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참참. 2022. 1. 20. 08:12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제주에서 문득 이 문장을 떠올렸다. 함께하는 여행에서, 곁에 있지만 잠시 책과 함께 각자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던 그 순간에.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이 문장이 며칠동안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내가 꿈이 없는 줄 알았다. 그저 행복하고 싶었다. 삶에서 그렇게까지 열망하는 것도 없고 대단한 목표도 없었다.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다 사랑받기 위해 해온 일들이다. 사랑받기 위해 꼭 뭔가를 해야할 필요가 없다는 문장을 아무리 읽어봐도, 나에게 현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잠깐의 사랑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다.

사랑받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부끄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스스로도 어째서 남이 사랑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는건가 하는 마음부터 든다. 그런 말을 들으면 뭔가 수동적이고 누군가 구원해주기만 기다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떠올렸나보다. (지긋지긋한 남성중심 서사에서 수많은 여주인공, '공주'들에게 주어진 역할처럼.)

게다가 사랑이 뭔지 질문이라도 하면 항상 그게 도무지 무엇인지 똑바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물론 평생을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바라왔고 수많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고 보아왔으므로 머릿속엔 이런저런 이미지들이 있다. 아무것도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아무리 꽉 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다 흘러내리고마는 모래알처럼 잡히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제야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강력한 하나의 단서를 잡았다. 그건 "궁금해하는" 일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해 궁금해해주기를 바랐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나를 궁금해하는 일이다. '나'란 무엇인가. 정혜신 선생님에 따르면 나라는 존재의 본질은 내 감정, 내 느낌이다. 내 안위, 내 상태, 내 생각, 몸, 신념, 취향 같은 것들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반대로 내가 가장 상처받는 일은 무반응, 무응답이었다. 어머니는 종종 내가 옆방에서 비명을 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곤 했다. 나는 그게 서운해서 더 크게 비명을 지르곤 했다. 그것까지 깔끔하게 무시 당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생각해도 비명을 지를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이해하고 넘어갔다고 생각했지만, 동생이 어떻게 기억을 하나도 못하냐며 놀랄만큼 얼마 되지 않는 어린 시절의 기억 중 이런 기억만은 끈질기게 남아있다.

결혼해서 함께 살던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마치 전혀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무시하고, 내 첫번째 메시지에는 바로 답장하지만, 바로 연이어 보낸 두번째 메시지는 몇시간이 지나도록 보지 않는 일이 반복됐었다. 차라리 첫번째 메시지도 보지 않는다면 아예 핸드폰을 못 보는 상황이겠거니할텐데, 왜인지 그는 늘 첫번째 메시지는 바로 보고, 그 다음 메시지부터 무시하곤 했다. 그것들이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일들이었다. 꼭 대답해야할만큼 중요한 말도 아니고, 전화를 할만큼 급한 일도 아니지만, 나를, 내가 하는 다음 말을 그 정도는 궁금해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슬프게도 나중엔 그것에마저 익숙해졌다.

한동안은 결혼을 했으니 나름대로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꿈을 모두 이룬 줄 알았다. 그렇게 공허하고 무기력했는데도. 오히려 그것마저도 이루고 싶었던 것을 다 이루어서, 더 이상 추구할 것이 없어 그런 것이라고, 그렇게라도 생각하려 애썼다. 한달에 한번도 섹스를 하지 않고, 어차피 듣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일상적인 대화조차 별로 나누지 않던 그 시간들에조차 그럭저럭 사랑받고 있다고, 무슨 대단한 사랑이 더 있겠냐고, 다 이렇게 살고 있는 거 아니겠냐고 나 자신에게 그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 매일, 매시간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니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조차도 쉬이 알아차리지 못한 나날이었다.

최근에 양다솔 작가님의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과 이슬아 작가님의 <깨끗한 존경> 중 유진목 시인 인터뷰에서 (맥락은 다르지만)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발견했는데, "내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진목 시인은 "그게 너무 지긋지긋했어요"라고 했다. 어쩐지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사랑을 "쫓아다녔다"고 표현하곤 했는데, 열심히 쫓아라도 다니지 않으면 사랑 비슷한 것도 구경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였다. 나에게 주는 관심이 너무 소중했으므로 그 관심을 주는 사람도 순식간에 소중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를 충분히 많이 궁금해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더이상 다른 사람의 관심에 크게 관심이 없다. 참여하고 있는 온갖 단톡방에서 오가는 대화에 점점 큰 관심이 없어지는 나를 발견한다. 누군가 아무라도 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 가져주길 바라던 그 마음들이, 어느새 아침이슬이 햇빛에 말라 사라지듯, 있었던 흔적도 별로 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던 어떤 성향들이, 그저 배고픈 사람이 먹을 걸 마다하지 않는 것같은 어떤 결핍상태의 본능이었을 뿐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밖에 없게 됐다. 평생 사랑이란 아무리 어떻게 해도 늘 고픈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젠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가 화를 내는 바로 그 순간에조차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화도 나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있는 생경한 경험을 하면서 내 삶이 완전히 새로운 궤도에 올라왔음을, 내가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선을 넘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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