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 118

《리틀라이프》, 한야 야나기하라, 권진아 옮김

그가 했던 2막 끝 마지막 대사는 절대 잊지 못했다. 아내가 떠나고 싶다고, 이 결혼에서 충족감을 느낄 수 없다고, 분명 더 나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선언하자, 남편이 하는 말이다. 세스 하지만 이해 못 하겠어, 에이미? 당신은 틀렸어. 모든 걸 다 주는 관계는 없어. '어떤' 것들만 주는 거라고. 누군가에게서 바라는 것들을 다―예를 들어, 성적으로 잘 맞는다거나 대화가 잘 통한다거나 경제적 지원이라거나 지적 관심사가 잘 맞는다거나, 상냥하다거나, 충실하다거나―생각해보고 그중 세 개만 택해야 하는거야. '세 개', 바로 그거야. 아주 운이 좋으면 어쩌면 네 개를 가질 수도 있겠지. 나머지는 딴 데서 찾을 수밖에 없어. 원하는 걸 다 주는 사람을 찾는 건 영화 속에서나 있는 일이야. 하지만 이건 ..

마스다 미리 -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내일이 아직 무엇 하나 실패하지 않은 새로운 하루라고 생각하면 기쁘지 않아?' 빨강머리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니. 읽어보고 싶어졌다. 미뤄두었던 넷플릭스의 시즌3도 봐야겠다. 마스다 미리의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를 보다가. 웹툰은 종종 봐도 만화책은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20.08.14. 페이스북

반지현, <스님과의 브런치>

무척 오랜만에 에세이를 읽었다. 작가님과 인연이 있어 알게 된 책인데, 스스로 요즘 책을 잘 읽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사고서도 읽지 않을까봐 망설이다 1쇄가 다 나가고 2쇄를 찍고서야 주문했다. 작가님과는 내가 좋아하던 한 출판사에서 견습으로 잠깐 일 경험을 할 때 만났다. 그래봐야 3개월 남짓 다녔고, 그 뒤에도 몇번 만나긴 했으나 몇년이 더 지나면서 특별히 연락하는 일 없는 사이가 됐었다. 나는 인스타를 안하고 작가님은 페이스북을 거의 안해서 SNS로 소식 듣는 일조차 없어진 지가 2~3년은 됐을 거다. 그러다 출간 소식을 들었다. 출간 소식에도, 주제가 사찰요리라는 데도 놀랐는데, 출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2쇄를 찍는다는 소식에 또 놀랐다. 나도 출판사에서 일해봤고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유명인..

미래를 칭찬하는 마음

내 결과물은 엉망이었는데도 스님은 "이제 잘하네요!"하고 칭찬하셨다.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중략) 평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묵묵히 믿고 기다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눈앞의 현재가 아닌, 오지 않은 미래를 서둘러 칭찬하는 예쁜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채를 썰며 배웠다. - 반지현, , 70-71쪽 정말 그렇다. 정말 그렇다. 정말. 이렇게 믿어주고 묵묵히 나아짐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삶이 나아지는지.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있는가.

스님과의 브런치

반지현 작가님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책, 스님과의 브런치. 저 사진이 글 내용과 참 적절하게 들어가있다고 생각했는데 우연일 리가 없지, 단어 하나, 쉼표 하나, 여백 하나까지도 의도와 정성, 강박과 밤샘, 예술가다운 집착으로 완성된 작품이었다. 고르고 골라 배열한 단어들은 술술 읽자면 한없이 부드럽게 읽을 수 있게 배려되어있지만, 이 한 문장에 담겨있을 시간을 생각하면 그 무게와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서, 평소처럼 지나치듯 쉬이 다음 문장으로 옮겨갈 수 없었다. 새삼스럽게 좋은 책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하고 느꼈던 시간. 실은 요즘 보던 책만 보고 새로운 책은 정말 오랜만에 접했는데,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시간을 들여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고,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며 오관게를 ..

<당신도 초자연적이 될 수 있다>, 조 디스펜자

수십 년 동안 자동으로 해온 행동, 무의식적인 습관, 반사적인 감정반응, 굳어진 태도, 그리고 세대를 거쳐 내려온 유전 프로그래밍을 거스르는 일이 처음에는 당연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위협을 느낄 때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대로 행동하거나, 사회적으로 교육받은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이 속해 있던 집단이나 무리, 패거리의 의식을 떨치고 나오는 존재는 누구든 미지의 것이 주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능성은 미지의 영역에서 살아갈 때에만 생겨나는 것임을 잊지 말자. - , 조 디스펜자, 472쪽

나만 그런 거 아니었구나?

