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고양이

참참. 2020. 2. 25. 15:13

 

어제 빨래를 집 안으로 들이려고 마당에 나갔다가 고양이를 만났다. 어두운 밤색과 검은 줄무늬가 섞여있는 털을 지닌 그리 크지 않은 녀석이었다. 한쪽 귀가 살짝 잘린 것같은 게, 아마도 TNR(길고양이를 데려다 중성화수술 시켜서 다시 풀어주는 것)을 한 것으로 보였다. 날 보더니 멈칫하면서도 멀리 도망가진 않고 내가 위험한 인간인지 가늠하는 것처럼 날 곰곰이 지켜봤다. 하우스메이트 G는 자주 오는 녀석 중 하나라고 했다. 우리집 앞 마당 한켠에는 작은 텃밭이 있는데, 텃밭 끝에는 작은 퇴빗간을 만들어두고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를 거기에 버린다. 어쩌면 고양이들이 거기서 먹을 걸 찾곤 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있던 국물용 멸치를 꺼내 하나를 들고 있었다. 관심은 보이면서도 선뜻 다가오지 못하기에 앞에 던져줬더니 잽싸게 달려와 야무지게 먹었다. 다 먹고 나서 혹시 먹을 게 더 있나 염탐이라도 하듯이 열린 문틈으로 슬쩍 안을 쳐다보는 품이 썩 귀엽다. 부르고 싶어도 뭐라고 불러야할지 알 수 없어서 누군가 녀석에게 이름을 붙였는지 궁금해졌다. 그냥 내 마음대로 하나 붙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어느새 이름까지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언제부턴가 고양이의 귀여움을 아는 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마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고양이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싶다.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키울 자신은 없다고 늘 생각했다. 예전에 친구와 같이 자취할 때 동생이 키우던 고양이를 한 달 넘게 맡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참 귀엽긴 하지만 끝까지 책임질 자신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내가 고양이를 키우게 됐던 건 함께 살던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는 꽤 오랫동안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했다. 결혼하고 귀촌을 한 뒤엔 점점 더 그 열망이 커졌다. 그러다 당시 우리에게 '자연농'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의 집 공사현장에서 첫 고양이 '냉이'를 만났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 날이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에 아무리 봐도 어미는 보이지 않고, 매일 공사현장에서 사람들이 주는 걸 얻어먹고 있었다. 공사에 참여하던 사람들이 밤에 따뜻하라고 스티로폼 박스와 담요를 가져다 작은 집도 지어줬다. 그렇지만 공사는 결국 끝났고, 녀석은 갈 데가 없었다. 그렇게 되니 나도 더 이상 그를 말릴 수 없었다.

그렇게 냉이를 키우기로 결정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마리면 심심하니까 한 마리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그 사람이 정말 한 마리를 더 데려왔다. 나와는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은 채로 대뜸 집에 걔를 던져놓고 다시 하던 모임을 마저 하러 갔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심지어 남의 집 마당에서 키우고 있던 녀석을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께 말씀드리고 데려온 거였다. 그렇게 들어온 게 '배추'다. 먼저 들어온 건 냉이지만 배추가 나이가 두세 달 정도 더 많았다. 고양이 나이를 사람 나이로 비교할 때 보통 4배를 하니까, 사람으로 따지면 한 살 터울 정도 느낌이다. 냉이는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히 '치즈태비'라고 부르는 흰색과 누런색이 섞인 흔한 한국 길고양이 색깔의 털을 지녔고, 배추는 한국에선 흔치 않아서 더 신비로운 느낌의 윤기가 도는 회색빛 바탕에 옅은 검은색 줄무늬가 있다.

솔직히 냉이, 배추는 몹시 사랑스러운 녀석들이다. 둘이 노는 것만 지켜보고 있어도 한 시간이 금방 갈 정도였다. 그럼에도 난 녀석들을 돌보는 일에 점점 지쳐갔다. 내 몸과 마음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도 있고, 녀석들이 밖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게 해주자 메뚜기며 개구리며 심지어는 참새, 비둘기, 뱀까지 집 안에 물어다놓는 등 놀라고 피곤하게 만들어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내 생각에 더 중요한 건 내 책임감의 문제였다. 때에 맞춰 밥을 주고, 항상 깨끗한 물을 준비해두고 화장실을 치워준다는 게 바쁘지 않으면서도 귀찮게 느껴졌다. 저기 마음 한쪽 구석에는 알게 모르게 '나는 반대했는데 키우자고 주장한 사람이 더 많이 신경써줘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말할 수 없이 찌질한 억울함도 남아있었다.

이혼을 하고 냉이와 배추는 자연스레 그 사람이 키우게 됐다. 내가 서울로 이사를 가는 등 상황도 그랬지만, 둘 다 똑같이 키울 수 있는 여건이었더라도 아마 그렇게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헤어지고나서 그 사람이 고양이 두 마리를 놔두고 2주일이나 집을 비워버리는 모습같은 걸 보고 있으면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자기가 책임지기로 결정한 거니까 나보단 낫다. 난 결혼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혼을 택했고,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결심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건 언감생심 상상도 못하겠다.

무조건 버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정말 아닐 때는 가끔 도망도 쳐야겠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나 자신에게 좀 덜 부끄러울 만큼은 책임지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우선은 내 생활과 내 마음을 돌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일상 > 2020~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속감  (0) 2020.02.26
가진 적 없었던 것들  (0) 2020.02.23
이로 생일  (0) 2020.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