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291

직장동료와의 저녁식사

회사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 (보통 밖에 나가서 사먹는데 주로 회사휴게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그룹 네 명) 직장동료들이 있다. 그 중 입사동기이자 동갑내기 동료가 근처 맛집이라며 며칠전에 급 제안해서 셋이 저녁 먹으러 갔다.(한명은 스쿼시 일정 때문에 같이 못 감) 닭볶음탕집이었는데 라면사리랑 나중에 볶아먹은 밥이 "존맛탱"이었다.(송파에 있는 홍이네 라는 식당입니다.) 뼈 있는 고기를 먹으면 항상 깨끗하게 안 발라먹는다고 잔소리 듣는 게 너무 싫다는 얘기에 격하게 공감하면서 밥 먹다 문득 평일에 저녁약속으로 사람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는 일이 요즘은 정말 드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얘기 했더니 짠하게 또 왜 그러냐고. ㅋㅋ 그냥 도시락 먹는 사람끼리 모였을 뿐인데(물론 나는 남직원들이랑 각자 폰 보면..

일상/2020~2022 2020.12.06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렸다. 미술치료하시는 분이 와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모르는 채로 참석했다. 근데 문제는 그림을 그리는데 옆 사람의 얼굴을 그리라는 것이었다. 투명한 필름을 모델이 되는 사람이 붙잡고 있고 그 위에다 그리는 식이었다. 잊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미술시간, 3년동안 단 한 학기 포함되어있던 미술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친구들끼리 짝을 지어 캐리커쳐를 그려야 했다. 사진을 보고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는 건 그래도 괜찮았는데, 친구의 얼굴을 그리라는 건 내겐 너무 어려운 주문이었다. 사실적으로 그릴 필요 없고 ‘특징만 따서 간단하게’ 그리면 된다는 말은 통역도 불가능한 외계어에 불과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중에 공 던지는 법을 잊어버린 야구선수가 ..

일상/2020~2022 2020.11.15

묘지, 아만자, 자전거, 커피식탁, 그리고 어머니

파리에 갔을 때, 페르 라셰즈(프랑스어로는 빼흐 라셰즈에 더 가깝지만)라는 공동묘지에 갔었다. 아무래도 묘지는 묘지니까 공원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공동묘지와 비교하면 그냥 산책 삼아 걷기 좋은 공원이나 다름없는 분위기다. 유명인들도 많이 묻혀있어서 관광객도 온다. 파리에서 둘러본 곳 중에 제일 좋았다. 그 평온한 분위기와 그들이 살아낸 치열한 삶의 흔적들이 교차하면서 불러일으키던 묘한 감상. 죽은 이와 죽어가는 이를 볼 때만큼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될 때가 없다. 내겐 산책할 묘지가 필요하다. 20.11.11. 김보통 작가의 웹툰 아만자를 봤다. 아만자는 암환자다. 젊은 남자 주인공이 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하고 죽어가는 이야기다. 죽어가는 이야기를 보면서 삶을 생각했다. 그의 살고 싶어하..

일상/2020~2022 2020.11.15

팬텀스레드를 봤다

요즘 토요일마다 나가는 심리학 모임에서 라는 영화를 봤다. 아직도 제목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용은 매우 거칠게 요약하자면 우드콕 의상실의 나이 많은 남자 디자이너와 알마라고 하는 여성의 연애 및 결혼생활 이야기다. 취향으로 따지자면 좋아하는 영화는 전혀 아니었다. 장르로 따지자면 연애와 결혼 얘기지만 로맨스 장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고 해야할까. 등장인물들에 확 감정이입이 되지 않다보니 영화도 몰입이 잘 안 되는 느낌. 사실 난 영화에 대한 식견도 없고 평소 영화를 별로 즐겨보지도 않는다. 남들 다 본 영화도 안 본 게 더 많을 정도다. 근데 모임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점점 어딘가 일그러지고 비틀려있던 것 같은 영화 속 인물들에서 나를 발견하게 됐다.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우..

일상/2020~2022 2020.10.31

고양이

날이 추워져서인가, 누워있는데 문득, 고양이가 내 곁에 혹은 내 위에 몸을 말고 함께 자던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닿은 곳에서 전해져오던 그 따뜻한 온기. 그리고 잊지도 않고 함께 떠올렸다. 그렇게 귀여워하고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자주 귀찮고 성가셔하던 나의 마음을. 나는 동물을 키울 자신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좋은 것만 취하고 그것에 동반되는 고통과 어려움은 외면하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상담사 선생님은 본인도 10년 넘게 키우던 강아지를 하늘나라로 보냈는데, 책임감으로 키웠지 사랑만으로 키운 건 아니라고 했다. 언제나 사랑스럽기만 할 수는 없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동물을 키우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라고.

