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392

얼마나 감사한지

잊지 않기 위한 기록. 공부를 시작한지 겨우 두 달 남짓, 냉정하게 봤을 때 아직 업무를 수행할 능력을 갖췄다고 보긴 어려운 상태에서 배우면서 그 직무를 수행하는 일자리를 얻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행운인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렇게 커리어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서른한 살에 오다니, 그 전까지 아무런 관련도 없던 분야, 관심은 있었지만 경력은커녕 이렇다할 기초지식이나 경험조차 거의 없던 분야에서! 학원을 그만두고 여행을 다녀오고, 이사를 하고, 그런데 그 여행기간까지 합쳐도 불과 약 세 달 만에, 그 중 두 달은 그것만으로도 생계는 유지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했는데도 이런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여기서 감사히 여기고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일하고 싶은 이 ..

일상/2020~2022 2020.02.29

갑자기

얼떨결에 취직해서 갑자기 다이소 알바를 그만두게 됐다. 아무래도 사람 구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갑자기 그만두는 것이다보니 같이 일하는 분들께 죄송했는데, 서운해하시면서도 취직해서 간다고 잘됐다고 축하해주시고 한 분은 고생했다며 초콜릿까지 사주셨다. 두 달 일했는데, 좋게 봐주시고 늘 많이 도와주시고 항상 잘해주셔서 일하는 내내 사람 때문에 힘든 건 정말 없었다. 고맙고 죄송하고, 마스크 때문에 오픈 전부터 엄청나게 줄이 늘어서고 직원들이 마스크 구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객들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이런 어려운 시국에도 상냥함을 보여주셔서 감동 받았다.

일상/2020~2022 2020.02.29

진짜요?

여차저차해서 소개를 받아 한 기업에 면접을 보고 왔다. 웹 프로그래밍을 해줄 사람을 뽑는 거였는데, 솔직히 내가 너무 초짜여서 추천을 받긴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민망한 면이 있었다. 이력서에도 프로그래밍 관련 경력은 하나도 없었고, 면접 질문에서 구체적으로 어떠어떠한 걸 할 줄 아는지, 해봤는지 물어보는 질문에 90% 이상 해본 적 없고, 모르는 분야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것들은 아예 무슨 질문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였다. 당연히 안 될 줄 알았는데 뭐든 빨리 배우는 편이고 프로그래밍을 앞으로의 직업으로 삼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한 것 때문인지, 결국 대학 졸업장은 못 땄지만 그럴 듯한 학교에 입학했었다는 고교 시절의 학습능력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 아니면 추천해준 사람의 명망 덕분..

일상/2020~2022 2020.02.28

공부

코딩을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 웹 프로그래밍 쪽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생활코딩(https://opentutorials.org/course/1)이라는 강의를 알게 되고, 들어보게 됐다. 다른 걸 듣다가 WEB1 강의를 찾아보게 됐다. 듣다보니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인터넷과 웹의 차이도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런 개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html의 기초와 뼈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와 관련된 통찰들이 멋지다.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게 하고, 공부의 의미, 뻔한 소리가 아니라 정말 기초가 왜 중요한지 특히 현대사회에선 왜 더 그런 면이 있는지에 대한 고찰, 접근성과 모두에게 공개되어있는 정보와 툴이 갖는 의미 등. 단순히 웹페이지를 만들어내는 언어와 문법에 대한 지식..

일상/2020~2022 2020.02.27

마음가짐

머리로는 아는데 늘 실천이 잘 안되는 것, 마음가짐의 문제. 요즘 다이소 알바가 슬슬 하기 싫고(어제는 비 맞으며 일해서 더 그랬나), 얼른 어디 직장에 취직해서 적어도 200은 넘는 월급 받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했다. 그랬는데 오늘 새벽에 잠에서 깨서 문득 가진 것에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런 맘을 먹고 생각해보니 이 알바 처음 구했을 때 내가 이 알바를 꽤나 맘에 들어했던 기억이 났다. 집에서 엄청 가깝지, 하루에 3시간만 일하지, 그거에 비하면 돈도 나쁘지 않지. 적어도 굶을 걱정없이 공부를 하거나 뭔가를 준비할 수 있는 일이다. 몸 쓰는 일이라 몸은 약간 피곤하긴 해도 딱 일하는 시간만 끝나면 더이상 생각할 것도 없고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는 일이라서 좋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코로나..

일상/2020~2022 2020.02.26

소속감

커뮤니티의 추억이라 하면 나도 떠오르는 커뮤니티가 하나 있다. 중학생 시절 한창 열심히 활동했던 한 게임회사 팬사이트다. 게임도 아니고 게임제작사의 팬사이트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하게 느껴지지만 당시엔 아직 소위 CD게임이라고 하는 국산 패키지게임 시장이 조금은 남아있을 때여서 그런 일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 시장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2000년대 중반 즈음엔 소멸해버리다시피 했다. 현재는 '스팀' 등의 훌륭한 플랫폼(더 이상 음악을 듣기 위해 '음반'이란 물건을 살 필요없이 온라인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하는 것과 비슷한 게임 분야의 플랫폼)이 있지만 그런 게 없던 당시엔 불법복제 CD와 웹사이트나 P2P 등을 통한 불법다운로드로 게임을 이용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고, 그런 문화가 소수 인원이 ..

