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392

불편한 얘기니까 불편한 게 당연하다

어려운 거니까 어려운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마음이 힘든 것이 이상한 것도 못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불편한 얘기니까 불편한 게 당연하다. 불편하다고 느끼는 게 잘못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불편한 마음를 회피하려고 엉뚱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불편한 마음을 잘 생각해보는 것이다. 불편해하는 내 마음을 탓하느라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지 말자. 여전히 내가 뭔가를 망칠까봐 두려운 마음이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 따뜻함에 익숙해지기를 바랐고 동시에 당연해져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한켠에 있었다.

일상/2020~2022 2021.10.28

세상에 내가 있을 곳이 있다

이사온지 11일차. 이사 온 아파트에는 고양이가 많다. 고양이들이 주민들과 특히 아이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마주치는 일상의 풍경들이 나쁘지 않다. 2층이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아직 어색하고 어수선하지만 어쩐지 모르게 정말로 나의 집을 갖게 된 것같은 묘한 느낌이 든다. 정말 나만의 공간이구나, 싶은. 물건도 거의 가진 게 없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사고 있다. 이렇게까지 매일매일 물건을 사들인 적은 인생에 없다. 수많은 물건 중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는 일은 상당히 지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고르고 고른 것들로 내 집을 내 마음에 쏙 들게 채워나가는 건 무척 기쁜 마음이 드는 일이다. 어찌 이런 재미를 모르고 살..

일상/2020~2022 2021.10.28

따뜻한 맛

내일모레 이사를 간다. 그래서 냉장고를 계속 비워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저녁으로 오랜만에 라면을 먹었다. 전에는 일주일에 다섯 번씩 먹기도 했던. 단호박포타쥬와 샌드위치를 받았다. 샌드위치에서는 신기하게도 따뜻한 맛이 났다. 아마 재인이 "따뜻한 맛"이라는 말을 함께 건넸기 때문일 거다. 단호박포타쥬에도 "사랑하는 이에게 먹이고 싶어서", "이사 가기 전에도 챙겨먹었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말들이 마음을 담고 함께 따라왔다. 바깥의 기온은 내려가고 있지만 내 삶의 온도는 올라가고 있는 나날이다. 이종범 작가님의 에 보면 난생처음 외국에 간 알래스카 청년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한 첫 마디는 "이렇게 안 추울 수도 있는 거였군요"라고 한다. 새벽 5시 40분, 눈을 뜨자마자 사랑을 가득 먹었다. 샌드위치..

일상/2020~2022 2021.10.14

화가 난 사람을 진정시키는 방법

지하철에서 책 읽다 울컥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날 정도인가. 화가 난 사람을 진정시키는 방법 1. 나는 당신의 화를 봅니다. 2. 당신이 화가 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므로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3. 당신의 화를 인정합니다. 4. 그리고 나는 증인으로서 이 상황을 보았으니 이제 가셔도 됩니다. - , 정은혜

일상/2020~2022 2021.10.13

예술은 하는 게 아니라 사는 거다

"예술은 하는 게 아니라 사는 거다" 여태 미루다 재인이 빌려주어서 얼마 전 드디어 읽었던 홍승은 작가님의 에 이런 구절이 나왔다. 카페에서 '누구나 예술가 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 계속 되뇌었던 말이라고 쓰셨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전에도 비슷한 맥락의 말들을 들을 때마다 울림이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 울림이 컸다. 그래도 역시 추상적인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살다보면 종종 그게 무슨 뜻인지 느껴지게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아, 이 사람은 정말 사는 게 예술이구나, 랄까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들. 글로 만난 사람 중에는 '황안나' 작가님이 있다. 40년생인 작가님은 "맛있게 살기"라는 제목의 네이버블로그를 오래 운영하시기도 했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작가님은 내게 오래도록 잊히지..

일상/2020~2022 2021.10.10

결혼식 대신 결혼 전시

애정하고 존경하는 커플의 결혼전시에 갔다.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 이런 구절을 만났다. "관계에서 버림받을까봐 걱정하지도 자유를 잃을까봐 두려워하지도 않고 세상과 서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자유가 있을 때 우리는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싸움의 기술», 정은혜 내가 보는 둘의 사랑이 이런 모습이다. 오늘도 한쪽은 상대에게 함부로 선을 넘지 않고 존중하는 법을, 다른쪽은 상대에게 사과하고 화해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는 사람들. 먼발치에서 보이는 것만 지켜볼 따름이지만 두 사람이 보여주는 서로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들에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쁘고 다행이다. 그런 사랑이 존재한다는 걸 보고 알고 느낄 수 있어서 고맙다. 어떤 ..

