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392

사무실 자리

회사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하루에 약 9시간쯤 된다. 밥 먹으러 나갔다오는 시간을 빼더라도 보통 하루 9시간 가까이는 되더라. 30분 정도 일찍 출근하고, 15분 정도 늦게 퇴근하고, 밥 먹고 와서도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사무실 책상에 앉게 되니까 말이다. 계산해보니까 자는 시간을 하루 평균 7시간으로 잡으면 일주일동안 깨어있는 시간이 119시간쯤 되는데, 그 중 45시간을 사무실 책상 앞에서 보내는 거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일주일동안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인 것이다. 삶의 반을 거기서 보낸다고 생각하면 참 소중한 공간이다. 그곳이 조금이라도 머물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 집중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은 내 삶의 질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공간, ..

일상/2020~2022 2020.03.15

화이트데이

화이트데이라고 같은 층에 근무하는 한 남자직원이 사무실 전원에게 사탕 두 개, 초콜릿 네다섯 개가 든 작은 꾸러미를 돌렸다. 그걸 받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첫째로는 물론 달달한 걸 좋아하니만큼 먹을 게 생겨서 좋았지만, 그 다음으로는 '니가 이런 걸 하면 내가 뭐가 돼?'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 직원은 입사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직원이지만 나이는 나보다 어리다. 대학교 졸업 이후에 바로 입사한 사람이다. 나야 뭐 입사 2주밖에 안 된 신입사원이지만 30대다. 그는 여자친구가 있고 난 없다.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 회사에 과장님과 팀장님 총 두 분뿐이다.) 이런저런 상황은 다 제쳐놓고라도 사실 그런 식으로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의 호의를 고맙게..

일상/2020~2022 2020.03.15

디비

집 앞에서 종종 마주치는 고양이 얘기를 전에 한번 했던 것 같은데, 어제 빨래 널다 또 마주쳤다. 오랜만인 것 같네. 많이 경계하진 않지만 그래도 바로 옆까지 오진 않는다. 냉동실에 있던 국물용 멸치 서너 개를 던져줬더니 여전히 아주 잘 먹는다. 빨래 다 널 때까지 구경하다 갔다. 오늘 아침엔 국물을 내고나서 건져낸 멸치가 있기에 다른 음식물쓰레기와 합치지 않고 어제 멸치를 던져주었던 쪽에다 잘 놓아두었다.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점심도 되기 전에 사라졌다. 녀석이 먹은 건지 새나 다른 동물이 먹은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녀석이 먹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계속 '그 고양이'라고 떠올리는 게 싫어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이것저것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부르기 편한 이름이 좋을 것 같아서 '디..

일상/2020~2022 2020.03.15

공장에 가다

이번주엔 하루를 빼서 우리 회사에서 새로 지었고 또 짓고 있는 물류창고와 공장에 견학을 갔다. 중소기업이라 엄청나게 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크고 시설도 굉장히 깔끔하고 깨끗해보였다. 연구소랑 생산시설쪽은 아직 완공은 안 된 상태였지만 어느 정도 틀은 다 잡혀있었다. 이미 테스트 생산은 하고 있는 상태였다. 팀장님이 농담으로 여기 와서 일해도 된다고 했지만 단호하게 난 서울이 좋다고 했다. 견학 갔다온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엔 일이 터져서 우리 회사 자체 공장 말고 외주로 특정상품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에 긴급투입됐다. 옛날에 '미생' 보던 생각이 났다. 정확히 어떤 에피소드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중간에서 유통을 하니까 이렇게 생산단계나 중간에 관리하는 단계에서 뭔가 실수가 생기면 대기업인 유통업체..

일상/2020~2022 2020.03.14

이제야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늘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 퇴근하셨다. 그리고 주말엔 잠만 주무셨다. 어린 마음엔 그게 잘 이해가 안 됐다. 일이야 즐겁기만 할 리는 없을 텐데, 즐겁게 놀아야 할 주말을 잠으로 다 보낸다니! 근데 고작 열흘 직장생활 해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그냥 집에 오니까 아무것도 안해도 피곤하다. 6시 조금 넘어서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는 저녁 먹고 나면 아무리 빨라도 8시에서 보통 9시는 되고, 그럼 조금 졸리기 시작한다. 난 무슨 자식을 키우는 것도 아니고 모셔야 할 시부모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월급은 정말 짜지만, 연봉계약서라곤 하지만 실상 최저임금과 별 차이 없는 월급(생각해보니 내년 2월까지 이 월급을 받기로 연봉계약서를 썼는데 내년도..

일상/2020~2022 2020.03.11

첫 회식

어젠 한 이사님의 제안으로 최근에 입사한 몇몇을 포함해서 약 여섯 명이 같이 저녁을 먹었다. 들어와서 처음 경험하는 회식이라 할만한 자리였다. 아무래도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 마냥 좋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평소에 회사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가 참 없구나 싶었는데 얘기 나눠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나는 특히나 소속팀도 애매하고 업무적으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회사 전체에 한분밖에 안 계셔서 업무적인 대화도 아직까진 크게 나눌 일이 없었다. 좀 더 익숙해지고 업무를 많이 하게 되면 당연히 다른 팀들과도 많이 소통해야하지만. 다들 술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1차에서 끝날 거라고 했지만 이사님은 상당히 술을 좋아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마시라고 말을 하시진 않았지만 이사님 잔이 비어가는 속도는 ..

