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291

다시, 자전거

날씨가 꽤 따뜻해졌고, 작년에 잠깐 하다 만 자전거 출퇴근을 다시 시작해보고 있어요. 따릉이는 출근만 자전거로 하고 퇴근은 지하철로 하는 매력이 있는데, 로드바이크는 얄짤없이 퇴근까지 해야하네요. 오늘은 처음으로 자전거 라이딩 앱을 켜고 달려봤습니다. 핸드폰 거치대를 사서 자전거 앞에 달았거든요. 실시간으로 내 속력을 알려주니까 왠지 더 무리하게 되네요. 그 숫자 높이는 게 뭐 그리 목숨 걸 일이라고. ㅎㅎ 곧 벚꽃이 피면 최애 자전거도로인 성내천 길에서 내리는 벚꽃잎을 맞으며 출근하겠네요. 몹시 기대됩니다.

일상/2020~2022 2021.03.18

노션?

즐기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잘 못하지만 즐겁게 동참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말 즐길 만큼 잘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조물조물 흙을 가지고 장난하듯이 그릇을 만드는 건 잘 못하지만 즐기는 것이고, 100킬로미터 울트라 걷기대회에 나가 스물여섯 시간 동안 잠도 자지 않고 걷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지만 그것 역시 즐기는 것이다. (중략) 이런 일들을 즐겁게 하되,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자.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보니 인생에 성공이나 실패라는 객관적 평가란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성공이나 실패와 같은 결과에 마음 두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즐겨라. 그 순간을 맘껏 누리면서 하고 있는 행위와 온전히 하나가 되라. 즐기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실패라면 실패일 테니까! - 황..

일상/2020~2022 2021.01.28

직장동료의 생일

오늘은 도시락 같이 먹는 직장동료 중 한 사람의 생일이었다. 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셋이서 카톡방 만들어서 생일선물을 골랐다. 결국 우리가 고른 선물은 트러플오일! 그 중에서도 화이트 트러플 오일이었다. 평소에 워낙 트러플 트러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어서 그걸로 골랐는데, 다행히 맘에 들어했다. 블랙 트러플 오일 살까, 화이트 트러플 오일 살까 고민하다가 블랙만 하나 사서 쓰고 있었다면서. 뿐만 아니라 아티제에서 케익을 조각케익으로 서로 다른 맛으로 3조각 사서 나눠먹었는데, 다 맛있었지만 특히 쿠키앤치즈 맛이 굉장했다. 서로 생일을 챙기는 직장동료들이 있다는 건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었다! 몇 달간 다니던 클래식기타레슨을 다음주까지만 하고 당분간 그만두기로 했다. 요즘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감도 많..

일상/2020~2022 2021.01.19

상담이 끝났다.

서울심리지원 동북센터에 신청해두고 2~3개월을 기다린 끝에 차례가 돌아와서 마침내 받을 수 있었던, 2020년 11월 21일 토요일부터 시작된 8회기의 심리상담이 어제 끝났다. 상담종료 설문지를 다하고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막 출근하신 행정직원분께서 급히 붙잡으시더니 상담을 끝마치신 분들께 드리는 선물이 있다고 받아가라고 하셨다. 야외응급키트(소독용 알콜솜과 밴드), 휴대용 칫솔치약세트, 그리고 스프링노트 한 권. "상담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선물까지 주시나요?" "별로 큰 건 아니구요." 끝까지 참 따뜻한 곳이었다. 첫 상담 때 건물이 너무 예뻐서 감탄했던 서울심리지원동북센터가 위치한 덕성여대 내의 '덕우당' 건물. 내부도 참 예쁘고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물론 분위기는 아늑하지만 실제로는..

일상/2020~2022 2021.01.17

세 가지

그가 했던 2막 끝 마지막 대사는 절대 잊지 못했다. 아내가 떠나고 싶다고, 이 결혼에서 충족감을 느낄 수 없다고, 분명 더 나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선언하자, 남편이 하는 말이다. 세스 하지만 이해 못 하겠어, 에이미? 당신은 틀렸어. 모든 걸 다 주는 관계는 없어. '어떤' 것들만 주는 거라고. 누군가에게서 바라는 것들을 다―예를 들어, 성적으로 잘 맞는다거나 대화가 잘 통한다거나 경제적 지원이라거나 지적 관심사가 잘 맞는다거나, 상냥하다거나, 충실하다거나―생각해보고 그중 세 개만 택해야 하는거야. '세 개', 바로 그거야. 아주 운이 좋으면 어쩌면 네 개를 가질 수도 있겠지. 나머지는 딴 데서 찾을 수밖에 없어. 원하는 걸 다 주는 사람을 찾는 건 영화 속에서나 있는 일이야. 하지만 이건 ..

