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마저 읽으며 밤을 삶았다. 개구리님과 소금쟁이님께서 산밤을 잔뜩 보내주셨다. 몹시 감사하지만 게으른 사람에겐 약간 난감할 정도의 양! 삶아서 먹어보니 맛있었다. 내일 오전에 뵙는 심리상담 선생님께 뜬금없이 밤을 좋아하시는지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에서 하루종일 컴퓨터 들여다보고 사느라 계절을 잘 못 느끼는데 봄이면 두릅을 보내주시고 가을이면 밤을 보내주시니 받을 때마다 늘 감동이다. 나는 뭐 드릴 것도 없고 뵈러 가지도 못하는데 큰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두릅은 미친듯이 먹고 밤은 좀 느릿느릿 먹는다. 하하하.
재인이 운영하는 팝업식당의 이름이 "채소의 계절"이다. 계절이라는 말이 들으면 들을수록 좋은 느낌이다. 지나야만 하는 그 모든 계절들을 온전히 지나와야만 채소든 과일이든 제 맛을 낼 수 있듯이, 우리도 지나야했던 그 계절들을 온전히 지나와 여기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를 서로 하곤 한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아픈 채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문장이 좋아서 잘 읽히지만, 동시에 술술 읽고 넘어가기에는 그 내용이 자꾸만 중간에 멈추게 한다. 아픈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참으로 생소하고 별로다. 어렵다. 함부로 다 읽었다고 하면서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아픈 것만으로도 힘든데 아픈 게 죄라는 질책과 자책은 더 힘들다. 아픈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두르고 사는 일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쉬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게 되면 어떤 일상을 마주하게 되는지, 어떤 마음을 겪게 되는지, 어떤 맥락 속에 이 이야기들을 꺼내놓고자 하는지 조금씩은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극복의 서사가 아닌 일상의 이야기로 더 많이 나올 수 있기를 나도 같이 기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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