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잘 살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 하나는 10월 9일, 하나는 12월 5일에. 코로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사람만 참석한 결혼식들이었다. 그렇게 파격적이랄 것은 없는 평범한 예식장, 호텔에서의 결혼식이었는데, 거기 참석한 내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인지 결혼한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인지 예전에 평범한 결혼식을 참석했을 때와 느낌이 많이 달랐다.
첫번째로, 부러웠다. 내가 결혼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제일 먼저 하고선 결국 이혼까지 선택해놓고 친구 결혼식 가서 부러움을 느낀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결혼식의, 혹은 결혼의, 그 관계의, 그 삶의 어느 부분을, 어떤 면을 부러워하는 걸까, 그걸 알게 되면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건지를 좀 더 알게 될까.
아니면 나이는 동갑이지만 그 '빛나는 순간'을 나는 이미 지나쳐버렸고 심지어 안 좋게 끝내버렸다는 것에 오는 안타까움과 내 빛났던 순간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걸까.
친구가 읽는 성혼선언문을 들으면서,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맹세에 대해 내가 너무 진지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하는 요즘 어렴풋이 하던 생각을 또 했다. 난 어쩌면 사랑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컸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맹세'나 '의지'가 개입하지 않아도, 그러니까 그렇게 '억지로'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순진했달까, 안일했달까, 그저 사람과 감정과 나 자신에 대해서 잘 몰랐다고 할까.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에는 강한 의지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서로간의 노력과 그런 것들이, 웬만큼 서로 잘 맞는 사이여도 꼭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과연 그 정도의 의지와 노력을 할 수 있는 힘이 내게 남아있을까하고 생각했다.
어제 아침의 상담에서 부정적 자동사고에 대해 배웠다. 한번 어떤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 생각, 어떤 결론을 내렸던 생각은 그 다음부터는 중간과정을 생략하면서 곧바로 결론으로 가는 패턴을 형성하고 '그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그 생각을, 또 그런 방식으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는.
어떤 말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내 남은 삶에 대해 절망할 때 나도 내 생각이 전개되는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또한 그 결론을 곰곰이 생각할 때면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비논리적이라고 스스로 평가하는 그 논리를 어느새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이 자동사고를 바꾸기 위해서는, 끊어내기 위해서는 첫째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에 알아차려야하고, 둘째로 의식적으로 그걸 다른 방향으로 가져와야한다고 했다.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는 방법과 같았다. 잘못된 자세를 고치려면 우선 내가 잘못된 자세로 서있거나 앉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하고, 그때마다 계속 바로잡아야하며, 이건 하루이틀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잘못된 자세를 갖게 되는 건 쉽다, 그냥 그게 편해서 그런 자세로 있다보니 어느새 굳어진 것뿐이다. 몸에는 안 좋아도 그러고 있으면 그냥 편하다. 부정적 자동사고도 마찬가지. 우울할 땐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에너지도 부족하기 때문에 부정적 자동사고는 더더욱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비논리적인 최악의 결론으로 건너뛰게 되는데,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이걸 돌려놓는 것도 어려워진다.
나는, 아직 젊다. 나와 더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에너지도 충분하다. 돈은 많이 없지만 돈이 많이 없다고해서 연애나 결혼을 못하는 건 아니다. 한번 겪어봤으니까 더 잘할 수 있다. 좀 지친 건 사실이지만 그동안 쉬고 상담을 받고 하면서 나는 나아지고 있다. 나는 내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관계들을 잘 맺고 유지해나갈 수 있다. 당연히.
'일상 > 2020~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이 내린다 (0) | 2020.12.13 |
---|---|
수요일 오후 반차 (0) | 2020.12.06 |
직장동료와의 저녁식사 (0) | 2020.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