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385

변화

아침에 일어났더니 갑자기 공기가 서늘해서 놀랐다. 부랴부랴 긴팔을 꺼내입었다. 문득 변화를 실감하게 되는 것은 대개 이런 날이다. 그런 날이 오면 어느새 뭔가가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운동방정식들을 배웠다. 처음에는 그 공식들을 어떻게 적용해야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풀이를 듣고 또 듣다보니 드디어 뭔가 깨닫는 순간이 왔다. 알고나니 당연하게 느껴진 그것은 변화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항상 기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좌표계에 영점을 찍어야 위치를 표현할 수 있고 어느 물체를 기준으로 힘과 운동량을 계산할 것인지 결정해야 어떤 값을 어느 공식에 넣어야할지 알 수 있다. 변화란 거의 항상 "시간에 따른 변화"의 줄임말이다. 어느 한 시점의 운동상태와..

일상/2020~2022 2022.08.29

타입스크립트를 공부하다가

최근 사내 타입스크립트 스터디에 들어갔다. 타입스크립트는 자바스크립트의 확장판같은 건데 타입스크립트로 코딩을 하면 컴퓨터는 그걸 다시 자바스크립트 코드로 바꿔준다.(자바스크립트는 웹에서 널리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다.) 어차피 다시 자바스크립트 코드로 바꿔서 실행할건데 처음부터 자바스크립트로 코딩하지 않고 굳이 타입스크립트로 한 뒤에 변환하는 이유가 뭘까? 여러 장점이 있겠지만 큰 장점 중 하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타입"에 있다. 타입(데이터타입)에는 "문자열", "숫자", "boolean(참거짓)" 등이 있다. 프로그래밍에서는 어떤 값이 있을 때 그게 어떤 타입인지를 따지는 게 중요할 때가 있다. 보통 회원가입할 때 전화번호나 이메일은 특정형식에 맞게 입력하지 않으면 가입이 안되도록 막아서 유저의..

일상/2020~2022 2022.07.24

보통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오랜만에 아주 강렬한 꿈을 꿨다. 집에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스쿠터 열쇠를 줘서 "스쿠터는 오랜만이네"하고는 신이 나서 몰고 나간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신나게 달려 내려가다가 급커브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해 그대로 바다쪽으로 추락한다. 어찌저찌 스쿠터만 바닷속에 빠지고 나는 목숨을 건져서 핸드폰도 뭣도 없이 인도도 없는 그 해안도로를 차를 피해가며 올라가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는데 아버지가 날 혼냈다. 그러게 조심히 타라고 하지 않았냐는 식으로. 너무 어이가 없고 서러워서 울면서 대들었다. 그게 방금 죽을 뻔하고 겨우 살아돌아온 아들한테 할 소리냐고. 그러고 있는데 와중에 옆에서는 동생 친구가 와서 뭐라뭐라 떠들고 있고, 내 부모님은 거기다 대고..

일상/2020~2022 2022.07.13

나의 여행

어떻게 해야할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순간에 지난 1월 읽었던 를 집어들었다. 다섯 달 만에 다시 읽는 책이 갈 곳 잃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켜 주었다. 그렇게 비슷한 이야기를 숱하게 읽었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워서 나는 또 새삼스럽게 내가 나의 하루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Today is better than tomorrow. 내일을 기다리는 대신 오늘을 살아야하는데, 과연 그러고 있나. 잘 산다는 게 대체 뭘까? 그건 그냥 내가 오늘 하루를 마음에 들어 하는 그런 일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즐거움을 찾아다녀야 할까? 크든 작든 내가 느낀 즐거움들에 이미 그 답이 나와 있는 게 아닐까? 언제 즐거운지, 언제 웃었는지 기억하고 산다면 그걸로 충분한 인생일지 모른다...

일상/2020~2022 2022.06.28

같이 산다는 것에 대하여

15년 전 고등학생이 되면서 부모님 집을 떠났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정말로 혼자 거주한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기숙사나 하숙집에는 늘 룸메이트가 있었다. 혼자 살기 위한 월셋방을 얻은 적도 있었는데 이사 한달만에 갑작스레 살 곳이 없어진 친구가 들어와 같이 살게 되기도 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갑자기 한 방에 살게 되는 기숙사 생활이 제일 어려울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특히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돌이켜보면 오히려 제일 편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은 그리 편하진 않았지만 견딜 만은 했다. 갑자기 같이 살게 됐던 친구는 꽤 친한 친구인데도 그리 쉽지 않았다. 결혼해서 같이 사는 게 제일 힘들었다. 물론 누구와 같이 산다는 것 외에도 그 시기마다 ..

일상/2020~2022 2022.06.26

구글 엔지니어는 이렇게 일한다

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내 독서모임의 첫번째 모임 도서다. CTO님이 구글 출신이셔서 구글문화 도입에 적극적이다. 앞부분에서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구성원들이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팀을 생산적으로 만드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한다. 아주 구체적으로 어떤 표현이 (의도치 않게) 이런 안전감을 저해할 수 있는지 예까지 들어놨다. 활동가로 일하는 동안 많은 단체들이나 공공조직들이 구성원들에게 안전하게 느껴지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봐왔다. 대개 그것이 옳고 인도적인 일이라 생각하면서 추구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여기가 회사도 아니고) 조직원들 입장에서도 사기업에 비해 더 인간적으로 존중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글로벌 ..