일상/2020~2022 2020.02.26

고양이

어제 빨래를 집 안으로 들이려고 마당에 나갔다가 고양이를 만났다. 어두운 밤색과 검은 줄무늬가 섞여있는 털을 지닌 그리 크지 않은 녀석이었다. 한쪽 귀가 살짝 잘린 것같은 게, 아마도 TNR(길고양이를 데려다 중성화수술 시켜서 다시 풀어주는 것)을 한 것으로 보였다. 날 보더니 멈칫하면서도 멀리 도망가진 않고 내가 위험한 인간인지 가늠하는 것처럼 날 곰곰이 지켜봤다. 하우스메이트 G는 자주 오는 녀석 중 하나라고 했다. 우리집 앞 마당 한켠에는 작은 텃밭이 있는데, 텃밭 끝에는 작은 퇴빗간을 만들어두고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를 거기에 버린다. 어쩌면 고양이들이 거기서 먹을 걸 찾곤 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있던 국물용 멸치를 꺼내 하나를 들고 있었다. 관심은 보이면서도 선뜻 다가오지 못하기에 앞에 던..

일상/2020~2022 2020.02.25

가진 적 없었던 것들

최근 예상치 못하게 일자리 제안을 받았는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잠깐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결국 해보자는 쪽으로 결정을 했는데, 그러고나니 막상 제안해줬던 쪽에서 연락이 끊겼다. 두려움도 컸고, 출퇴근도 멀고, 아직 제대로 배웠다고 하기도 어려운 분야라 걱정이 많았지만 못하게 되니까 또 아쉽다. 마치 가지고 있다가 뺏기기라도 한 것처럼 억울한 기분이다. 그런 기분을 느끼는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실은 지금도 아무 이유도 없는 수많은 호의를 입으며 살고 있다.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주는 형도 나름의 목표와 얻는 게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무 댓가도 없이 가르쳐주고 있고, 일자리까지 적극적으로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와 같이 사는 사람들도, 만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내게 그런 호의를 베풀 이유가 딱..

일상/2020~2022 2020.02.23

이로 생일

2월 20일, 어제는 조카 '이로'의 생일이었다. 2017년 2월 20일에 태어나, 어제 세번째 생일(한국나이 네 살, 만으로는 세 살이 되는)을 맞이한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우리 이로. 사진으로나마 생일을 맞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기뻤다. 삼촌이 해줄 건 없고, 생일을 기념하여 글이라도 남긴다. 이로야, 이로가 있어서 이로의 엄마, 아빠, 할머니는 물론이고 삼촌도 얼마나 기쁜지 몰라. 삼촌은 이로가 어떤 삶을 살더라도 응원할 준비가 되어있어. 사실 지금은 삼촌이 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이로 보러 자주 갈 순 없지만, 이로의 엄마가 삼촌에게 보내주는 응원만큼 나중에 삼촌도 이로와 이로네 가족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게 열심히 살거야. 이로는 멋진 엄마, 아빠, 할머니를 갖고 있으니까 사실 걱정..

일상/2020~2022 2020.02.21

프립, 라이프코치와의 대화

한 시간동안 1대1로 대화하면서 자존감을 체크하고 '마음근육 기르기'를 한다는 프립에 참여했다. 사실 어떤 사전정보도 없이 만나서 한 시간동안 대화만으로 엄청난 걸 찾아내는 것이야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서 그렇게까지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꽤 괜찮은 시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집중해서 듣고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내가 막연하게 고민하는 것의 핵심을 같이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그런 고민에서 나온 무기력함이나 답답함, 무거움을 좀 덜어낼 수 있는 팁같은 것, 어떤 식으로 생각해볼지에 대해서 툭툭 던져주시는 것도 좋았다. 얘기하면서 느낀 건, 내가 아직 내가 원하는 핵심적인 가치나 의미, 이건 포기할 수 없다고하는 그런 게 뭔지 스스로 잘 모르고 있다는 ..

일상/2020~2022 2020.02.21

나는 언제 모욕감을 느끼나

글쓰기 모임 '미지'의 이번주 공통글감으로 모욕감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사실 이번 공통글감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딱 떠오르는 경험이나 소재가 없기도 했고, 그렇다고 그걸 찾자니 내가 그 모욕감의 경험을 애써 기억해서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줄이고 의식적으로 더 나은 감정상태에 있는 일상을 만들고자 하는 요즈음이라 거기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충분히 괜찮은 상태에 있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불안정한 상황에서 내가 강렬하게 부정적인 평가를 당했거나 기분이 다운되는 걸 느꼈던 경험을 불러온다면 현재의 몸과 감정도 거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피하려고 했다는 말이다. 여전히 그 생각은 같지만 어제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사주, 타로, 그리고 내 꿈에 대한 ..

일상/2020~2022 2020.02.20

사주, 타로 그리고 꿈

나는 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성향 때문인지 사주나 타로 등에 오랫동안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사실 내가 그걸 직접 배워볼 생각은 별로 크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많이 재평가하고 있다. 그러한 것들을 맹신하거나 신봉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즐거울 뿐만 아니라 유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미래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조차 잘 모른다. 사주나 타로, 그밖에도 혈액형별 성격, 별자리, 관상, MBTI, 애니어그램 등 이런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공부하는 것은 자신을 더 알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는 삶 속에서 적어도 나 자신을 좀 더 알고 거기에 맞춰 살 수 있다면 좀 더 낫지 않을까 기대한다. ..

일상/2020~2022 2020.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