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385

애도의 시간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책을 보다가도 울고, 드라마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도 운다. 요즘 자주 우는구나하고 깨닫자, 몇 년 전 어느날 문득 마지막으로 울어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내가 메말라버린 느낌이었다. 메말라가는 나 자신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이혼을 하면서도 법원의 이혼절차가 다 끝날 때까지 한번도 울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울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양다솔 작가님의 서문에 나오는 "잘못 자리 잡은 현재가 계속해서 내일을 껴안고, 나는 다른 나를 상상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는데, 그 문장이 불러오는 내 과거들 중 하나가 바로 그 기억이었다. 고작 서른 언저리에 나는 내 삶이나..

일상/심리상담 2022.03.20

어린 시절

아빠는 곤란하거나 미안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무는 사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말로 못했던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보내는 사람이었다. 인터넷을 배워 이메일 계정을 만든 아빠가 가장 먼저 편지를 보낸 사람은 나였다. 아빠는 한 번도 나의 자취방에 온 적 없었지만 그 시기에 수많은 메일을 보냈다. 편지들을 읽을 때마다 내가 아는 아빠와 모르는 아빠에 대해, 두 아빠 사이에 놓인 아득한 간극에 대해 생각했다. 아빠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쓰고 또 썼다.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착한 딸이어서 고맙다고 썼다. 그 편지들에서 예전에는 보지 못한 아빠의 표정을 보았다. 미안해서 나타나지 못했던 아빠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어..

일상/심리상담 2022.03.12

3월9일 달리기

지난 몇달간 그래도 한달에 두번 정도씩은 달리기를 하고 있었는데 2월엔 하루도 못 달렸다. 5킬로미터 기록이 25분께에서 거의 30분으로 늘어났다. 게임에서는 대개 한번 올려놓은 레벨은 떨어지지 않지만(대신 점점 센 보스가 나오지만) 일상은 매일, 매주, 매달 반복하지 않으면 금세 잊게 되는 것들로 가득하다. 반복되는 것들이 지겨운 것인 줄 알았다. 새로운 것을 찾아헤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서른이 넘어서야 느낀다. 매년 오는 봄이 지겹지 않듯이, 모든 날 모든 순간이 다르고 소중하다. 인간의 기억체계는 비슷한 사건들을 범주화categorization하여 저장하므로 '처음처럼' 설레기는 어렵더라도 오늘은 오늘의 설렘이 있다. 오늘의 달리기에는 오늘의 즐거움이 있고 지난번에 읽은 책을 또 읽어도 역..

일상/2020~2022 2022.03.12

이직 준비

2월달은 중순 즈음부터는 거의 이직 준비로 보낸 것 같은 느낌이다. 그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첫직장에서 php로 커리어를 시작한 뒤로 php를 주력 언어로 경력을 이어가게 됐다. 이번에 이직하면 세번째 직장이 되는데, 아무래도 기존 경력이 php이다보니 이번에도 php를 쓰는 곳으로 가게 될 것 같다. 파이썬을 쓰는 곳에도 서류를 내거나 코딩테스트까지 본 곳도 있었는데 다 떨어졌다.(사실 php쓰는 곳 중에서도 최종합격한 곳은 아직까지는 한 곳이 전부다.) 근데 원래는 php보다 파이썬이 더 좋아보여서 그걸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요즘은 일단 php를 잘해보고 싶다. php는 어느 모로 보나 트렌디한 언어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버전업을 통해 충분히 괜찮은 언어가 됐고, 결국 한 언어..

일상/2020~2022 2022.03.07

외로운 사람

어제 상담에서 나는 열두 살 때의 나로 돌아갔다. 열두 살 때부터 나는 나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어떨 때는 그때 얻은 그 정체성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집에선 오직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었다. 아주 긴 시간동안 수없이 많은 게임을 했지만 가장 많이 한 건 채팅이었다. 게임 속에서, 또 인터넷게시판에서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었다.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은 사실상 한명도 없고 그 많은 사람 중 대부분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심지어 그 시절 온라인에서 채팅하는 것으로 모자라 손편지까지 주고받았던 사람들도 꽤 많다. 나는 그 편지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이름은 물론이고 편지 내용을 다 읽어봐도..

일상/심리상담 2022.02.20

22.02.16

이번주 들어 오랜만에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월요일에 재인이 집에 와있었다. 아침점심저녁을 다 차려주고 내가 일하는 동안 나가서 화분과 꽃을 사왔다. 집이 점점 더 예뻐진다. 뿐만 아니라 밸런타인이라고 멀리 있는 스벅까지 찾아가 비건브라우니를 사와서 초에 불까지 붙여주었다. 화요일 아침 늦게까지 꼭 끌어안고있다 그가 가고나니 갑자기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같은 기분이 됐다. 온갖 좋은 것들을, 사랑을 잔뜩 받기만 한 것 같아 어쩐지 미안하기도 하고. 말할 수 없이 고맙고 보고싶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아침에 못했던 요가와 스쿼트를 하고 샤워를 했다. 땀이 찔끔 날 정도로 운동을 하면 몸에 힘이 생기고 마음에도 힘이 들어가는 것같은 느낌이 신기하다. 마음도 몸 안에 있다는 것이 실감난..