일상/2020~2022 2022.06.25

나에게 게임이란

본격적으로 게임을 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그 전에도 소소하게 하긴 했지만, 어릴 때의 기억이 워낙 별로 없는 편이라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온라인게임에 빠지기 전에 피파98을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그 뒤에는 당시 매월 29,700원을 내야만 할 수 있었던 바람의나라도 잠깐 했었다. 6학년 즈음부터는 초고속인터넷이 대중화되고 무료, 정확히는 부분유료 온라인게임이 쏟아져나오던 시기가 겹치면서 다양한 게임을 참 많이도 했다. 어느 여름방학에는 얼마나 집 밖에 한 발짝도 안 나간 채로 게임만 했는지, 어느 날 밖에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가 햇빛이 너무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눈이 떠질 때까지 한참 눈물만 줄줄 흘리며 서있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일상/2020~2022 2022.06.21

마지막이라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다. 만약 그렇다면 난 무엇을 할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에서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한 이안이 사만다에게 묻는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을 어떻게 보낼 거냐고. 사만다는 구두부터 산 다음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일류 속옷모델과 찐하게 연애를 하겠다고 농담을 던지고는 곧 이렇게 말한다. "당연히 당신과 함께 보내야지.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화를 열번도 넘게 봤지만 그 마음만은 알듯 모를듯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그저 같이 있고 싶은 관계는, 그런 마음은 어떤 걸까 늘 궁금했다. 뜨겁게 타오르던 갈망의 순간에는 그 사람이 날 사랑하기만 하면, 그 사람의 곁에만 있으면 행복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

일상/2020~2022 2022.06.19

여름이 온다

여름이 온다. 이때를 대비해 진작부터 에어컨을 설치해두었더니 마음이 든든하다. 지난 10월 이사 올 때만 해도 이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미리 설치하지 않으면 5월부터 이미 예약이 밀려서 여름 다 지나고야 설치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흔하게 들었던 터라, 2월부터 부지런을 떨며 에어컨을 주문해 설치까지 완료했다. 비수기는 비수기였는지 에어컨을 판매하는 쇼핑몰도 아직 많지 않았고, 주문을 넣은 주 주말에 바로 와서 설치해주셨다. 오랫동안 에어컨은 사치품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집에서는 구경도 못해봤고, 찬 물 샤워와 선풍기만으로도 견딜 만했다.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교실에서 트는 것 정도는 이해할 만하지만, 가정집에 굳이 그런 무시무시한 물건이 꼭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연비도 안 ..

일상/2020~2022 2022.06.12

여기 와서 좋다

지난주에 발톱무좀 치료를 시작했다. 군대에서 얻었으니 10년 된 병이다. 엄지발톱 하나에서 소소하게 시작한 녀석은 이제 양쪽 발에 골고루 퍼졌다. "나는 10년이나 나를 방치해왔다"라는 문장을 떠올렸으나 이내 내 안의 무언가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해왔다. 그렇다. 그걸 치료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들이 너무 많았을 뿐이다. 그냥 두어도 그다지 아프지도 않은 그것보다 더 아픈 결핍들을 채우기 위한 날들이었으므로. 과거의 어느 때라도 그때의 나름의 최선을 다해왔던 것이다. 4월부터 새로운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첫 출근하던 날 애인은 도시락과 와인을 챙겨왔고, 5시에 퇴근하여 선유도공원에 피크닉을 갔다. 그저 그런 회사, 그냥 버티듯이 다니는 곳 말고 더 좋은 곳에 가고 싶었다. 내 실력이나 자격을 ..

일상/2020~2022 2022.04.17

퇴사

갑자기 개발자로 일해보고 싶어졌을 때, 아직 개발도 코딩도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운 좋게 들어갈 수 있었던, (그런 나를 받아주셨던) 개발자로서의 첫 직장이 있었다. 연봉이나 커리어 면에서도, 코딩 실력이나 업무적인 체계같은 면에서도 좀 더 성장하고 싶어 21년 5월에 이직했던 회사가 또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2년은 다닐 줄 알았던 그 회사를 그제, 22년 3월 31일 부로 퇴사했다. 역시 이직을 위한 퇴사다. 다음주 월요일, 4월 4일부터는 다른 회사에 출근한다. 이전의 회사들도 나에게 개발자로의 커리어를 쌓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어주었고, 감사한 사람들도 많지만, 이번엔 뭐랄까 더 설레는 기분이다. 오르는 연봉이나 조금 더 있는 복지혜택도 물론 기대되지만(근데 다니던 회사..

일상/2020~2022 2022.04.02

성격 급한 사람

나는 평생 내가 성격 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애인의 글에서 나는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이야기들을 들은 상담선생님은 여기서 저기로 뛰어다니듯이 살 수밖에,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고 했다. 그 말들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수정하게 만든다. 어쩌면 성격이 급한 게 아니라 그냥 여유가 없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이후로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여유롭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있어야 살만했다. 정말로 돌아갈 곳이나 쉴 곳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내가 나의 성취나 능력이나 가진 재산의 정도같은 것과 상관없이 그냥 나여도 괜찮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확인받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므로 계속 그 감각을 찾아헤맸다. 많..

일상/심리상담 2022.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