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291

읽지 말 걸

어제는 컨디션이 별로였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오전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만한 책이 아니었다. 삶의 의미라니. 그런 걸 심각하게 고민하기엔, 아직 내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게 됐다. 저자의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죽음에 직면하고 의미를 탐구하는 태도와 삶은 지금의 나에겐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읽지 말 걸. 괜찮은 책을 읽고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직 내가 충분히 괜찮지 않기 때문일까. 그는 좋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일상/2020~2022 2021.05.23

컨디션 난조

어쩐지 컨디션이 좋지 않은 하루였다. 수요일에 너무 무리해서 더위를 좀 먹었는지도, 아니면 그를 힘들게 한 내 넘겨짚는 말, 내 낮은 자존감, 내 실수에 대한 자책과 후회 때문인지도, 아니면 오늘 오전에 읽은 책 때문인지도.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Air 36세에 암으로 사망한 폴 칼라니티가 쓴 자전적 소설이다. 읽으면서 계속 감탄했다. 이렇게나 치열하게 살다니, 이렇게나 멋있게 살다니. 자기 자신을 몰아붙여가며. 어쩌면 아직 좀 지쳐있나보다. 아니면 오늘 컨디션이 너무 안좋았나보다. 그의 치열했던 짧은 삶이, 내게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어쩐지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잘못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차라리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죽고 싶다는 기분이 문득, ..

일상/2020~2022 2021.05.22

완벽한 하루

어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하루였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빨래를 해서 볕이 쨍쨍한 밖에 널었고, 하메와 산책을 갔다. 날씨 덕에 풍경이 찬란했다. 돌아와 샤워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약속을 잡고 쉬면서 간단히 맡은 것 처리해두고, 가벼운 맘으로 출발! 사랑하는 사람의 일터로 가는 길을 함께 걷다가 예상보다 너무 뜨거운 날씨에 버스를 탔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그가 일하는 동안 메뉴를 고민해 느긋하게 저녁거리를 사왔다. 선선해진 저녁에 근처 공원에서 손을 잡고 느긋하게 함께 걷다 벤치에 앉아 포장해온 밥을 먹었다. 한적하고 시원한 밤의 공원은 최고였다. 요즘 몸이 찌뿌둥해서 좀 걷고싶다는 생각 많이 했는데 원없이 걸었더니 개운하다. 수요일에 회사를 쉬고 최고의 날씨에 가장 함께 있고 싶은 ..

일상/2020~2022 2021.05.20

농사

주중에 일기예보를 봤을 때는 어째서 주말에만 비가 오는 거냐고 짜증을 냈었다. 근데 오늘 아침 눈을 떴더니 빗소리가 예쁘게만 들린다.(아무래도 금요일날 사랑하는 사람을 오랜만(2주)에 만나서 가벼운 포옹을 한 이후부터 세상이 전보다 좀 더 아름답게 보이고 있는 것 같다는 자가진단) 빗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이불을 덮고 있으면 왠지 참 아늑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오늘이 저 비를 뚫고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이란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어릴 때도 지금도 비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어릴 때와 다르게 비가 올 때 밖에 나가는 건 아무래도 맑을 때보단 좀 부담스럽다. 두릅에 대한 감사인사를 전하러 전화드렸다가 홍천에서 농사짓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셨던 소금쟁이님께 참참은 능력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상/2020~2022 2021.05.16

두릅이 왔다. 두릅파스타!

갑자기 택배가 도착했다. 열어보니 홍천에서 소금쟁이님이 보내주신 두릅! 벌써 몇 해째 이렇게 두릅을 얻어먹고 있다. 말해놓고 매번 못 가는게 민망해서 언제 한번 놀러가겠다는 말도 못하고 그저 감사 인사만 드렸다. 해드린 것도 없는데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니.. 두릅으로 오일파스타를 만들었다. 두릅을 넣고 해본 건 처음인데, 나쁘지 않았다. 역시 그냥 잘 데쳐서 고추장에 찍어먹는 게 더 두릅다운 것같긴 하지만.ㅎㅎ 스테이크는 같이 사는 위버가 기분 내서 에어프라이어로 뚝딱 해냈다. 올리브오일에 다진마늘 듬뿍 넣고 약불에서 10분 정도 마늘기름을 낸 뒤에 물1L당 소금 15g을 넣은 소금물에 면을 삶은 뒤(삶는 시간은 사용하는 면의 종류에 따라 달라서, 포장에 써있는 안내대로) 체에 면 건져내서 물기 탁탁 털..

