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

《송해 1927》, 송해X이기남 저

참참. 2021. 12. 20. 23:23

 

나는 영화를 별로 보지 않는 사람이다. TV도 거의 보지 않는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로는 (군대를 제외하면) 생활공간에 TV가 있었던 적이 없고 굳이 별로 찾아서 보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그걸 안 봤다고?"같은 말을 듣는 게 일상이다. 때문에 연예인도 아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보통 '에이 설마'라고 하는 사람도 잘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물론 송해 선생님을 모를 순 없다. 집에 TV가 있던 시절에 나 역시 전국노래자랑을 꽤 여러번 봤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오랫동안 현역으로 계속 하고 계시니까 말이다. 그래도 역시 큰 관심은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나와 만날 일도 없고 상관도 없는 연예인에게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개봉한 영화와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을 선물 받고, 빌런(!) 탈출을 위해 읽어보게 됐다. 아는 사람이 참여한 영화이고 아는 사람이 쓴 책이므로. 송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상태이다보니 처음에는 재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긴 세월을 살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다.

그는 딸, 아들, 딸을 낳아 총 셋의 자식을 키웠는데, 그 중 66년생인 아들을 86년에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 충격으로 당시 많은 방송활동을 잠시 쉴 수밖에 없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국노래자랑>을 맡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전국노래자랑은 전국을 돌아다녀야하는 스케줄 때문에 서울에서 많은 방송에 출연하고 있는 사람이 맡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 그렇게 88년도에 시작한 전국노래자랑을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이 책은 동명의 영화 촬영과정에서 했던 인터뷰들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영화(아직 못 봤지만) 촬영과정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뜻깊고 또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아들의 죽음 이후에 시작하게 된 방송을 통해 전국을 넘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마 그 누구보다도 다양한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또 듣는 일을 한 그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그의 아들의 노래를 아들 사후 약 35년이 지나 처음 듣게 된 것이다. 

'딴따라'라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자신이 딴따라임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여겼고 비슷한 길을 걷는 선후배들을 누구보다 존중하고 아낀 그였고, 본인도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반대를 이기고 그 길을 걸었음에도 아들이 기타 치고 음악하는 것을 너무 힘든 길이라 생각해 반대했었다고 한다.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가장 후회하는 것도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오토바이 타는 것과 음악하는 것)을 반대했던 것이라고 몇번이나 얘기했다. 아들이 이미 수십 곡이나 되는 노래를 만들어 녹음한 카세트테이프가 있다는 것을 그는 까맣게 몰랐으며, 그의 막내딸이 이번 영화 촬영 인터뷰 과정에서 친오빠가 자신에게 녹음해 주었던 것이라며 카세트테이프를 찾아 내놓으면서 제작진이 먼저 알게 되어, 송해 선생님께 아드님의 노래를 들려드리기에 이른다.

아들이 먼저 가고나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노래를 들으러 다닌 그 긴 세월 뒤에 만난 아들의 노래. 그는 그 노래를 자신이 불러보아야겠다고 선뜻 마음을 내지만, 결국 쉬이 부르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기막힌 인연이 나오는데,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그 노래를 보관했던 막내따님의 고등학생 아들이 또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손자가 자신에게는 외삼촌인 죽은 그의 아들의 노래를 불러 녹음을 하게 된다.

책 말미에는 이 영화의 PD이자 본인이 직접 하기도 하고 다른 영화제작팀과 함께하기도 한 인터뷰들을 엮어 책으로 낸 저자의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그걸 읽고서야 어렴풋하게나마 이 영화가 저자의 삶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라포(Rapport)가 형성되지 않으면 이런 작업은 절대로 할 수가 없는 작업이다. 저자는 영화제 스태프를 하다 영화 PD를 처음 해봤다고 하는데, 그 자신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모든 일을 <다> 하는 직업"인 그 일을 해낸 것도 놀랍고, 송해 선생님이 전국노래자랑을 시작하실 때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었으니 주인공인 송해 선생님과 그 주변 인물들과는 (기존에 알던 사이도 아닌데다) 세대 차이부터 엄청났을텐데 그 사이에서 2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적극적으로 라포를 형성해나감으로써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몹시 놀랍다.

여러 사람이 어지간히 진심으로 임하지 않으면 작품이라는 게 나올 수가 없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