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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

하루도 같지 않은 서쪽 하늘의 파노라마를 혼자 보는 것이 너무 아깝다고 했다. 친구, 친척, 이웃은 물론이고 이미 세상을 떠난 죽은 사람들까지 모두 불러 저 하늘을 보여주고 싶다고 엄마는 말했다. "그렇지? 너도 네 친구들 모두 불러 보여주고 싶지?" 도시에서 혼자서 침묵하는 법을 터득해가는 딸을 알지 못한 채 물색없이 뺨이 붉게 물드는 엄마에게 심통이 나서 대답했다. "내 친구들은 저런 것 봐도 아름다운 거 몰라, 그런 걸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 엄마의 눈빛에 한순간 당혹과 실망이 일더니, 잠시 후 단호한 눈빛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 친구들이랑은 놀지 마." 임대 아파트에 사는 친구랑은 놀지 말라거나 공부 못하는 친구와 놀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모르는 ..

집에 대하여

이 집을 구하기 위해 3개월간 직거래 사이트를 보고, 다솔 씨 기준으로 80점은 줄 수 있는 집이라 이사를 왔다면서요? 집 보는 안목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처음 자취방을 구할 때도 직거래 사이트에서 서울에 있는 모든 전세 알림은 저한테 오도록 설정해두고 하루 종일 봤어요. 좋은 집은 빨리 나가니까 직접 볼 기회가 생기면 아침 7시에 찾아가고 그랬죠. 이 집도 3개월 동안 매일 부동산에 전화하고, 앱을 보고, 직거래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구한 거예요. 엄마가 제 첫 자취방을 구할 때 이렇게 말했어요. “정말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많은 인생인데, 집이라도 들어오고 싶은 곳이면 좋겠다.” 전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너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내 공간은 마음의 중심을 잡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

일상/2020~2022 2022.02.07

누군가에게 마음을 쓴다는 건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누군가에게 마음을 쓴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TMI Too Much Information'를 가지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마음 상태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또 무엇을 가리는지, 요즘 무엇이 필요하다고 했었는지, 이 둘 중에 그 사람이라면 무엇을 고를지. 사소하지만 사실은 제일 중요한 그런 디테일을 알려고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물도 잘 줬는데 왜 시들어버린 거냐고 애꿎은 식물만 탓하는 사람이 되겠지. "내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을 곁에 둬야 한다. 그리고 나도 상대의 마음을 궁금해해야 한다. 나에 대한 마음을 궁금해하는 것 말고 그냥 상대의 마음이 궁금해야 한다. 우리는 궁금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따뜻..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지만

"우리는 아무 이야기나 서로에게 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낯 뜨거운 욕심이나 남들이 들었다면 재수 없다고 혀를 찼을 생각, 별로 재미없지만 꼭 하고 싶은 농담 같은 것을 얼마든지 들어준다. 네가 소철 화분에 물을 많이 줘 죽인 것에 두고두고 죄책감을 느낀다는 건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지만 나는 알고 싶다. 내가 어제저녁 고양이 키우는 꿈을 꿨다는 건 누구도 알 필요 없지만 그게 어떤 고양이였는지 너에게는 말해줄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아니었다면 무심히 흘려보냈을 삶의 사소한 조각들을 발견하고 있다. 오늘 저녁에는 퇴근해 돌아온 너에게 이 글을 읽어줄 것이다. 우리는 또 이걸로 한참 뒹굴거리며 수다를 떨겠지.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를 둥글둥글 감싸 안겠지. 서로를 보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리는 별거 아..

설날

이번 설연휴는 애인인 재인과 보냈다. 연휴 시작하는 토요일날 재인의 가족들을 뵙고 저녁 먹고 와서(우리 가족은 그 전주 토요일에 동생네 집 집들이 겸해서 만났다.) 일요일부터 화요일 점심까지 둘이 같이 보냈다. 함께 장을 봐와서 재인이 해주는 밥을 함께 먹고, 술도 한잔 하고, 영화 '포레스트검프'와 애니메이션 '엔칸토',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1을 함께 보고, 책도 읽고, 책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일기도 쓰고, 5km 달리기도 했다. 2월부터 시작하는 새해 빙고도 함께 써봤다. 새해빙고는 김신지 작가님이 에서 소개한 것으로 새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빙고판에 적고 달성하면 X표를 쳐서 친구들과 누가 빙고를 많이 달성하는지 공유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초심자이므로 3 X 3 빙고판을 만들어 9개씩..

일상/2020~2022 2022.02.01

요즘

요즘 선물받은 예쁜 노트에 좋은 구절들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을 펜으로 옮겨적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검색해볼 수 있는 형태의 기록을 더 선호하지만 펜으로 따라적어가는 것은 또 그만의 맛이 있다. 책은 고등학생 때는 최고의 도피처였고, 그 뒤로도 거의 언제나 즐거움과 깨달음을 주었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 얘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몇달 전부터 매일 비타민제를 챙겨먹기 시작했다. 달고 살던 피로감이 확실히 덜한 느낌이다. 문득 책을 읽는 것은 마음의 영양제를 챙겨먹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양제를 한번 먹어서는 큰 의미가 없다. 매일 먹어야한다. 밥도 아무리 잘 먹어도 내일이면 또 배가 고프고, 사랑도 아무리 받아도 내일 또 고프듯이, 책을 오늘 읽어도..

