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392

취미

최근에 내 취미가 뭔지 생각해봤다. 늘 그렇듯이 게임, 독서 정도가 가장 오랫동안 해온 취미생활이었는데, 거기에 연애를 넣어야한다는 자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연애를 처음 해본 건 스물한 살 때였는데, 군대에서 헤어지고 스물셋에 전역한 이후로 결혼하기 전까지 연애를 쉰 적이 거의 없었다. 잘생긴 것도 아니고 가진 것도 없는데, 진짜 열심히 했다.(도대체 그땐 어떻게 그게 가능했지!?) 결혼하고 나서 난 왜 하고싶은 게 없지? 왜 취미가 없지?라고 생각했을 땐 답을 못 찾았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연애가 내 주요한 취미생활 중 하나였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취미를 정의내리기야 어렵지만 돈 버는 일이 아니면서 내 시간과 노력과 애정을 쏟아서 즐기는 일이라고 하면, 나에게 있어서 연애는 그 조건에 부합..

일상/2020~2022 2020.06.10

야근보단 퇴근

아침을 먹으면서 어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었다. 혼자 그래놀라에 아몬드유 부어 먹으면서 머릿속으로 '아, 그 조건을 거기에다 걸면 되잖아? 아! 그럼 이건 어떡하지, 아 그 조건문에다가 OR로 이걸 넣고 AND로 저거 넣으면 되는 거 아니야?' 혼자 이러고 있다. ㅋㅋ 역시 야근보단 퇴근이다. 어제 6시 10분에 우리 층에서 1등으로 퇴근했는데, 거기서 머리 싸매고 끙끙대고 2시간 정도 야근했으면 풀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집에 와서 푹 쉬고 아침에 일어나니까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을 하고 있다. 야근하면서 안 돌아가는 머리 붙잡고 억지로 하는 것보다 피곤하지도 않고 기분도 훨씬 좋고.ㅎㅎ 어제는 팀장님이 무슨 일하고 있냐고 물어봐서 대답했더니만 그런 사소한 일 말고(사소함의 기준은 그 문제에서 왔다갔..

일상/2020~2022 2020.06.10

나이

내가 예전과는 다르다고 느낄 때, 그걸 나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나이를 먹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 없는 건 아니다. 주로 기존의 경험 때문에 내가 전보다 더 망설일 때가 그런 순간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건 내게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 하고 있는 혹은 하려고 하는 경험을 과거의 어떤 비슷해보이는 경험의 카테고리에다 비추어보고는 지레 겁을 먹거나 망설이게 되는 때가 있다.(사실 냉정하게 돌아보면 경험이 없을 땐 또 경험이 없으니까 두렵고 망설여졌을 텐데) 그게 때론 아쉽다. 왜냐면 분명히 그 경험에는, 힘들고 나쁜 점만 있진 않았던 경우도 많은데 기억이 결과적으로 나빴다, 마지막에 힘들었다, 는 부분만으로 편집되어있어서 그걸 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상/2020~2022 2020.06.04

설렘

요즘 몹시 설레는 일이 생겼다. 달달한 연애 웹툰을 재밌게 보고서는, 외롭다고 페이스북에 썼더니 밥 같이 먹는 친구하라며 소개를 시켜주셨다. 일요일에 카톡 프로필을 받고 화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러고선 어찌나 설레던지. 특히 당일이었던 화요일엔 하루종일 허둥댔다. 그런 내 모습을 스스로 지켜보면서도 웃겼을 정도로. 샤워하려고 안경 벗다가 코받침을 부러뜨려먹고서는(그래서 몇 년 전에 쓰던 검은 뿔테안경 겨우 찾아내서 그거 쓰고 출근하고) 안경아, 너까지 긴장했니?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밥 먹다가 자꾸만 젓가락질 이상하게 해서 뭐가 막 튀고, 걷다가 발 헛디디고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하던 습관적인 행동들이 다 뭔가 어색한 느낌이었달까? 나 왜 이렇게까지 긴장하고 있지, 할 ..

일상/2020~2022 2020.06.04

산행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산에 갔다. 산에 갔다라고 말하기엔 민망한 동네 뒷산 산책 정도이긴 했지만. 내가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만날 사람도 업속 할 일도 없다고 우울해하는 게 마음이 쓰였는지, 하우스메이트가 같이 가자고 했다. 자전거도 날이 더워졌고 비도 자주 내렸고 집 근처 따릉이 대여소에 자전거도 없다는 이유로 한동안 못 타다가 지난 목, 금요일에 타고 출근했다. 몸을 더 움직이니까 확실히 좀 낫긴 하다. 모든 면에서. 내 몸과 뇌는 자꾸만 익숙한 우울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새 우울 중독이 됐나보다. 우울증 초기 증세라고도 볼 수 있을 만한 기분과 증상이 찾아왔다 멀어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중독된 걸 끊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계속해서 의식하고 있다. 바디로직을 샀다. 자세를 교..

일상/2020~2022 2020.05.25

나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나

'목표'에 대해 생각한다. 이젠 아무도, 내 삶에 나를 방해할 사람은 남아있지 않다. 내가 어떻게 산다고 해도, 걱정은 해줄지언정 뜯어말릴 사람도 없다. 이 자유로운 삶을, 이제 온전히 내게 달린 삶을, 나는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고 있나? 더 이상 내 일상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때, 누구도 탓할 사람이 없다. 오직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이 자유 앞에 설레고 두렵다. 내가 나를, 잘 돌봤으면 좋겠는데. 내가 나를, 더 내가 원하는 곳을 찾아 잘 데려갔으면 좋겠는데.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나, 나는 나에게 얼마나 친절한 사람인가.

