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마음이 머무는 구절

삶의 태도

참참. 2022. 2. 12. 10:21

 

하루도 같지 않은 서쪽 하늘의 파노라마를 혼자 보는 것이 너무 아깝다고 했다. 친구, 친척, 이웃은 물론이고 이미 세상을 떠난 죽은 사람들까지 모두 불러 저 하늘을 보여주고 싶다고 엄마는 말했다.
"그렇지? 너도 네 친구들 모두 불러 보여주고 싶지?"
도시에서 혼자서 침묵하는 법을 터득해가는 딸을 알지 못한 채 물색없이 뺨이 붉게 물드는 엄마에게 심통이 나서 대답했다.
"내 친구들은 저런 것 봐도 아름다운 거 몰라, 그런 걸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
엄마의 눈빛에 한순간 당혹과 실망이 일더니, 잠시 후 단호한 눈빛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 친구들이랑은 놀지 마."
임대 아파트에 사는 친구랑은 놀지 말라거나 공부 못하는 친구와 놀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모르는 자와는 친구를 하지 말라는 것이 내 엄마의 가르침이라니.
'아, 그러면 되는 거였구나' 허탈하고도 뿌듯한 마음으로 하하 웃던 순간들이 있다.
(중략)
매일 다른 안개를 뿜어내며 뒤척이는 산들과 한 번도 같지 않았던 하늘이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무릇, 웬만한 일에 대해선 괜찮은 법이다.
"언니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어요?"
어느 날 친한 후배가 물어왔다.
"인생의 많은 문제들로부터 담대하면서도 그 안에 숨은 작은 기쁨들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사람."
이렇게 적어 보냈더니, 후배는 과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같은 질문을 여러 지인들에게 해보았으나, 삶의 태도를 들어 답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 남들은 뭐라고 답하는데?"
"어느 중학교를 거쳐 어느 고등학교, 대학교를 보내겠다거나, 언제까지는 영어를 마스터하고 그다음엔 수학이라거나, 언제까지 책을 몇 권 읽히겠다는 답도 있었고요..."
"아... 그런 거였어? 정말 상상도 못했네~."
(중략)
그런 기준에서 자격 미달인 엄마지만 결국 내가 딸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삶의 태도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제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내는지를 보며 딸은 자란다. 엄마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디에 가치를 두는지 딸들은 하나하나 일러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매일 눈만 뜨면 보이는 산에게 매번 새롭게 감탄하는 엄마의 어깨를 바라보며 내가 자란 것처럼 말이다.
(중략)
내 아이의 손을 잡고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풍경을 보여준다. 아이는 아직 심드렁하지만, 곁눈질로라도 굽이치는 강원의 산들과 그 산을 내려다보는 엄마의 어깨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정명원,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중에서

 

이 글을 읽는데 어쩐지 울컥하게 됐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 아닐까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지만 차마 내가 내 입으로 자신있게 그런 사람이 됐다거나 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수줍고 민망하고 자신없는 어떤 것들을 내 자식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신하는 건 아닐까하는.

초등학교까지는 머리 위가 아니라 발 아래로 산을 내려다보며, 하루도 같지 않은 하늘을, 머리를 위로 들지 않고 그냥 앞을 보는 것만으로 매일 바라보며 살다 중학교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도시에서 살아갔던 그 시간들은 어떤 시간들이었을까. 문득 중학교까지 시골의 작은 학교들에만 다니다 갑자기 도시에서 온갖 학원을 다니다 온 학생들과 마주하게 됐던 내 고등학교 시절도 떠오른다. 싱글침대를 절반으로 자른 것만한 침대에, 창문 하나를 옆방과 공유하는 기형적인 방 구조를 가진 재수학원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그래도 엄마가 강제로라도 이정도까지 공부시켜준 것에 감사한다"고 말할 때 느꼈던 어떤 슬픔과 씁쓸함도 떠오르고, 살기는 작은 시골마을에 살되 늘 직장의 일로 녹초가 되어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이면 밀린 잠을 몰아자곤 했던 내 어머니의 모습도 떠오른다.

어머니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혹은 지금도 생각하실까? 어떻게 키우고 싶다고 하기엔 이미 서른도 넘은 다 큰 자식이 되어버렸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께는 묻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살아계시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만약 답이 돌아온다면, 나는 어머니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으신지 조금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