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여성환경연대 주은진, 김란이 사람책 독후감!

참참. 2014. 5. 27. 01:22

다른 삶을 상상하는 사람 도서관

- 여성환경연대 사람책 독후감


 

<주은진 사람책>

그의 목소리를 타고 전해져오는 시골의 향기를 맡았다.

 

그가 독자들에게 한 첫 요청은 제목에서 청순한이라는 낱말을 지워달라는 것이었다. 어찌 되었건 그는 넘치는 생기로 빛을 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정글에 가서 살다온 건가 싶을 고생담을 주섬주섬 꺼내며, 아주 밝게 수다를 떨었다.

아니, 나도 세탁기 없이 잠깐 살아봤는데 진짜 빨래가 얼마나 중노동인지 한 달도 못 되어 지쳤다. 그게, 나는 그냥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콸콸 나오고 심지어 온수까지 나오는 집에서 그걸 했다. 이분은? 가마솥에 불을 때서 물을 데우고, 그 물로 세수하고 씻고 난 뒤 빨래까지 했다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얘기.

아이를 뱃속에서 일고여덟 달을 키워놓은 상태로 집을 지었다는 얘기에는 허허허,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처음 시골에 내려가셨을 때가 딱, 지금 내 나이 정도라고 하시는데, 이거야 원. 나를 포함해 내 둘레의 또래들을 떠올려보면, 스타워즈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물론 그의 이야기가 시골 갔다가 고생만 한 얘기는 아니었다. 그 고생을 하고도 8년을, 그리고 여전히 살고 있다는 거니까 더 의미심장한 것 아니겠는가? 우선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살면서 한 번도 뭔가 해보고 싶다거나 그랬던 적이 없었어요. 농사짓고 시골에서 사는 것에 대한 책들을 읽었을 때 처음으로 가슴도 뛰고, 밤잠을 설쳐가면서 상상도 해봤어요.” ! 이 정도면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골로 내려갈 수 있었던 것도 이해가 된다.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지금, 바로, ‘무작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해내는 일들. 그런 이야기들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벅차다.

처음 상상했던 것들은 얼마간 그에게 감동을 주었다. 마당에 자라는 풀들이 순전히 그 초록빛이 너무 예뻐서 깎지 않고 내버려둘 정도로. 시간이 흘러 구더기가 끓는다는 표현의 탄생을 이해하고, 자연이 무섭다는 걸 실감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딱 그만큼의 온갖 고생도 했다. 이젠 김치냉장고와 세탁기 정도는 쓰고, 조금은 서울과 가까운 곳에 살기도 하고, 함께 사는 이의 다른 정체성도 인정하며, 아이를 어느 학교에 보낼까 고민한다.

아아- 이 독후감의 독자들도 느낄지 모르겠지만, 사람책을 빌린 나라는 독자는 여기까지 읽고 책을 반납해야만 했다는 것이 참 아쉬웠다. 40분 대출에 연장은 20분이었는데, 몇몇 구절만 보고는 책을 덮는 게 어찌나 안타깝던지. 밥도 조금 더 먹고 싶을 때 그만 먹으라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뒷부분을 조금만 더 엿볼 수 있다면! 간절해지던 순간이었다.

크게 아쉬웠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간이 좋았다는 뜻이리라. 이야기 한마디 한마디에 이렇게 쫑긋귀를 세우고 들었던 것이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다. 뻔한 얘기지만, 고등학교 때 이렇게 수업을 들었으면 어딘가에 갔겠지. 중요한 건, 내가 그 일에 가슴이 뛰지 않았다는 것. 그게 나라는 사람이 지금 서있는 곳과 앞으로 나아갈 곳을 말해주는 가장 큰 단서이자, 실은 하나뿐인 삶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거기에서 그의 삶을 찾았듯, 나 역시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걸 찾아 무작정뛰어들어, 기꺼이 고생스러울 수 있는 삶을 찾기를.

 

 

<김란이 사람책>

결국, 쉬운 길은 없다.

 

두 번째로 대출했던 사람책이 비혼여성공동체 김란이 사람책이었다. 내가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든 생각은, 독후감의 제목처럼 결국 쉬운 길은 없다는 거다. , 너무 비관적이라고? 글쎄, 꼭 그렇지는 않다. 차근차근 짚어보자.

지금까지 나름 성공사례라고 하는 사례들을 여럿 보면서 느낀 건데, 처음부터 그리 될 줄 알고 시작했던 곳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한 군데도 없었다. 듣다보면 다 저기서 저런 우연이?’, ‘어쩜 저렇게 잘 맞아떨어졌을까하는 곳들이 있다. 써놓고 보니 마치 천지신명의 조화라든가 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딱 그거다. 혹자는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바로 그것.

그의 이야기에도 나온다. 이런 거 하고 싶다는 사람들끼리 묶어서 그룹을 만들어준 적도 있었다고. 다 실패했단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선물 받고 싶었던 것 같다고. 누군가는 이렇게 가고 싶다는 깃발을 들고 있어야 사람들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는 것 같다고. 오랜 시간과 노력도 필요하고, 그동안 상처받은 적도 많다고. 우리도 처음에는 그냥 독서모임으로 시작했고, 모두가 꼭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고.

몇 번을 곱씹어도 정말 맞는 얘기다. 박태환과 비슷한 키와 몸무게, 그와 똑같은 코치 밑에서 똑같은 훈련, 그와 똑같은 식사를 한다고 해서 그와 같은 수영선수가 되는 건 아니다. 하물며 어떤 단체나 모임의 경우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는 만큼, 그 어떤 예측도 불가하다. 수능문제 풀듯이 어떤 공식에 a, b, c를 대입한다고 늘 같은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공동체부터 생각하면 어렵다고. 결국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아마 각자의 지향을 가지고 방향을 찾아가며, 각자의 마음을 다해 함께 그 마음과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함께해보는 것뿐이지 않을까. 사람이 만나면 뭔가 생긴다. 일단 만나는 것. 그게 참 소중한 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즈음이다.

세 걸음 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오늘 한 걸음 걷기를 망설이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간이 모든 미래를 예측하고, 모든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며 살았던가.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막 살자는 것이 아니라, 어찌 되었건 내일 일은 알 수 없고, 우리는 오늘을 살 수 있을 뿐 아닌가. 결국 앞의 사람책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금 가슴 뛰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과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하고, 해나가는 수밖에는 별 방법이 없다.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 뜻에서 쉬운 길은 없다는 거다.

무슨 펀드를 해서, 어떤 보험에 들어서 미래를 설계하고 노후를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나? 그건 환상이라고 본다. 그는 0원으로 사는 데 익숙해졌다고 했다. 아마 첫 사람책의 그도 처음부터 가마솥에 물 데워서 씻는 게 익숙하진 않았을 거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없이 살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은가보다.

앞서 성공, 실패라는 낱말들이 나왔는데, 깊이 생각하면 그런 건 없는 거 같다. 당장은 실패같은 일도 거기에서 뭔가 배우고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며, 성공이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뭔지는 모두에게 다 다르니까. 우리는 성공혹은 실패가 아닌 여전히 오늘 속에 산다.


* 참가했던 행사 정보 - http://ecofem.or.kr/12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