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가혹해지지 말자

참참. 2020. 3. 6. 06:52

 

저녁밥도 안 먹은 채로 집에 도착한 게 8시였다. 어찌 보면 늦고 어찌 보면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 것 같은, 그러나 아침 7시 반에 집에서 나간 내가 지치기엔 충분한 시간. 집에서는 예고되었던 양주 마시는 모임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하우스메이트 둘과 오랜만에 보는 한 사람, 그리고 처음 뵙는 분이 두 분 있었다.

공부해야하는데, 하면서도 저녁 식사 겸해서 자리에 앉아 한 잔, 두 잔 받다보니 어느새 같이 재밌게 마셨다. 그러다보니 열두 시가 다 되었다. 잤고, 6시에 일어났다. 오늘의 업무를 위해서 공부해야할 게 있었는데 사실 아무리 해도 모자란 게 공부지만, 역시 조바심이 났다. 그러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너무 가혹해지지 말자, 나 자신에게.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은 그걸 알아주자. 타인에게보다 더 가혹한 기준을 나 자신에게 들이대지는 말자.

일 끝나고 업무적 직속상사님과 차를 타고 이야기를 나눴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애초에 현재의 업무 역량, 내 면접 당시 상태만 봤을 때는 내가 생각해도 나를 뽑는 게 맞나싶을 정도였는데 뽑은 거니까. 열심히 하고 잘 해서 날 뽑는다는 판단이 좋은 안목이었던 걸로, 날 추천해준 게 좋은 추천이었던 걸로 만들고 싶다. 그래야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앞으로 이쪽으로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는 지금은 바짝 달려야할 때다. 여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굉장히 괜찮은 출발선이고 나중에 좀 쉬더라도 지금은 힘찬 스타트를 끊어야할 때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하루 정도는 놀았지만, 당분간은 바짝!

 

오랜만에 보는 M은 사랑에 빠져 있었다. 나중엔 꽤 취해서 앞뒤가 맞다가 안 맞다가 하는 말을 반복했지만 자신에게 지금 넘쳐나고 있는 사랑을 나눠주던 마음만은 진심이어서 그 응원이 꽤 응원이 됐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네. 나도 언젠가 또 사랑에 빠질텐데,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다시 저 정도까지 또 빠져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됐다. 경험이 많아지고 나이도 많아지고 체력은 줄어들고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것도 많아지면서, 아무래도 처음의 설렘, 처음의 오직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던 열렬함과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기분이었는데, 나처럼 잘 잊고 철없이 사는 사람은 어쩌면 다시 그 마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대책없는 생각도 해봤다.

그래도 와중에 이제는 부모님이 지원해주는 것보단 내가 부모님을 지원해야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으니 조금은 경제적 안정과 내 앞으로의 생계를 위한 내 발전에 그동안 안 쓴 노력을 좀 더 써야하는 시기, 그것만은 확실하다. 그래도, 다시 한번 내게 너무 가혹해지진 말자. 지금도 괜찮다, 노력하고 있고, 나아지고 있고, 잘하고 있다. 당연히 쉽지야 않지만, 금방, 충분히 더 해낼 수 있다. 토닥토닥.

 

같이 사는 사람이 해주고 있는 배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했다. 나도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새 직장, 새 일상에 적응하느라 고생이지만 그 와중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나 대신 해주는 요리, 설거지, 분리수거, 집 정리, 청소 등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혼자 살았으면 아마 지금보다 삶의 질이 훨씬 떨어졌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에 대해 내게 불평도 하지 않는다. 본인들의 높은 기준에 내가 더 따라서 행동해주길 바라고 요구했다면 서로 지금보다 지쳤을 수도 있는데, 이 사람들도 티격태격은 하지만 둘 다 꽤나 보살인 측면이 있다. 이 고마움을 어찌 전해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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