일상/2020~2022 2020.10.07

괜찮아요

틀려도 괜찮아요. 다시 하면 되잖아요. 오래 머무르는 건 좋은 거예요. 모른 채로 넘어가면 계속 모르게 되잖아요. 힘을 빼는 게 중요해요. 그게 어렵죠. 힘을 잔뜩 주고 있으면 오래 연주하지도 못할 뿐더러 예쁘지 않은 소리가 나요. 틀리지 않는 것보다 아름답게 표현하는 게 중요해요. 잘될 때까지, 잘 된다는 건 틀리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곡으로 들리게 연주할 수 있다는 거예요. 손가락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얼마나 할 수 있는 게 많을까, 하지만 없으니까 우린 있는 것만 가지고 해봅시다. 한 음을, 한 마디를 연주하더라도 대충 하지 말고 예쁘게 해주세요.

일상/2020~2022 2020.10.07

퇴근길

서울이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내게 서울은 여행지가 아니라 일상의 공간이니까. 근데 요즘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서울도 아름다운 곳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참 많다. 어떨 때는 결국 자전거를 멈춰세우고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들어올릴 수밖에 없을 만큼. 출근할 때는 동쪽의 떠오르는 해를 향해 달리고, 퇴근할 때는 서쪽의 지는 해를 향해 달리게 된다. 매일 내 앞에 펼쳐지는 넓고 푸른 하늘과 노을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 예쁜 야경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한다. 출근하는 일이 늘 기쁠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페달을 밟으면서 몸에 들어온 활력과 풍경이 준 감동이 회사에 가는 일도 꽤 괜찮은 일로 느끼게 하는 것만 같다. 사실 많은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서, 일반적인 영리기업은 사실상 처음 다..

일상/2020~2022 2020.09.26

정념

어제의 모임 주제는 상호주관성과 정념이었다. 조금 더 하고싶은 얘기가 있었지만, 시간이 모자라서 할 수 없었다. 책에서는 정념(정열, 열정, passion의 번역)에 대해 치료가 필요한 일종의 정신병에 가깝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는 게 참가자들이 받은 느낌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어제 모임에서 한 분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평온을 유지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 사는 게 꼭 좋은 건가, 그럼 무슨 재미인가하는 생각을 나도 했다. 근데 사실은, 모임에선 말하지 못했지만, 책의 그런 부분이 위안이 된 면도 있었다. 이젠 어떤 것에도 딱히 열정이랄 만한 게 없는 것 같아서 그게 고민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게 있어야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열정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내가 열정이..

일상/2020~2022 2020.09.20

정정

대흥역 근처에 정정이라는 식당이 있다. 딤섬 종류와 다양한 요리를 판다. 다 먹고난 지금도 이름도 잘 모르겠는 여러가지 딤섬과 요리들 - 꿔바로우, 크림새우, XO볶음밥 등 - 을 먹었다. 거길 가기 위해 2.5일 남아있던 연차를 하나 썼고, 1.5일이 남게 됐다. 가게 된 계기는 직장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 멤버 중 한 사람의 남자친구가 일하는 식당이어서다. 점심 먹으면서 하는 대화주제의 양대산맥 중 하나가 맛있는 것과 맛집 얘기기도 하고. 처음에는 퇴근하고 다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남양주에 사는 사람도 있고 퇴근시간엔 차도 많이 막히고 해서 계획이 좀 바뀌었다. 세 사람은 오후반차를 내고 난 아예 하루 연차를 냈다. 겸사겸사 오전에 건강검진도 받았다. 일반건강검진에서는 단백뇨를 제외하면 특..

일상/2020~2022 2020.09.19

좋은 하루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을 흔히 주고받았는데, 좋은 하루를 보냈다고 느끼며 하루를 마감하는 날은 사실 그렇게 자주 있진 않다. 어제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오늘은 정말 좋은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시고 세 줄 시쓰기에 참여하는 짧은 시를 한 편 쓰고 책(싸움의기술, 정은혜)을 아주 조금 읽고 스트레칭하고 팔굽혀펴기를 50개했다. 남아있던 된장찌개를 먹고 면도를 하고 머리를 감고 평소 타던 따릉이가 아닌 하우스메이트에게 얻은 로드바이크를 타고 자전거 출근을 감행했다. 확연히 다른 속도감을 느끼며 출근을 해보니 59분이 걸렸다. 따릉이로 출근할 때는 1시간 15분에서 1시간 25분 정도 걸렸으니 분명 상당히 줄어든 시간이라고 봐야했지만 뭔가 더 줄어들길 바랐는지 아쉽..

일상/2020~2022 202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