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392

오늘 아침 내 방 창문으로 내다본 풍경. 지금 지내고 있는 성북동 내 방엔 창문이 두 개 있다. 큰 창은 북쪽으로, 그보다 조금 작은 창은 서쪽으로 나있다. 이 여름엔 어느 창을 보나 시야에 초록이 가장 많이 잡힌다. 서울로 돌아올 때 부동산이나 계약과정을 거치지 않고 또 너무 많은 돈이 들지도 않고 고립되지도 않고 살 수 있는 이 집이 있어서 몹시 다행이었다. 사실상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느꼈다. 근데 그렇게 고마운 마음으로 들어왔지만 무엇이든 그렇듯 금새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치 당연한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최근에 회사에서 사택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거기 들어가면 월세도 안 들고, 출퇴근도 대중교통 1시간에서 걸어서 15분으로 줄어든다. 내가 안 가겠다고하니 같은 팀 팀장님과..

일상/2020~2022 2020.07.26

오늘 하루도

아침에 올림픽공원을 혼자 걷는데 경비원 복장을 입은 분이 마주 걸어오다가 말을 걸려고 하길래 앗, 마스크 안 써서 그런가? 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쥐어주시면서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보내라고 하셨다. 심란해서 혼자 걷고 있었는데 뜻밖의 따뜻함을 마주했다. 그렇다고 모든게 해결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다. 떨어뜨려서 깨진 폰에 미련을 버리고 중국에 주문했던 폰이 왔다.(내가 살 때는 19만2천원이었는데 지금은 18만4천원) 샤오미 홍미노트8T 다. (이전 폰은 홍미노트5였다.) 샤오미 폰을 세번째 사본다. 가성비 때문에 이제 딴걸 못 쓰겠다. 새거니까 당근 맘에 들고 색깔도 맘에 든다. 분홍색없어서 내심 아쉬웠는데. 어플을 까는데 어느새 내가 이렇게나 많은 어플을 쓰게 된건지....

일상/2020~2022 2020.07.19

좀 더 또렷하게

"살면서 내가 나를 감격시키는 일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국토 종단이나 해안선 종주를 마쳤을 때에도 난 나에게 감격했다. 지도를 펼쳐놓고 그 멀고도 먼, 꿈에도 다시 걷기 힘든 굽이굽이 길을 바라보고 있자면 지금도 가슴 저 밑이 뜨끈해진다." "나이를 먹어도 사라지지 않고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 그것을 자신에게 선물해 주길 바란다. '경험하면 사라진다'는 말처럼 하고 나면 사라진다. 별것 아닌 일을 가지고 계속 결핍감을 느끼면서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더 이상 핑계 대지 말고, 스스로 감격시킬 준비를 해라. 그리고 하나둘 이뤄나가라. 지금, 바로 지금이 나를 감격시킬 가장 좋은 때다." - , 황안나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도 내 취향의 머리를 모르고 스스로 손질하는 법도..

일상/2020~2022 2020.07.19

나 자신을 위해

어제 오랜만에 밥을 하고 찌개를 끓였다. 기민과 함께 밥을 먹고나서 내가 최근에 산 복숭아를 후식으로 먹자고 했는데, 그는 냉장고에 있는 자두가 오래되었으니 그걸 먼저 먹자고 했다. 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뭐든 따자마자 먹는 게 제일 맛있는데 그나마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가장 신선한 상태의 복숭아를 지금 맛보자. 언제까지 썩기 직전의 것만 처리하듯이 먹지 말자."고. 실은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조금 더 나 자신을 위해 살아야지. 지금은 더 좋은 것들을 양보해줘야할 사람도 없으니, 그렇게 살아봐야지. 페이스북_200705

일상/2020~2022 2020.07.19

야구소녀

어제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가서 영화를 봤다. 사람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한 10명 정도는 있었다. 본 영화는 '야구소녀'. 곰자가 좋아하는 이주영 배우가 나오는 영화였다. 아무런 사전정보도 없이(심지어 영화관에 도착하기 전까진 한국영화인지 일본영화인지도 몰랐다) 보기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어떻게 보면 뻔할 수도 있는 어떤 결말을 기대하면서 보게 됐다. 명확한 정의가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소년만화' 스타일의 스토리랄까? 주인공이 소녀인 스포츠드라마이자 소년만화.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요즘은 왠지 뭘 봐도 여성 버전의 서사가 더 좋은 느낌이다. 남자주인공이 부딪치고 깨지다가 결국엔 꿈을 이루는 이야기는 이미 지겹도록 보기도 했고. 난 이제 적당히 월급 받고 적당히 편하게 ..