일상/2020~2022 2020.05.17

월요일 저녁

어젠 하우스메이트 M이 서울시에서 준 돈으로 제로페이 가맹점이 된 한살림매장에서 잔뜩 장을 봐왔다. 진짜 정신없이 바쁜 월요일이었는데, 집에 와서 식탁 앞에 앉아 기다리니 어마어마한 진수성찬이 차려져 나왔다. 재료가 말도 안되게 들어간 된장찌개에, 고기굽기 장인 G가 구운 소고기에, 술에, 음료에, 디저트로 롤케익까지 나오고, 설거지도 M이 다했다. 어제도 너무 행복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보니까 어디 가서 바랄 수도 없고 바라서도 안 되는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 참.. 복 받은 인간. 주말의 우울함을 평일의 행복으로 날려버렸다!(뭔가 거꾸로 된 느낌은 기분탓)

일상/2020~2022 2020.05.12

기억

기억은 몹시 불완전하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기억이 기록된 것이나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과 달랐던 경험이 있는가? 어릴 땐 내 기억을 몹시 신뢰했는데, 살다보니 점점 기억은 적어도 객관적인 과거 사건에 대한 자료로써 신뢰할 만한 것이 못한다는 걸 실감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같은 일을 다르게 기억할 수가 있는지 불가사의하다고 느낀 적도 여러 번이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이 장난을 치고 있거나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내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겪고 느낀 수많은 사건, 경험, 감각, 느낌, 기분 등등 중에 무엇이 기억으로, 또 장기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그렇게 되는 것인지 늘 궁금했다.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신비롭지 않은 건 거의 없지만, ..

일상/2020~2022 2020.05.12

토요일 아침 일기

어제 두번째 월급을 받았다. 월세랑 대출 갚는 거랑 청약저축이랑 교통비, 점심값같은 어차피 나갈 돈 대략 예상해서 미리 빼놓고 나니 40만원 남네. 이걸로 사람들 만나서 술도 마시고, 사고싶은 것도 사고,(비싼 거라면 여기서 조금씩 빼서 모아서 살 수 있게 저축하고) 생활용품도 사고, 취미생활도 하고, 옷을 산다거나 머리를 한다거나 하는 일도 하고, 가족들을 챙기거나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다거나, 기부를 한다거나 하는 일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넉넉한 기분은 아니다. 더 아무것도 안 하고 저축을 10~20만원이라도 더 할 것인가, 어차피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 어차피 이거 모아서 집을 살 것도 아닌 얼마 되지도 않는 돈, 이거나마 최대한 써가며 놀 것인가.(이거 가지고 열심히 논대봤자 뭐 돈 드..

일상/2020~2022 2020.05.09

듀x 광고

페이스북에 하도 듀x 연애공작소 광고가 뜨길래 한번 정보를 입력해봤더니, 프로필(이라고 해도 당연히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어차피 사진은 홍보모델 사진으로 대체되어있고 본인이 쓴 자기소개 앞부분 약간하고 학력과 혈액형 정도를 알려주는 정도?) 몇 개가 이메일로 오고 '매니저'라는 분께 전화가 온다. 매니저님은 상당히 친절하시다(당연). 아직 젊을 때 얼른 좋은 짝을 찾아야하지 않겠냐는 말을 좋게좋게 계속 다른 여러가지 사례와 온갖 얘기를 섞어가며 하신다. 가격을 물어봤더니 가장 싼 게 170만원, 괜찮게 이용하려면 220만원 정도라고 한다. 수입이 적어서 안되겠다고 하니 카드로 하면 12개월 할부도 가능하다고. 이용료도 이용료지만 연봉이 너무 적어서 여성들이 날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고..

일상/2020~2022 2020.05.07

휴일 아침 일기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을 느끼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오늘 책을 읽다가 아주 오랜만에 그런 감각을 어렴풋하게 다시 떠올려봤다. 나는 세상에 홀로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보다는 유대감과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일으키고, 좀 더 여유롭고 타인이나 세상에서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호르몬이 옥시토신이라고 한다. 사랑과 관련된 호르몬이라든가 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가 아이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시기에 많이 분비되는 호르몬으로도 알려져있다. 음, 어쩌면 10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옥시토신이 부족한 상황인 건가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타인과의 관계라는 건 한편으론 무척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웬만큼 편한 사이라고 해도. 그렇지만 또한 완전히 고립된 채로 살 수 있는..

일상/2020~2022 2020.05.05

고양된 감정

책을 읽다가 고양된 감정 상태를 느껴보라는 구절을 만났다. 문득, 고양된 감정을 느껴본 게 언제였더라하고 생각하게 됐다. 내 일상에 그럴 일이 있나. 그럴 일이 잘 없지 싶다. 어쩌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연애나 새로운 만남같은 걸 원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꼭 좋은 감정뿐 아니라 어쨌거나 내 주의를 끄는 어떤 것, 집중할 만한 것,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들. 지금의 일상이 참 괜찮은데 어쩌면 난 그저, 심심할 뿐인지도 모르겠다. 감정에 격렬하게 휘둘리고 어딘가에 집착하고 끊임없이 원하고 그런 느낌에 익숙한데 지금은 그런 게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살 때는 그게 너무 피곤하고 잔잔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얻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게 되니까 고통스럽더라도 무기력에 빠져들 새가 없었던 그때로 알게모르게..

일상/2020~2022 2020.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