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

반지현, <스님과의 브런치>

참참. 2020. 7. 22. 07:22

 

무척 오랜만에 에세이를 읽었다. 작가님과 인연이 있어 알게 된 책인데, 스스로 요즘 책을 잘 읽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사고서도 읽지 않을까봐 망설이다 1쇄가 다 나가고 2쇄를 찍고서야 주문했다. 작가님과는 내가 좋아하던 한 출판사에서 견습으로 잠깐 일 경험을 할 때 만났다. 그래봐야 3개월 남짓 다녔고, 그 뒤에도 몇번 만나긴 했으나 몇년이 더 지나면서 특별히 연락하는 일 없는 사이가 됐었다. 나는 인스타를 안하고 작가님은 페이스북을 거의 안해서 SNS로 소식 듣는 일조차 없어진 지가 2~3년은 됐을 거다. 그러다 출간 소식을 들었다.

출간 소식에도, 주제가 사찰요리라는 데도 놀랐는데, 출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2쇄를 찍는다는 소식에 또 놀랐다. 나도 출판사에서 일해봤고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유명인도 아닌 작가의 대형출판사에서 나온 것도 아닌 첫 작품이 1쇄를 다 판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걸 너무 잘 알기에.

이전까지 나에게 작가님의 이미지는 농담을 좋아하는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어떤 면에선 생각도 깊어보였지만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무겁고 진지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노란색의 밝고 예쁜 표지에 내 손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책 속엔 진심이 꾹꾹 눌러담겨 있었다.

한 1/4이나 읽었을까싶을 때 이미 1쇄를 다 판 것이 더 이상 놀랍게 느껴지지 않았다. 책을 펴기 전까지는 요런 작은 책은 금새 다 읽어버리고 후기를 딱 써서 페이스북에 올려야지하고 생각했는데, 글 하나, 문장 하나마다의 여운이 깊어서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유머코드가 또 건강식 먹다가 가끔 먹는 달콤한 디저트처럼 곳곳에서 웃고 있었다.

책이 너무 좋다는 솔직한 마음을 전하려 오랜만에 연락했다가 같이 밥을 먹었다. 책 얘기를 하다보니 작가님이 책에는 그렇게 멋있게 썼는데 난 야근하느라 너무 바쁘고 지쳐서 밥도 제대로 못 해먹을 때도 많고 요즘 집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드라마 본다고, 난 기만자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웃으면서 얘길 했다. 당연한 소리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옛날에 책을 쓴 저자들을 처음 만나봤을 때는 책을 읽고 내가 기대했던 어떤 모습들과 다른 모습에 좀 당황하거나 실망한 적도 있고, 또 저자를 만난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걸 지켜보거나 그런 경험담을  많이 들어봤다. 이젠 안다. 나도 그렇듯이, SNS가 그렇듯이, 당연히 책에 쓰인 글도 자신의 가장 좋은 부분을 모으고 모아 내는 것이 기본임을. 아프고 힘든 얘길 쓰더라도 어쨌거나 정리되고 정제된 모습으로 의도를 갖고 쓰여진 것일 수밖에 없음을. 그건 기만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다.

누구도 자신의 가장 좋을 때의 모습, 그 때의 마음가짐으로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살 수는 없다. 내 감정을 지나치게 계속 숨겨야만 하고 솔직한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일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이지만, 평상시에 내 모든 감정을 다 드러내지 않고 상황과 역할에 맞춰 적당히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며 사는 것은 몹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꼭 모든 걸 드러내야할 필요도 없도 그럴 수도 없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어려운 이유는, 남들과는 다르게 나는 내 속마음과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자잘한 찌질하거나 나쁜 생각들까지 다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다른 사람들을 볼 때는 어쩔 수 없이 그가 보여주는 모습 위주로 볼 수밖에 없고 그가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조금은 짐작해도 전부 알 수는 없다. 그래서 그가 크게 봤을 때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고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면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난 그게 진실된 모습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처럼 어마어마한 반전으로 알고 보니 밤마다 나가서 사람을 죽이고 뭐 이런 극단적인 게 아니고서야. 근데 자기 자신에 대해선 그게 안 되니까. 잠깐 떠오르는 절대 행동에 옮긴 적도 없고 평생 옮기지도 않을 끔찍한 생각 하나하나까지도 다 마주하고 기억하고 그걸로 인해 나 자신 나 스스로에 대해 안좋은 인상을 자꾸 가지게 되기도 한다.

작가님은 지금 본인의 일상이 책에서 이야기한 모습들과 다른 점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있으신 것 같지만, 난 오히려 그렇게 성실하게 타지에서 독립해서 결코 녹록지 않은 자신의 삶을 꿋꿋이 꾸려나가는 모습이 멋졌다. 집에 와서 잠만 자기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그 빛나는 것들을 찾고 반짝이는 순간들을 잡아내고 예쁜 마음들을 조심히 모은 것 아닌가. 그렇게 모은 것들을 다시 또 소중히 정리하고, 다듬고, 칠하고, 광을 내고, 때로는 자신을 위해 때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놓은 것 아닌가. 그 마음이, 그 진심이 어떻게 기만이 될 수가 있을까.

독립한 성인으로서 자신의 일상을 온전히 감당해내면서 이런 요리를 하고 이런 마음으로 이런 글을 쓴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멋있는 사람일까. 나 같으면 그런 노력으로 이런 책 한 권 냈으면 1년은 쉬어야했을 거라고 얘기했는데, 정말 진심이었다. 아니 더 솔직한 마음은, 나도 책 한권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안일하고 게으른 마음으로 책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내가 너무 감탄하니까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의지를 갖고 하게 됐다기보단 그건 그냥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참.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누가 시켜서 하면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 해도 그렇게 못했을 텐데, 정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느낌으로 이루어졌겠지? 근데 그게 바로 열심히 한 거고 그게 바로 대단한 건데!

우리 사회의 열심이나 열정이나 노력이나 '최선'에 대한 기준은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그런 사람이 어딧어, 싶을 정도로. 물론 없지는 않다, 한 명도 없었으면 그저 환상이었겠지만 가끔 있어서 그 사람들이 자꾸 매체에 노출된다. 당신도 이 정도는 노력해야한다는 식으로. 이 정도도 안했으면 그건 그냥 니 노력이, 니 열정이 부족해서 그런 거니까 남탓, 상황탓 하지 말라는 식으로. 그런 걸 보면 열정이 솟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보고만 있어도 지칠 때가 있다. 하루에 8시간씩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열심히 하는 거잖아. 하루에 12시간, 15시간씩 해야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잖아.

어째 책과는 점점 상관없는 얘기가 되는 것 같아서 갑작스럽지만 마무리해야겠다.

 

 

"여러분, 쫄지 마세요! 재료 앞에서 안달복달하면 재료가 얕봅니다. 농담 같죠? 진짜예요."

(중략)

우리 모두 쫄지 말자. 쫄려고 태어난 건 아니니까. 우린 맛있는 걸 먹으려고 태어났고, 인생에 튀길 건 너무나 많다.

- 반지현, <스님과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