일상/2020~2022 2021.10.10

심리상담 3 - 6 - 일기 1일차

오늘은 애정하고 존경하는 커플이 결혼식 대신 진행한 결혼전시에 갔다. 그 전에는 빨래를 돌려서 널어놓았다. 결혼전시에서는 전시를 찬찬히 돌아보고 감동했고, 오랜만에 만난 결혼당사자 친구들과 반갑게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내가 남긴 방명록을 읽고 무척 감동했다고 신랑 친구와 신부 친구 모두 말해주어서 기뻤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전부터 참 건강하고 좋은 관계처럼 보였고 부러워하기도 한 관계였다. 오늘 결혼전시를 보면서도 울컥할만큼 감동적이고 좋았다. 둘이 서로에게 좋은 사람, 좋은 관계라는 게 느껴지고 두 사람 다 서로 덕분에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전시에 그대로 쓰여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예전에는 부러움과 동경,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내가 여전..

일상/심리상담 2021.10.10

심리상담 3 - 6

이사 준비로 정신없다는 이야기와 전주에 나누었던 일들에 대한 근황을 나누고나서, 그림을 그렸다. 둥지와 새 그림이었다. 솔직히 이걸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일단 최대한 그런 말은 하지 않고 나름대로 그렸다. 그림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고, 가족관계와 애착유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리 가족은, 정확히는 17살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제외하고 나와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렇게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다. 사이가 나쁘다고는 절대 할 수 없으나, 어머니와는 뭐랄까 서로 간섭하지 않고자 하는 사이에 가깝다. 가끔 생신이나 어버이날이나 명절같은 때 연락을 전혀 하지 않으면 좀 서운해하시긴 하지만 그 정도 외에는 딱히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지 않다는 느낌의 관계다. 그래..

일상/심리상담 2021.10.09

이사 준비

10월 16일 토요일, 이사를 가게 됐다. 2019년 12월부터 산 성북동 셰어하우스가 공원 조성으로 인해 철거가 된다. 17살에 태어나서 쭉 살던 집을 떠나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간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한 공간에서 2년을 살아본 적이 없다. 그나마 이 셰어하우스가 1년 10개월 정도로 최장기간 거주한 곳이다. 이사가는 곳은 성북구-서울시-SH가 철거세입자에 대한 특별공급으로 제공해준 임대아파트다. 철거되는 건물이 내 건물이 아니고 그냥 세입자일 뿐이지만 그래도 좋은 조건에 살고 있었는데 지자체의 공원조성사업으로 인해 집이 철거되어 어쩔 수 없이 살던 집을 떠나야하는 것에 대해 보상을 받게 되어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사비용과 주거지원금으로 얼마간의 돈도 받을 예정(좀 아이러니하지만 이사를 간 뒤..

일상/2020~2022 2021.10.09

준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오늘은 재인이 준 당근포타쥬로 아침을 시작하고, 재인이 준 초코휘낭시에를 요가가 끝난 후에 하나, 점심 먹고 나서 하나 먹었다. 진한 초코향이 어제 같이 먹은 스쿠퍼의 젤라또 초코맛이 생각나기도 하고, 정말 맛있었다. 저녁은 재인이 준 당근페스토로 파스타를 해먹었다. 하루종일 재인의 사랑을 먹은 날이었다. 어제 얘기하다가 그동안 몇 번 비슷한 대화를 반복해왔기에 알게된 것은, 재인은 본인이 내게 준 것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뭔가를 바라고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저녁에도 다시 한번, 정말로 주면서도 무엇도 바라지 않는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자신이 준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참 다정한 일처럼 느껴진다. 대개는 받은 것은 잊어버리고 내가 해준 것..

일상/2020~2022 2021.10.05

그럴 리가 있나

어제 상담 속의 한 장면 내가 습관적으로 또 이런 종류의 말을 내뱉었다. "어휴~ 그땐 정말 제가 대책이 없었죠." 흔히 이런 말은 농담으로, 웃으며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정색하며 즉각 반박했다. 그렇지 않다고. 대책이 없었던 게 아니지 않냐고. 다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했던 거 아니냐고. 그건 용기있는 선택이었고 대단한 일이라고. 내가 인식하고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과거와 경험들에 대한 체감온도가 몇도쯤 쑥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어쩐지 내가 살아온 그동안의 삶이 조금 더 따뜻했다고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되도록 남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하듯이, 내 인생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아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던지는 위로와 ..

일상/2020~2022 2021.10.03

심리상담 3 - 5

어제 5회기 상담에 갔다. 몸이 좋지 않아서 상담을 취소할까 고민했었다. 그 장소까지 갈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지만, 먹은 게 없어 에너지가 별로 없고 머리가 무거워서 과연 정말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뭔가를 잘 배울 수 있는 상태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원래 그림을 그리기로 했던 예정을 바꾸어서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게 낫겠다고 하셨다. 좀 피곤해보인다고. 나 역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을 하기에는 에너지가 좀 부족한 것 같아서 좋다고 했고 그렇게 했다. 정리를 해가지 않아서 두서가 없었지만 겪게 된 갈등의 시작과 진행과 각 순간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들었던 생각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떤 순간에 내가 스스로 어떤 마음인지 모르..

일상/심리상담 2021.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