일상/2020~2022 2022.01.28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제주에서 문득 이 문장을 떠올렸다. 함께하는 여행에서, 곁에 있지만 잠시 책과 함께 각자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던 그 순간에.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이 문장이 며칠동안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내가 꿈이 없는 줄 알았다. 그저 행복하고 싶었다. 삶에서 그렇게까지 열망하는 것도 없고 대단한 목표도 없었다.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다 사랑받기 위해 해온 일들이다. 사랑받기 위해 꼭 뭔가를 해야할 필요가 없다는 문장을 아무리 읽어봐도, 나에게 현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잠깐의 사랑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다. 사랑받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부끄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스스로도 어째서 남이 사랑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는건가 하는 마음부터 든다. 그런 말을 ..

일상/2020~2022 2022.01.20

한 해의 끝/시작

한 해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한 해의 마지막날엔 재인과 함께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재인의 가족분들과 식사를 했어요. 새해 첫날에는 강릉에 가서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식사를 하고 별을 보았습니다. 1월2일 아침에는 바다에서 해돋이를 보고 고향집 눈 쌓인 언덕에서 썰매도 탔어요.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한 해동안 잘한 일들을 적어보고 서로 나누었습니다. 감사한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요. 회사에는 작년말에 CTO가 새로 영입되셔서 새해 첫 출근한 오늘부터 자리도 바뀌고 팀도 바뀌었습니다. 업무는 당장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협업툴 Jira 도입이 시작되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세팅이 되는 거 같습니다. 맡게 되는 책임도 다소 커지고요.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한 해입니다. 한편으로는 지금에서 특별히..

일상/2020~2022 2022.01.11

무용한 것들을 사랑했으면

https://www.podbbang.com/channels/15135/episodes/24215170 215-1 [오은의 옹기종기] 양다솔 작가 “농담이 저의 1순위 무기입니다 ㅋㅋ” 오은 : 오늘 보이차를 들고 오셨네요. 좋아하시나 봐요? 양다솔 : 네, 밥은 못 먹어도 보이차는 마셔요. ㅎㅎ 저는 진짜 귀한 것들은 그만한 자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에서도 주고 금전적 www.podbbang.com 와 의 양다솔 작가님의 팟캐스트를 크리스마스에 만두를 빚으며 함께 들었다. 1시간 7분 32초부터 작가님이 '무용한' 것들에 이야기하는데 너무 좋았다. 명백히 우리의 에너지, 가령 시간과 돈과 내가 쓸 수 있는 체력과 관심은 한정되어 있다. 그것을 아는 것은 소중한 일이나,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의..

일상/2020~2022 2021.12.25

집에 늘 꽃이 있다

집에 늘 꽃이 있다. 냉장고에, 식탁에, 도시락에 늘 사랑이 가득하다. 때로는 자신은 먹지도 않는 것까지 요리해주고도 잘 먹어주고 표현해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어느 때보다도 집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 뭐든 미리 해놓길 좋아하는 부지런한 손길에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대체로 편안한 마음으로 지낸다. 별일 없다. 별일 없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하고 생각한다. 주말에 무얼 해먹을지 고민한다. 뱅쇼를 끓이려고 와인을 사다놓았다. 가끔 엽서를 쓰고 일기도 쓴다. 지금은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거야"라는 책을 읽고 있다. 재밌다는 드라마를 추천받았지만 드라마 볼 시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공부할 것도 많고 읽을 책도 많고 혼자 사는 집에도 늘 정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하고 설거지할 일도 많다. 그래..

일상/2020~2022 2021.12.23

《송해 1927》, 송해X이기남 저

나는 영화를 별로 보지 않는 사람이다. TV도 거의 보지 않는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로는 (군대를 제외하면) 생활공간에 TV가 있었던 적이 없고 굳이 별로 찾아서 보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그걸 안 봤다고?"같은 말을 듣는 게 일상이다. 때문에 연예인도 아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보통 '에이 설마'라고 하는 사람도 잘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물론 송해 선생님을 모를 순 없다. 집에 TV가 있던 시절에 나 역시 전국노래자랑을 꽤 여러번 봤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오랫동안 현역으로 계속 하고 계시니까 말이다. 그래도 역시 큰 관심은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나와 만날 일도 없고 상관도 없는 연예인에게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개봉한 영화와 같은 제목을 ..

두려움

얼마 전 상담에서 "어리석게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라는 문장을 완성시키라는 주문을 받았으나,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근데 최근에 내가 회사 화장실 문에 손을 데려고할 때마다 움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 화장실 문은 전에 다니던 회사의 화장실 문과 똑같이 생겼는데, 전직장에서 나만 유독 정전기가 심하게 올라서 문에 닿을 때마다 찌릿찌릿했다. 말할 것도 없이 겨울이 제일 심했으나 겨울에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중에는 정전기를 흡수해주는 키홀더를 사서 갖고 다녔다.( 이런 제품이다. https://shopping.interpark.com/product/productInfo.do?prdNo=6135345345&uaTp=1&&msid1=web&msid2=minis_prd&ms..

일상/2020~2022 2021.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