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목수정, 《야성의 사랑학》

참참. 2013. 9. 25. 07:53


야성의 사랑학

저자
목수정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0-09-2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 그녀가, 연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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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은 왜 더 이상 거리에서 그녀들을 쫓지 않나'

뒤표지에 들어간 이 문장 하나로 충분했다. 이 책을 집어들기에.


늘 사랑하고 싶었지만,

더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글들.


사랑은 거의, 본능이다.

우리 몸을 지탱해나갈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본능적으로 배가 고파지고 음식을 찾게 되는 것처럼.

쉬어야할 때가 되면 본능적으로 피곤해지고 졸려서 잠이 쏟아지는 것처럼.

우리 삶을 지탱해나가려면 사랑 역시, 지속적으로 필요하니까

본능적으로 사랑을 찾게 된다.


근데 점점, 그렇게 삶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사랑조차도, 온갖 이유를 대며 미루고 또 못하게 하는

세상이 되가고 있다. 연애를 포기하는 세대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건, 포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해야하니까, 밥먹는 건 포기한다거나 잠자는 건 포기한다거나, 그런 것이 성립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루이틀이나, 단기간동안은 그런 비인간적인 일도 가능할지 모르나,

몇 년 이상이나 되는 기간동안 사람이 밥을 안 먹고, 잠을 안 자고 살 수는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일 터.


물론, 그 사랑이 꼭 이성 사이의 연애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사람 사이에는 수도없이 많은 사랑들이 존재하고 오고가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놓고 어느 세대라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합에 대해 연애를 포기해야한다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말이 툭하고 실제의 언어로 던져져나왔을 때는,

무지막지하게 심각한 사태가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난 사랑을 하니까,

불안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내가 뭔가를 해야한다는, 그러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에서

놓여나는 느낌이었다. 있는 그대로 충분했다. 뭔가 열심히 더 채워야만 한다는 강박이 필요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만들고 싶어졌다.

어딘가에 함께 가고 싶고, 맛있는 걸 함께 먹고 싶고, 그 전까진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요리라는 걸 하게 되고.

글도 쓰고 싶고, 세상을 더 좋은 곳, 더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지만, 뭔가를 더 하고 싶어졌다.


우린 흔히 "사랑이 밥 먹여 주냐?"는 말을 던진다. 그럼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럼 밥 먹으려고 태어났냐?" 고작 생존만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문명은 지금까지 쉬지 않고 부수고, 새로 쌓아 올리고, 때론 전쟁도 하고, 폭동도, 혁명도 일으키면서 이렇게 지지고 볶으면서 달려온 건가? 고작 밥 먹고 살려고?"(316쪽)

이렇게 당당한 일갈.

밥 먹여 주냐라는, 대답해야된다고 생각해버리면 정말 대답하기 어려워지는 이 질문을

이렇게 박살내버릴 수 있는 힘이 멋지다.

참 많이도 듣는다. 유사한 질문으로 인문학이 밥 먹여 주냐 등등이 있다.

모든 걸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려는 말도 안되는 논리들.

사랑이 '쓸모'가 있냐, 인문학이 '쓸모'가 있냐, 밥 먹여 주냐, 이런 식이다.

밥은 안 먹여주는데, 밥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만큼 그것들이 없으면 우린 살 수 없다.

밥만 먹으려고 태어났냐.

왜 사랑이 밥까지 먹여줘야 되냐, 인문학이 왜 밥까지 먹여줘야 되냐.

밥 안 먹여주니까 더 필요한 거다. 바로 그놈의 '쓸모'가 없기 때문에 필요하다.



사랑하고 싶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단 한 치의 틈도 없이 꼬옥 끌어안고 있고 싶다.

꼭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갑자기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의 나'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