우울감의 기억이 아직 많이 남아있을 때 허지원 선생님께서 쓰신 를 빌렸다. 도서관에 반납해야하는 날짜가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아서 뒷부분을 마저 읽고 있는데, 책 진짜 좋다. '우울이 우리의 어깨를 붙잡고 아래로 내리 누르기 시작하면, 단순하거나 중립적인 사건들에도 회의감은 고개를 쳐들고, 우리는 자꾸만 '왜?'를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왜 살아야하지?" "왜 죽으면 안 되지?" (중략) '왜?'가 어디 있어요. 그냥 하는 겁니다. 다들 되게 생각 있어 보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삶에 뭔가 큰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기능적 요소라기보다는 상처 입고 고단했던 자기애가 남긴 하나의 증상같은 것입니다. 삶에 큰 의미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진심이 굳이 통해야 하나

"내 가슴속의 모든 진심이 굳이 통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생각해 보면 나조차도 모든 사람의 진심을 일일이 알아주며 살아오지 않았으면서. '아, 맞다, 그래도 너는 이런 진심이 있었지?' 하며 살지 않았잖아요. 진심이면 언젠가 통할 것이란 믿음은 타인의 인정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타인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했을 때에 적개심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의, 그럴듯한 자기기만 입니다." (허지원, 중에서) 뼈 때리는 지적이다. 사실 나 역시 진심이면 통할 거라는 믿음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진심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이른바 '소울메이트')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저자는 소울메이트를 찾는 사람에 대해서도 "실은 예측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상대를 원하는 것"이라..

『반란의 영문법』, 이장원, 지식과감성

여차저차하다보니 대학교 2학년 교양수업 이후로 한 8년은 손댄 적 없던 영어를 공부하게 됐다. 그러던 와중에, 시험공부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흥미로운 영문법 팟캐스트를 알게 됐는데, 바로 '반란의 영문법'이었다. 그 뒤로 밥 먹을 때나 이동할 때 틈날 때마다 들었다. 팟캐스트에는 아직 관계대명사나 가정법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질문 이메일을 보내면서 책이 나와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이메일 답변도 굉장히 친절하게 해주셨다.) 영어를 잘 못하면서도 기존에 배운 영문법의 설명방식이 늘 맘에 안 든다고 느꼈던 터라 장원샘의 설명이 너무 좋았고(그렇다고 갑자기 영어를 잘하게 될 순 없지만), 책도 살 수밖에 없었다. 준비하는 독학사 시험에도 상당히 도움을 받았고(2단계), 받고 있다(3단계). 지금 학점은행제도로..

10년만에 다시 한번 『앨저넌에게 꽃을』을 읽고

2013/05/09 - [내가 바라는 책읽기/고교시절 책읽기(~2008)] - , 대니얼 키스 10년 전에 읽었던 소설 『앨저넌에게 꽃을』. 당시에 큰 감동을 받고 블로그(당시엔 네이버블로그)에 짧은 리뷰(위 링크)도 썼었는데, 이번에 다른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다시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오래 지나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어렴풋한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아 이전 번역본과의 비교는 어렵지만, 여하튼 황금부엉이 출판사에서 나온 새 번역본으로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됐다.고등학생이던 나와 20대 후반이 된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봐야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해보게 됐다. 스포일러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소설의 내용을 좀 이야기해보자면, 주인공 찰리의 일기와도 같은 경과보고서 속에서..

강성미, 『가족의 시간』 그 가족의 삶을 함께 느끼다

첫 책 『내 아이가 사랑한 학교』를 내실 때 샨티출판사에서 잠시 신세를 지고 있었던 덕에 인연을 맺게 된 강성미 선생님께서 두 번째 책을 내신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부탁하셨다며,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자마자 집으로 보내주셨다. 그렇게 이번에 함께 출간된 『가족의 시간』, 『나는 몇 살의 영혼인가』 두 권의 책을 받게 됐다. 『나는 몇 살의 영혼인가』는 선생님의 시집이다. 시집도 따로 내셨지만, 『가족의 시간』도 시적이다. 발도르프 교육에 집중한 지난 책도 참 좋았는데 이건 이것대로 참 좋다.프롤로그를 펼쳐드니 벌써 감동이다. “아이들이 있는 삶에 적응하려던 노력만큼아이들이 떠난 삶에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중략)떠나보내는 게 무조건 더 힘든 일이다. 잘 보내야지,멋지게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