일상/2020~2022 2020.03.10

정신차려보니 신입사원

시골 살고 싶다고 서울을 떠났는데, 3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고 보니 별 기술도, 경력도 없는 데다 대학도 그만둔 30대가 되어있었다. 나름 작은 청년 단체에서 3년 넘게 일하며 대표도 맡았었는데 그건 어디서 경력으로 쳐주지도 않았다. 처음엔 야속했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딱히 업무능력이라고 할 만한 걸 익히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엑셀이니 파워포인트니 하는 것들은 대학생들 과제할 때 쓰는 수준에 자격증도 없는 데다 공공기관과 일할 때 필요한 제안서나 공문서라도 많이 만들어본 것도 아니다. 기획서를 잘 쓴다거나, 명백하게 성과가 나온 프로젝트 이력이 있거나, 다른 내세울 능력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하나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시골에선 학원 강사였는데, 그것도 사교육 시장 아니면 쓸 데가 별로 없..

일상/2020~2022 2020.03.08

성장

나아지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주는 만족감이 상당하다. 금요일엔 근로계약서를 썼다. 비록 올해 연봉은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책정됐고 수습 3개월은 그나마도 80%라 사실상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급이 나올 것 같지만(수습기간동안은 최저임금의 90%만 줘도 최저임금법 위반이 아니라고 한다.), 어쨌거나 수습기간만 지나면 최저임금보다 쪼끔은 더 받을 것이고 무엇보다 아무 대책없이 갑자기 해고될 일은 딱히 생기지 않으리라는 데서 오는 안정감도 나쁘지 않다. 나만 잘 하면 내년엔 얼마나 올릴 수 있을지가 문제지 분명히 연봉도 올릴 수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5일 출근한 지금 내가 회사에서 맡은 '업무'라고 할만한 것들은 사실 굳이 프로그래머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그..

일상/2020~2022 2020.03.08

가혹해지지 말자

저녁밥도 안 먹은 채로 집에 도착한 게 8시였다. 어찌 보면 늦고 어찌 보면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 것 같은, 그러나 아침 7시 반에 집에서 나간 내가 지치기엔 충분한 시간. 집에서는 예고되었던 양주 마시는 모임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하우스메이트 둘과 오랜만에 보는 한 사람, 그리고 처음 뵙는 분이 두 분 있었다. 공부해야하는데, 하면서도 저녁 식사 겸해서 자리에 앉아 한 잔, 두 잔 받다보니 어느새 같이 재밌게 마셨다. 그러다보니 열두 시가 다 되었다. 잤고, 6시에 일어났다. 오늘의 업무를 위해서 공부해야할 게 있었는데 사실 아무리 해도 모자란 게 공부지만, 역시 조바심이 났다. 그러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너무 가혹해지지 말자, 나 자신에게.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

일상/2020~2022 2020.03.06

녹초

오늘은 꽤 지쳐서 돌아왔다. 아침에도 좀 부랴부랴 나갔는데 택시기사와의 대화도 썩 유쾌하지 않았고. 사실 택시 출퇴근이 생각보다 별로다. 시간은 조금 줄어들지만 길 막혀서 큰 차이도 없고 더 답답하다. 멀미도 꽤 많이 나서 뭘 할 수가 없다. 난 오히려 지하철 타는 게 훨씬 더 편한 것 같다. 처음으로 사장님을 뵐 기회가 있었다. 또 인사 드리러 가겠지만, 오늘은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봤다. 나같은 말단 신입이 들어갈 회의였나 싶긴 했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핵심적인 새 프로젝트의 내용을 잘 알게 됐다. 회사에 프로그래머가 왜 필요한 지도 뼈저리게 느꼈는데 문제는 내가 그걸 수행하려면 한참 더 공부해야 한다는 것. 에고. 컴퓨터한테 시킬 수 있는 일을 사람들이 고생해서 해야한다 생각하니 당장은 내 능력 ..

일상/2020~2022 2020.03.04

화요일

어제는 출근하면서 주로 5호선을 탔는데 오늘 출근엔 주로 2호선을 탔다. 생각보다 2호선도 사람이 없었다. 코로나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간은 거의 똑같다. 1시간 7분. 막상 지하철에 타고 있는 시간은 그렇게 길진 않은데 이래저래 걷고 갈아타는 시간이 길다. 이 정도면 나쁘진 않은 정도라는 느낌이다, 아직까지는. 근데 회사 지침으로 앞으로는 당분간 택시 타고 출퇴근해야할 것 같다. 역시 코로나 때문이다. 직원들이 사람 많은 곳은 되도록 피하길 바라는 회사의 마음이랄까, 나쁘진 않다. 출퇴근길 정체만 조금 피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오늘은 본격적(?)으로 업무가 생겼다. 일단 매일 해야하는 일로 하나 받은 것은 단순한 일이다, 실수하지 않고 변수가 생겼을 때 제대로 보고하고 대처할 수만 있..

일상/2020~2022 2020.03.03

첫 출근

첫 출근을 했는데 뭔가, 음. 이등병 때 자대 가서 뭘 해야할지 어디에 있어야할지 무슨 생각을 해야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그 느낌이었다. 우습지만 참 난감하다. 일단 건물에 들어갈 키가 없었고, 다른 사람과 함께 들어갔지만 2층부터 6층 중에 내 사무실이 어느 층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층에서 어색하게 서있자 한 여자분께서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시더니 5층으로 안내해주셨다. 내 자리는 아직 없었고 컴퓨터도 없었다. 컴퓨터는 11시쯤 왔다. 그 전엔 노트북으로 잠시 단순한 작업을 했다. 근데 그나마의 작업이 끝나고 상사는 외근을 나갔고, 내게 주어진 일은 없었다. 점심은 다른 팀의 입사 약 10개월차 정도 되는 남자분과 둘이서 먹었다. (그래도 내가 더 신입이라고 밥을 사주셨다, 안 그래도 ..

일상/2020~2022 202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