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상담이 끝났다.

참참. 2021. 1. 17. 15:22

 

서울심리지원 동북센터에 신청해두고 2~3개월을 기다린 끝에 차례가 돌아와서 마침내 받을 수 있었던, 2020년 11월 21일 토요일부터 시작된 8회기의 심리상담이 어제 끝났다.

상담종료 설문지를 다하고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막 출근하신 행정직원분께서 급히 붙잡으시더니 상담을 끝마치신 분들께 드리는 선물이 있다고 받아가라고 하셨다. 야외응급키트(소독용 알콜솜과 밴드), 휴대용 칫솔치약세트, 그리고 스프링노트 한 권. 

"상담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선물까지 주시나요?"
"별로 큰 건 아니구요."

끝까지 참 따뜻한 곳이었다.

상담실로 들어가는 길

첫 상담 때 건물이 너무 예뻐서 감탄했던 서울심리지원동북센터가 위치한 덕성여대 내의 '덕우당' 건물. 내부도 참 예쁘고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물론 분위기는 아늑하지만 실제로는 옛날 건물이라 웃풍이 심해서 한겨울이 되자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좀 덥기도 했지만)

 

여기에서 상담 받기 전에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하는 마음건강지원사업에서도 7회기의 무료 상담을 받았었는데, 그때 상담해주신 선생님도 참 좋았지만 코로나로 7회기 중 절반 이상을 줌으로 온라인진행하면서 아무래도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것만큼은 소통이 안되다보니 아쉬움이 있었다. 게다가 7회기가 참 짧더라.

이번에는 그 상담에서 얻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나, 또 그때 했던 MBTI 검사결과 등을 미리 보여드리면서 시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서울심리지원 동북센터의 상담은 실제 대면상담 8회기뿐 아니라 상담 시작 전에 우편으로 보내주는 검사지를 통해 1시간 이상이 걸리는 몇몇 심리검사 결과를 미리 보내놓고 시작하는 방법을 통해 사실상 9회기 그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구성되어있다. 상담은 1회기에 50분~1시간인데, 우편으로 온 검사지를 전부 작성하는 데만도 거의 2시간 이상이 걸렸던 것 같으니, 이걸 상담 현장에서 했다면 최소한 1회기는 검사지 작성만 하다 끝났을 터다.

처음 상담을 신청하기 위해 전화 걸었을 때도 전화로 어떤 문제로 상담을 원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약 30분?(벌써 4~5달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이상 전화통화로 기초상담을 해주셨었다. 단순히 전화번호 받고 일정 관련해서 신청만 받는 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이미 상담 시작이었다.(해당 자료는 당연히 추후에 배정된 상담선생님께 전달이 됐을 것이고.)

이렇게 이미 처음부터 친절하고 내담자에 대한 배려와 어떻게든 더 도움을 주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하시는 게 느껴져서 코로나 등으로 예약일정이 밀려서 무려 두세 달을 대기했음에도(처음엔 대기시간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에 놀라긴 했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 됐다. 운이 좋게도 딱 그 대기하는 동안에 그 타이밍에 청년활동지원센터의 마음건강지원사업이 진행되어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되기도 했었고.

 

아무래도 대기를 오래 했고 그 사이에 다른 상담도 받았다보니 실제 대면상담을 시작하게 됐을 때는 상황, 일상, 심리상태 등이 처음 전화로 상담을 신청할 때와는 꽤나 달라져있었다.

심리상담도 어떤 선생님과 만나느냐, 상담자와 내담자가 잘 맞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사실 심리학이나 상담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고 상담을 여러번 경험해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선생님과 내가 잘 맞는지 객관적으로 구분하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번에 상담해주신 선생님과는 몹시 잘 맞는다고 느꼈다. 지난번 선생님도 참 좋았지만, 이번에 만난 선생님은 오래된 친구같은 느낌이랄까? 더 친근하고 나랑 비슷한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이 있었다. 지난번 상담때보다 아무래도 좀 더 상태가 좋아졌고 상담도 한번 경험한 뒤라서 나도 상담에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서 더 그랬던 것도 있겠지만.

 

나는 나와 계속 같이 살기 때문에, 내 변화를 알아채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가끔 보는 친척들이 "키가 엄청 컸네"라든가 하는 변화를 더 알아채기가 쉬운 것처럼. 선생님이 지난 11월부터 약 두 달동안 지켜보면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상태를 말씀해주시니까 비로소 나도 훨씬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됐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일상이 다르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방식이나 태도도 달라졌다는 걸.

나는 여전히 세상 행복한 사람은 아니지만, 세상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면 이제 나는 꽤나 괜찮은 상태는 된 것 같다. 새해라는 시기적인 요인 때문인지 나름대로 의욕도 많아졌고(그 의욕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을 새로 벌려놓고 큰일났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회사에 불만도 많아졌는데 이 불만이 많아진 것에 대해 걱정이었지만, 오히려 부당한 것들에 분노하고 불평하고 더 좋은 곳으로 가고싶다는 마음과 의지를 낸다는 것도 힘이 생겼으니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선생님도 "만약 작년 11월에 이직을 고민하신다고 했으면 말렸을 것 같은데, 지금은 도전해봐도 괜찮을 것 같네요."라고 하셨다.

 

지난 두 달간 무엇을 얻은 것 같냐는 질문에는 한마디로 답하기가 참 어려웠다. 두루뭉술하고 정리가 잘 되지 않아서. 그러나 엄청 많이 좋아진 건 분명하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상을 갖고 싶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 의욕이 생기고 더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많이 생각해보게 됐고, 알게 됐다.

또한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흐르는 것은 습관적이라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됐고, 이 '부정적 자동사고'는 육체적인 습관이나 자세를 고치는 것과 똑같이 그 순간에 알아차리고 계속해서 교정함으로써 어렵고 시간은 걸릴 지언정 고칠 수 있다는 걸 분명하게 인식하게 됐다.

 

마지막 상담에서 선생님은 '자기 상담'에 대해 얘기해주셨다. 내가 나를 상담할 수 있게 되면 된다고. 그게 어려울 때는 지금 고민하는 이 문제에 대해 선생님한테 얘기했으면 선생님이 어떻게 답해줬을까 상상해보라고 했다. 육체적으로도 평상시에 내가 내 몸의 이상징후를 잘 파악하며 내 몸이 편안하고 건강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스스로 계속 돌보는 것이 중요하듯, 마음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의 민간요법같은 걸 스스로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고 조언해주셨다. 내 마음이 이럴 때는 이런 방법을 쓰면 나아지더라 같은 것.

토요일 아침 9시, 평일처럼 일찍 일어나 추운 날씨를 뚫고 가는 일을 이제 안해도 되게 됐지만 끝났다는 게 아쉽고 섭섭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나는 많이 나아졌고 차례를 기다리는 많은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젠 양보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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