일상/2020~2022 2022.02.20

집에 대하여

이 집을 구하기 위해 3개월간 직거래 사이트를 보고, 다솔 씨 기준으로 80점은 줄 수 있는 집이라 이사를 왔다면서요? 집 보는 안목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처음 자취방을 구할 때도 직거래 사이트에서 서울에 있는 모든 전세 알림은 저한테 오도록 설정해두고 하루 종일 봤어요. 좋은 집은 빨리 나가니까 직접 볼 기회가 생기면 아침 7시에 찾아가고 그랬죠. 이 집도 3개월 동안 매일 부동산에 전화하고, 앱을 보고, 직거래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구한 거예요. 엄마가 제 첫 자취방을 구할 때 이렇게 말했어요. “정말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많은 인생인데, 집이라도 들어오고 싶은 곳이면 좋겠다.” 전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너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내 공간은 마음의 중심을 잡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

일상/2020~2022 2022.02.07

설날

이번 설연휴는 애인인 재인과 보냈다. 연휴 시작하는 토요일날 재인의 가족들을 뵙고 저녁 먹고 와서(우리 가족은 그 전주 토요일에 동생네 집 집들이 겸해서 만났다.) 일요일부터 화요일 점심까지 둘이 같이 보냈다. 함께 장을 봐와서 재인이 해주는 밥을 함께 먹고, 술도 한잔 하고, 영화 '포레스트검프'와 애니메이션 '엔칸토',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1을 함께 보고, 책도 읽고, 책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일기도 쓰고, 5km 달리기도 했다. 2월부터 시작하는 새해 빙고도 함께 써봤다. 새해빙고는 김신지 작가님이 에서 소개한 것으로 새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빙고판에 적고 달성하면 X표를 쳐서 친구들과 누가 빙고를 많이 달성하는지 공유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초심자이므로 3 X 3 빙고판을 만들어 9개씩..

일상/2020~2022 2022.02.01

요즘

요즘 선물받은 예쁜 노트에 좋은 구절들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을 펜으로 옮겨적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검색해볼 수 있는 형태의 기록을 더 선호하지만 펜으로 따라적어가는 것은 또 그만의 맛이 있다. 책은 고등학생 때는 최고의 도피처였고, 그 뒤로도 거의 언제나 즐거움과 깨달음을 주었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 얘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몇달 전부터 매일 비타민제를 챙겨먹기 시작했다. 달고 살던 피로감이 확실히 덜한 느낌이다. 문득 책을 읽는 것은 마음의 영양제를 챙겨먹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양제를 한번 먹어서는 큰 의미가 없다. 매일 먹어야한다. 밥도 아무리 잘 먹어도 내일이면 또 배가 고프고, 사랑도 아무리 받아도 내일 또 고프듯이, 책을 오늘 읽어도..

일상/2020~2022 2022.01.28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제주에서 문득 이 문장을 떠올렸다. 함께하는 여행에서, 곁에 있지만 잠시 책과 함께 각자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던 그 순간에.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이 문장이 며칠동안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내가 꿈이 없는 줄 알았다. 그저 행복하고 싶었다. 삶에서 그렇게까지 열망하는 것도 없고 대단한 목표도 없었다.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다 사랑받기 위해 해온 일들이다. 사랑받기 위해 꼭 뭔가를 해야할 필요가 없다는 문장을 아무리 읽어봐도, 나에게 현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잠깐의 사랑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다. 사랑받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부끄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스스로도 어째서 남이 사랑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는건가 하는 마음부터 든다. 그런 말을 ..

일상/2020~2022 2022.01.20

한 해의 끝/시작

한 해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한 해의 마지막날엔 재인과 함께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재인의 가족분들과 식사를 했어요. 새해 첫날에는 강릉에 가서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식사를 하고 별을 보았습니다. 1월2일 아침에는 바다에서 해돋이를 보고 고향집 눈 쌓인 언덕에서 썰매도 탔어요.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한 해동안 잘한 일들을 적어보고 서로 나누었습니다. 감사한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요. 회사에는 작년말에 CTO가 새로 영입되셔서 새해 첫 출근한 오늘부터 자리도 바뀌고 팀도 바뀌었습니다. 업무는 당장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협업툴 Jira 도입이 시작되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세팅이 되는 거 같습니다. 맡게 되는 책임도 다소 커지고요.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한 해입니다. 한편으로는 지금에서 특별히..

일상/2020~2022 2022.01.11

무용한 것들을 사랑했으면

https://www.podbbang.com/channels/15135/episodes/24215170 215-1 [오은의 옹기종기] 양다솔 작가 “농담이 저의 1순위 무기입니다 ㅋㅋ” 오은 : 오늘 보이차를 들고 오셨네요. 좋아하시나 봐요? 양다솔 : 네, 밥은 못 먹어도 보이차는 마셔요. ㅎㅎ 저는 진짜 귀한 것들은 그만한 자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에서도 주고 금전적 www.podbbang.com 와 의 양다솔 작가님의 팟캐스트를 크리스마스에 만두를 빚으며 함께 들었다. 1시간 7분 32초부터 작가님이 '무용한' 것들에 이야기하는데 너무 좋았다. 명백히 우리의 에너지, 가령 시간과 돈과 내가 쓸 수 있는 체력과 관심은 한정되어 있다. 그것을 아는 것은 소중한 일이나,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의..

일상/2020~2022 2021.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