일상/2020~2022 2021.01.06

이 한 해는 이렇게

이 한 해는 이렇게 가는구나. 안녕- 어쩌면 다른 날과 같은 하루일 뿐인데 어쩐지 평소처럼 그냥 자러 갈 수가 없는 밤 당신은 곧 다른 곳으로 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지금은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이니까 문득 그냥 선물을 보내봅니다. 한 사람이라도 기쁘게 만들었으니까, 그걸로 괜찮은 거겠죠.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이 지나면 뭔가 더 나아질 거라고 마음속 저편 어딘가에선 그래도 그런 생각 갖고 있던 예전의 내가 부럽다. 20.12.31.

일상/2020~2022 2021.01.01

한 해의 끝

작년 12월 31일엔, 이 집으로 그가 왔었다. 새해를 같이 맞이하려고. 난 그런 그에게 이혼을 얘기했다. 그 관계는 얼마나 특별한 관계였는지. 1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새삼스럽게도. 더이상 새해를 같이 맞을 사람은 없고, 앞으로도 겨울은 점점 더 쓸쓸한 계절이 되어갈까. 상담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 왜 그렇게 당신에게 중요하냐고.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난 왜 누군가에게 특별하게 여겨지길, 누군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주길 원하는가. 꼭 그런 관계가 있어야만 괜찮은 삶인가. 적당한 관계들로는 안 되나. 새해에는 누군가와 함께 춤을 출 수 있기를.

일상/2020~2022 2020.12.31

친구

달달한 맛과 뜬금없는 선물을 좋아한다고 댓글을 달았더니 아이스크림 와플 기프티콘이 덜컥 도착해버렸다. 아무 약속도 없이 집에서 굳이 시키지도 않은 회사일을 하고 있었는데 예상 못한 상냥함에 마음의 온도가 올라갔다.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이 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라는 단어가 포함하는 관계의 범위가 넓다보니 그저 자연스럽게 어느새 3년이고 4년이고 연락이 닿지 않은 '친구'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친구라는 낱말은 여전히 따뜻한 기분을 주고,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은 감동을 주었다. 모임이 끝나고 코로나는 갈수록 심해지고, 각자의 생활 속에 그저 흘러가고 있을 때 먼저 내밀어준 그 손이 어찌 감동이 아니랴. 나는 누군가와 가깝고 좋은 친구가 되는 ..

일상/2020~2022 2020.12.31

눈이 내린다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문득 뽁뽁이가 붙어있는 불투명한 안쪽 창을 슬쩍 열었더니, 냉기와 함께 온 세상에 눈 내리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매일 보던 동네에 눈이 덮였을 뿐인데, 어째서 이 고요한 풍경은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걸까? 어딘가에서 증발해 올라가 있던 수증기가 고체가 되어 떨어져내리는 하얀 조각들이 왜, 어딘가 바삐 가야하는 어른들의 시간을 잡아먹고 옷을 더럽히는 귀찮은 그것들이 어떨 때는 마음에 감동을 주는 걸까? 소리없이 내려와 쌓이는 눈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상담선생님이 내준 숙제의 '좋아하는 것' 항목에 추가해야겠다.

일상/2020~2022 2020.12.13

친구 결혼식

여러모로 잘 살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 하나는 10월 9일, 하나는 12월 5일에. 코로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사람만 참석한 결혼식들이었다. 그렇게 파격적이랄 것은 없는 평범한 예식장, 호텔에서의 결혼식이었는데, 거기 참석한 내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인지 결혼한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인지 예전에 평범한 결혼식을 참석했을 때와 느낌이 많이 달랐다. 첫번째로, 부러웠다. 내가 결혼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제일 먼저 하고선 결국 이혼까지 선택해놓고 친구 결혼식 가서 부러움을 느낀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결혼식의, 혹은 결혼의, 그 관계의, 그 삶의 어느 부분을, 어떤 면을 부러워하는 걸까, 그걸 알게 되면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건지를 좀 ..

일상/2020~2022 2020.12.06

수요일 오후 반차

오후 반차를 내고 혜화에 갔다. 곧 문을 닫는다는 이음 책방으로 향하다 우연히 혜화아트센터에서 하는 전시를 구경했다.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보니 수요일 낮에 거리를 걷고 전시를 보는 게 몹시 특별한 일로 다가왔다. 지난 토요일의 마로니에공원 부인공 전시회도 그랬지만 관람료가 무료일 뿐 아니라 뭘 자꾸 공짜로 주셨다. 한국에 잠깐 들어온 친구를 따라 놀러다니지 않았다면 이런 전시를 어찌 만났을까. 회사와 유튜브로는 이런 기획과 사람들과 작품들을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책방을 둘러보는데 가장 눈에 띈 책은 회사 그만두는 법이었다. 실은 지금의 직장생활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그랬다. 같이 밥 먹는 동료들이 하도 퇴사를 꿈꿔서 그런가.ㅋㅋ 말로만 듣던 ..

일상/2020~2022 2020.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