씀, 최성웅 옮김, 《단단한 독서(L'Art de Lire)》를 읽고

참참. 2016. 3. 27. 15:01


L'Art de Lire. 영어로 옮기면 'The Art of Reading'이 이 책의 원래 제목이다. 보통 '독서의 기술'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은데,(실제로 1959년에 한국 1세대 불문학자인 이휘영 선생님의 번역으로 《독서술》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적 있다.) 이번에는 《단단한 독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파리3대학에서 불문학과 독문학을 공부한 최성웅 선생님이 번역했다. 프랑스어를 공부해보고 싶어 무료강의를 찾아 선생님의 온라인 카페에 들어갔다가 소개글을 보고 읽게 됐다.

나는 책을 그리 많이, 열심히 읽는다고 하긴 어려울 수 있으나, 여튼 책을 읽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이나 독서 자체에 관한 책도 종종 읽게 된다. 돌이켜보면 기억나는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 야마무라 오사무의 《천천히 읽기를 권함》, 정여울의 《마음의 서재》, 목수정의 《월경독서》,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 등이 있다. 심지어는 이지성, 정회일의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도 읽어봤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엿보는 건 늘 즐거운 일이다. 친구 집에 놀러가도 책장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불문학에 조예가 깊은 이 프랑스 인문학자는 어떻게 읽고 있을까. 감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그의 깊은 내공을 느꼈다. '단단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데가 있다. 주의깊게 읽고, 거듭하여 읽으며 오랜 세월 많은 연구를 해온 사람으로서 신중하게 썼다는 느낌이다.

아쉬웠던 것은 내가 책에서 언급되는 불문학 작품과 작가들을 접해본 적이 거의 없다보니 저자의 감탄이나 비판을 공감하는데 한계를 느꼈다는 것이다. 물론, 전혀 모르는 나도 재밌게 읽긴 했으나, 등장하는 작가들을 안다면 훨씬 더 재밌지 않았을까 싶다. 역자가 이 책에 그토록 감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불문학을 오래 공부한 영향도 있을 거다. 그에게는 이 책에서 어떤 것들이 더 보일지 참으로 궁금하다.(물론 번역, 각주, 역자후기 등에서 일부 엿볼 수 있다.)

저자인 에밀 파게가 추천하는 독서법은 크게 느리게 읽기와 거듭하여 읽기다. 나는 빨리 많이 읽고싶어하지만 빨리 읽을 줄을 모른다. 그래서 한때는 진지하게 속독같은 걸 배워볼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천천히 읽으라는 이야기를 접할 때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근데 꼭 그것 때문이 아니라 일리 있는 말이 많다. 야마무라 오사무는 《천천히 읽기를 권함》에서 자신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천천히 여러번 읽으면서 새롭게 느낀 것들을 예로 들어가며 천천히 읽기를 권하는데, 에밀 파게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한다. 사실 야마무라 오사무는 자신의 책에서 에밀 파게의 이 책을 인용하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이 책을 읽고 그것에 본인의 구체적인 경험을 붙여 그 내용이 나온 걸지도 모르겠다. 야마무라 오사무도 에밀 파게의 이 책을 읽으며 천천히 읽으라는 말을 보고 무척 반가웠다고 얘기하는데 숨길 수 없는 반가움에 글에서 묻어났던 걸로 기억한다.

거듭 읽기로 넘어가서, 나는 책을 거의 한번만 읽는 편이다. 두번이나 그 이상 읽은 책은 정말 몇권없다. 여러번 읽기를 권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약간 자책감마저 있는 부분인데, 저자는 '당연한 말이지만, 진정 다시 찾아보고자 욕망할 때만 다시 읽어야 한다. 다시 책을 펼치고자하는 욕망은 그 책이 뛰어나거나 우리 성정에 들어맞는 것임을 보여주는 매우 큰 증거다'라고 씀으로써 내 부질없는 자책감을 좀 덜어줬다.

책을 읽는 즐거움의 여러 측면을 섬세하게 구분하여 이야기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심지어 '감탄하지 않는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데서 오는 즐거움'까지도 논하고 있다. 책을 읽는 자신이 읽으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이토록 끊임없이 자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다. 천천히 여러번 읽으니까 가능한 걸까.

결론적으로 저자는 우선 자신을 내던져 작가를 이해할만큼 푹 들어가 읽고, 그러면서도 그 뒤에 다시 그렇게 가닿은 생각을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고 작가와 토론해야한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인데, 일단 작가를 믿고, '잘 이해했다는 확신이 서고나서야 반대해야 한다'는 거다. 시종일관 이런 태도로 책을 읽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내가 그동안 독서를 참 대충대충해온 건 아닌가 싶어 좀 씁쓸하기도 하다.

끝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을 옮기며 책 이야기를 마친다.

어떤 작가를 다시 읽든지 간에, 더 많이 느끼든 더 적게 느끼든, 더 잘 이해하든 매우 잘 이해하든 심지어 덜 이해하든, 그 모든 것은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일부며 그 원인 또한 우리의 삶에 있다. 따라서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다시 살아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