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준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참참. 2021. 10. 5. 21:11

 

오늘은 재인이 준 당근포타쥬로 아침을 시작하고, 재인이 준 초코휘낭시에를 요가가 끝난 후에 하나, 점심 먹고 나서 하나 먹었다. 진한 초코향이 어제 같이 먹은 스쿠퍼의 젤라또 초코맛이 생각나기도 하고, 정말 맛있었다. 저녁은 재인이 준 당근페스토로 파스타를 해먹었다. 하루종일 재인의 사랑을 먹은 날이었다.

어제 얘기하다가 그동안 몇 번 비슷한 대화를 반복해왔기에 알게된 것은, 재인은 본인이 내게 준 것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뭔가를 바라고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저녁에도 다시 한번, 정말로 주면서도 무엇도 바라지 않는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자신이 준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참 다정한 일처럼 느껴진다. 대개는 받은 것은 잊어버리고 내가 해준 것만 기억하게 되는데 말이다. 그 마음이 너무 소중해서, 내가 더 잘 기억하고 싶어졌다. 소중하게 받은 것들을 소중한 만큼 잘 기억하고 재인이 잊어버리면 내가 이런 것들을 받았다고, 계속 이야기해줄 수 있도록.

그리고 나 역시, 바라지 않는 마음을 알아가고 있다. 의식적으로는 뭘 바라고 주어서는 안 된다고, 진정한 사랑은 그저 주는 것이라고, 그런 것들을 많이 읽어봤기에 그런 생각도 갖고 있었으나 그걸 감각으로 느껴본 기억은 정말 많지 않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바라게 됐다.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 상대도 나에게 그런 말을 들려주기를, 그래서 내가 안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은 둘 다 그런 말은 최대한, 최대한 아껴두고 있다. 그런데 하나도 불안하지도 않고 조급하지도 않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이미 느끼고 있고 이미 충만하니까 그럴 수 있다. 또 그 하나의 말로 많은 것을 뭉뚱그리고 싶지 않아서 더 조심하게 되는 것도 있다. 그 말이 아니더라도 무수히 많은 표현으로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늘 이야기하고 있다. 그 표현들에 매일같이 감동한다.

 

아침에는 재인이 사과를 했다. 내가 체했을 때 체했다는 것을 몸의 감각으로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놀라고 이상하다고 했던 것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일은 내겐 굉장히 존중받는 느낌을 주는 일이다. 어찌 보면 그리 대단한 잘못도 아닐 수 있는데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고, 소중한 사람에게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사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소중한 사람이니까, 설령 상대방은 괜찮다고해도 내가 생각하기에 잘못한 일이 있다면 사과하고 싶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도, 그걸 잘 들여다보고 쉽게 넘어가거나 과하게 불편해하지 않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도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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