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그럴 리가 있나

참참. 2021. 10. 3. 10:44

 

어제 상담 속의 한 장면

내가 습관적으로 또 이런 종류의 말을 내뱉었다.
"어휴~ 그땐 정말 제가 대책이 없었죠."
흔히 이런 말은 농담으로, 웃으며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정색하며 즉각 반박했다. 그렇지 않다고. 대책이 없었던 게 아니지 않냐고. 다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했던 거 아니냐고. 그건 용기있는 선택이었고 대단한 일이라고.

내가 인식하고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과거와 경험들에 대한 체감온도가 몇도쯤 쑥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어쩐지 내가 살아온 그동안의 삶이 조금 더 따뜻했다고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되도록 남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하듯이, 내 인생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아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던지는 위로와 마주했을 때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적도 있었다. 내 친구니까 당연히 나한테 좋게 말해주는 거지, 라는 식으로. 고맙고 다소 기분이 나아지긴 하지만 결국 그런 말로는 그렇게 크게 위로가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심리상담을 받는다고 해도 이 사람이 나의 상태를 좋게 만드려는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이라는 걸 알텐데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던 적도 있는 것 같다.

근데 지금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그럴 리가 있나, 이런 말이 효과가 없을 리가 있나. 생판 남인,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 심지어 기계가 아닌 사람이 단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 악플을 보고도 영향을 받는 게 내 마음인데, 내 삶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내 앞에 앉아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확신을 가지고 단호하게 하는 이 말들이 치유의 효과가 없을 리가 있나.

 

어떨 때는 선생님은 정말 전문가다 싶고, 또 어떨 때는 선생님은 정말 진심이다 싶다. 결과적으로 둘 다다. 선생님은 전문가이고, 진심이다. 나도 선생님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고 그만큼 나를 열어놓고 있다. 선생님이 내가 선생님에게 의존하는 방향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긍정하고 믿을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 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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