일상/2020~2022 2020.07.19

지금이 좋아

회사에서 집을 제공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원래 숙소를 제공하는 회사는 아닌데 여차저차해서 회사에서 월세공과금을 다 내주는 꽤 괜찮은 투룸(본래는 남직원3명이 살던)에 지금 1명이 혼자 살고 있어서, 서울이 본가가 아닌 혼자 사는 남직원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최소 월 30만원을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출퇴근 소요시간도 대중교통으로 1시간에서, 걸어서 15분 이하로 꽤 줄어든다. 근데 결과적으로 한참 계산기는 왜 두드렸을까 싶을 정도로 거기 들어갈 맘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한달에 100만원을 아낄 수 있다해도 난 지금이 좋다.(혹시 월 천만원쯤 준다면 모르겠다) 그 30만원을 악착같이 모아서 하고 싶은 일도 딱히 떠..

일상/2020~2022 2020.06.27

상추 정도야

집 앞에 작은 텃밭이 있다. 대단히 계획적이고 열정적인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몇몇 작물을 심어서 돌보고 있다. 기민이 모종을 사와서 심어둔 상추 셋, 고추 넷, 씨앗으로 심은 쥐눈이콩이 자라고 있고, 얼마 전에 심은 선비콩은 싹이 나길 기다리고 있다. 몇년 전에 심어두었다던 박하는 이젠 완전히 자리를 잡았는지 알아서 잘 자라고 있다. 그 텃밭에서 제일 잘 자라고 있던 상추 하나가 벌레들에게 죄다 갉아먹혔다. 걔들이 잔뜩 붙어서 먹고 있는 걸 봤지만 떼어주지는 않았다. 좀 아깝긴 했지만 세 개 있는 상추 중에 하나만 먹혔을 뿐이다. 나는 그 상추를 못 먹게 돼도 죽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편하게 살겠다고 집 짓고, 도로 깔고 하면서 삶터에서 쫓아낸 다른 종들이 몇인지 셀 수도 없다는 데에 이르면 상추 정도..

일상/2020~2022 2020.06.27

서울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이 계절에는 새벽이라고 하기에는 온 세상이 너무 밝은 아침 6시,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그러고 있으면 출근하는 직장인이 아니라 꼭 서울에 여행 온 사람이 된 것만 같다. 한강의 북쪽 강변을 따라서 직장이 있는 송파를 향해 동쪽으로 페달을 밟으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반짝이는 물과 남쪽 강변을 바라봤다. 먼 나라의 도시에서 느끼던 낯설고 설레는 기분을 떠올렸다. 옆으로 지나치는 일찍부터 운동하러 나오는 사람들도 낯설게 바라봤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보는 기분으로(사실 그렇기도 하고). 그렇게 바라본 서울은 내 머릿속에 들어있던 이미지에 비해 푸르른 느낌이었다. 다른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서울에 여행 와서 서울을 바라보면 이런 기분일까. 혼자 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면 일상도 여..

일상/2020~2022 2020.06.23

생일

오늘은 내 생일. 세상에 나와 서른 번째 맞는 생일이다. 만 30세가 됐다. 이제 어떤 셈법으로 따져도 20대라고 우길 수 없는, 빼도박도 못하는 리얼 30대에 진입했다. 다행하게도 지금의 내가, 그리고 지금의 삶이 꽤 맘에 든다. 맛있는 소고기와, 살면서 먹어본 가장 비싼 와인과, 기민이 성북동 디저트작업실에서 미리 주문해둔 메론케익을 먹었다. 위버가 미역국도 끓여줬다.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이 되던 1월 1일 새벽에는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올라가는 버스에 타고 있었다. 어둠컴컴한 창밖을 내다보며 이 버스가 방콕으로 간다곤 하는데 사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는 것처럼,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는 기분이었다. 내가 어쩌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싶었다. 물론 지금도 내 삶이 앞..

일상/2020~2022 2020.06.23

6월 14일 일기

어제는 M과 두 시간동안 산을 탔다. 오전 7시40분에 출발했는데 이미 대낮같은 뜨거움이 우릴 반겼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왔을 때 아직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걷는다는 행위에는 어떤 마력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순례길같은 걸 걷겠지. 나 빼고 같이 사는 사람 둘이 모두 산티아고 순례길 경험자들이다. 걷다보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정리가 된다. 그리고 계속 걷다보면 결국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때가 오겠지. 기회가 닿는다면 한번쯤 걸어보고 싶다. 그렇게 긴 시간 혼자 걷는다면 내 모든 기억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한다. 빨래를 해서 널고 청소를 하고 텃밭에 풀도 좀 매고, 책을 펴놓고선 낮잠을 한숨 자고 슬기로운의사생활OST를 ..

일상/2020~2022 2020.06.23

점점 더 살고 싶어지는 나날

점점 더 살고 싶어지는 나날.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나날들. 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과거가 가리키는대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내가 새로운 마음에, 새로운 삶에 다다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지금 여기에서 마음이 가는대로. 분명히 그렇게 살고자 했는데 언제부터 잊어버렸을까. 나를 사랑하는 법, 삶을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삶이 내게 준 것들과 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_페이스북 6월 13일

일상/2020~2022 2020.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