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갔을 때, 페르 라셰즈(프랑스어로는 빼흐 라셰즈에 더 가깝지만)라는 공동묘지에 갔었다.
아무래도 묘지는 묘지니까 공원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공동묘지와 비교하면 그냥 산책 삼아 걷기 좋은 공원이나 다름없는 분위기다. 유명인들도 많이 묻혀있어서 관광객도 온다.
파리에서 둘러본 곳 중에 제일 좋았다. 그 평온한 분위기와 그들이 살아낸 치열한 삶의 흔적들이 교차하면서 불러일으키던 묘한 감상.
죽은 이와 죽어가는 이를 볼 때만큼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될 때가 없다. 내겐 산책할 묘지가 필요하다.
20.11.11.
김보통 작가의 웹툰 아만자를 봤다. 아만자는 암환자다. 젊은 남자 주인공이 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하고 죽어가는 이야기다.
죽어가는 이야기를 보면서 삶을 생각했다. 그의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며 조금은 사는 것을 긍정하기도 했다.
근데 우습게도 그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이 부럽게 느껴지는 장면들도 있었다.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아프면 누가 곁에 있어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몇년이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주인공은 아직 아무 의미도 만들지 못했다며 삶을 아쉬워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나 의미있는 사람인 걸.
대체로 그렇겠지만 난 건강하게 살다가 한순간에 죽고 싶다. 내가 쓰러졌을 때 잠깐은 몰라도 몇달이나 곁을 지켜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걸 견딜 자신도 없고. 반대로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별로 자신 없으니 할말은 없다. 모두 각자의 삶을 사는 거니까.
20.11.12.
연차를 내고 암스테르담에 사는데 잠시 귀국한 친구와 함께 평소 출근하는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그는 처음 타본 서울 공유자전거 따릉이에, 자전거도로 둘레로 보이는 꽃과 갈대와 가을풍경들에 연신 감탄했다. 서울 참 좋다며. 그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탈 때만은 부정할 수가 없다. 서울이 생각보다 예쁘고 괜찮은 도시라는 걸.
항상 어두컴컴한 새벽이나 저녁에 혼자 페달을 밟아 쌩하고 지나던 그 길을 밝은 낮에 누군가와 함께 천천히 지나는 건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혼자 탈 때도 예쁘다고 생각했던 풍경이지만 새삼 더 예쁘고 의미있게 느껴지고 더 웃음이 났다.
내 몸의 근육을 있는 힘껏 사용할 때는 기분을 가라앉게 만드는 부정적인 사고와 감정이 확실히 덜 떠오른다. 왜일까? 한껏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살아남기 위한/계속 살아가기 위한 뭔가를 하고있는 거라고 마음도 받아들이는 걸까?
20.11.14.
커피식탁이란 멋진 카페를 알게 됐다. 성북동에서 자전거를 타고 성수동의 그 카페까지 간 우리는 거기 앉아 행복에 대해 얘기했다.
삶의 목적은 행복에 있는가? 행복하고 싶다면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과거에 대해, 내가 내렸던 판단과 했던 행동과 느꼈던 감정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 여기는가, 나쁜 사람이라 여기는가, 어떤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 여기는가,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기 위해 과학적 객관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
저녁에는 몇달만에 어머니를 뵈었다. 추석 때도 못 뵈어서 저녁식사나 한 끼 대접하려고 했는데 모 재즈라이브연주가 있는 식당에 가보고 싶었던 내 사심이 절반이었다. 근데 예약에 실패하고 결국 가보니 자리가 없어서 대충 근처에 다른 일식집에서 먹어야했다. 객관적 기록은 없지만 내 돈으로 먹어본 식당 중에 압도적으로 가장 비싼 곳이었다. 솔직히 앞으로 5년 안에 1인분에 그 정도 가격을 지불할 일이 있을까싶을 정도로.
내 월급 수준으론 너무 비싼 식사여서 돈 생각이 안 날 수 없었고 어머니도 그랬던 것 같다. 이 얘길 들은 영국인 친구 K가 "Money is nice but when you are old, memories are better."라고 했다. 그래 너무 비쌌다는 그 사실마저도 잊지 못할 추억의 한부분이 될 거라 생각하니 잘 쓴 것 같다.
보람찬 하루의 연차휴가였네.
20.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