일상/2020~2022 2021.05.16

나카시마 미카 -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나카시마 미카 -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보쿠가 시노토 오못타노와) 추천받아 알게 된 이 노래를 몇번이고, 몇번이고 듣고 있다. 어제 새벽 늦게까지 듣고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 https://youtu.be/C6st9z_iaao 유튜브 영상 너머로 볼 뿐인데도 내 마음으로 그대로 전해져들어오는 것만 같은 감정이 놀랍다. 읽다보면 한 단어 한 단어 와닿는 가사, 가수로선 치명적인 목소리가 몸 안에서 울리는 희귀병을 안고 온힘을 다해 불러내는 나카시마 미카의 몸동작과 눈빛. 어느 부분에서건 울컥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차가운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야' '사람의 따스함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라는 가사가 연이어 나오는 부분에서 특히 눈물이 난다. 그리고..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 ..

일상/2020~2022 2021.05.16

입사 첫 날

어제 입사 첫 날, 채용담당자님이 회사의 조직도나 주요사업, 각 사람들이 하고 있는 역할, 자리 배치, 앞으로 회사적응기간동안 어떤 식으로 업무가 주어질지 등을 피피티로 설명해주셨다. (이전 회사에선 전혀 없었던 과정..ㅠ) 또 3개월동안 다 읽고 배느실(배운 것 느낀 것 실천할 것)을 제출해야한다며 책 5권을 안겨주셨다. 다섯 권이라니 꽤 많지만ㅎㅎ. 직원들의 성장을 위해 애쓰는 회사라고 했는데 말뿐만은 아니라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뭔가 하고있는 것 같아서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뿐만 아니라 임시로 받은 자리가 통로 옆인데다 뒤에 통유리창때문에 여름 되면 덥고 눈부시다며 자리를 안쪽으로 바꿔주신다고 했다. 이전 회사에서 자리를 세번이나 옮겨도 맨날 출입문 옆자리나 뒤로 모든 사람이 지나다닐 수밖에 없는 ..

일상/2020~2022 2021.05.14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는 사람에게 전해들은 얘기인데, 그의 여동생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남편의 폭력을 경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심지어 임신한 중에도 멈추지 않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최근엔 점점 더 심해졌나보다.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현재는 이혼을 준비 중이고, 남편은 이혼하기 싫다고 버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동생이 그렇게 살고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던 상황이고. 그는 어째서 진작 이혼하기로 하지 않았냐는 의문을 느꼈고, 그가 동생의 말을 들어봤을 때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의 부모님들이 특별히 부모를 위해 이렇게저렇게 살라고 심하게 강요하는 타입도 아니고, 여태까지 그와 동생도 이미 여러 번 실망시켜드리면서 살아왔..

일상/2020~2022 2021.05.10

삶이 너를 항상 내게로 되돌려보내주길

아침에 지하철에서 읽을 책을 느긋하게 고를 시간이 없었는데 눈에 딱! 들어온 게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이었다. 좋지, 이것도 한번은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고 싶었지,하고 4호선에서 몇장을 펼쳐읽는데 앞에서 웬 종이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언제 어디서 받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캘리그라피. 왜 이 책에 끼워뒀을까. 다만 문장만큼은 낯이 익는다. 아마 더이상은 읽지 않는, 이젠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기욤 뮈소의 소설에서 나왔던 문장이다.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이런 문장들을 사랑했었지, 나는. 지금도 나쁘지 않다. 작년의 나는 "나는 더이상 운명적인 사랑같은 건 믿지 않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그게 사랑이 맞다면 그건 운명이 아닐 수가 없지 않을까. 적어도 운명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지 않..

일상/2020~2022 2021.05.06

이혼의 이유2

내 이혼은 내가 결정한 일인만큼 내 이혼에 대해 나만큼 오래, 많이 고민하고 나만큼 왜 그랬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절대 쉽게 결정한 일은 아니었다. 당연히, 쉽게 결정할 만한 일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택한 것이다. (그 사람은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정말로 나쁜 사람이고 내게 못된 짓을 했다면 차라리 모든 게 더 받아들이기 쉬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반대로 내가 나쁜 사람이어서 이혼한 것처럼 생각이 됐다. 누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그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어째서 이혼을 하면 최소한 둘 중 한쪽에는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그런 일이 생겼다고 ..

일상/2020~2022 2021.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