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참참. 2020. 7. 26. 13:24

오늘 아침 내 방 창문으로 내다본 풍경. 지금 지내고 있는 성북동 내 방엔 창문이 두 개 있다. 큰 창은 북쪽으로, 그보다 조금 작은 창은 서쪽으로 나있다. 이 여름엔 어느 창을 보나 시야에 초록이 가장 많이 잡힌다.
서울로 돌아올 때 부동산이나 계약과정을 거치지 않고 또 너무 많은 돈이 들지도 않고 고립되지도 않고 살 수 있는 이 집이 있어서 몹시 다행이었다. 사실상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느꼈다.
근데 그렇게 고마운 마음으로 들어왔지만 무엇이든 그렇듯 금새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치 당연한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최근에 회사에서 사택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거기 들어가면 월세도 안 들고, 출퇴근도 대중교통 1시간에서 걸어서 15분으로 줄어든다.
내가 안 가겠다고하니 같은 팀 팀장님과 과장님 등 주변 직원들이 나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결국 그 권유에 못 이겨 당분간 그곳에서도 지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3주간 평일에 2-3일 정도씩 거기서 지내면서 출퇴근해보니 과연 집 가까운 게 좋긴 했다. 옆에는 올림픽공원도 있다. 같이 사는 영업팀 과장님도 잘해주셨다. 시설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주거의 경험을 슬쩍 해보니 지금 이 집의 이 풍경과 이 조용함이 얼마나 굉장한 건지 새롭게 느끼게 된다. 다양한 주제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같이 살고 언제든 요리할 수 있게 잘 갖춰진 데다가 뚜렷한 기준에 따라 정돈되는 주방이 있다. 심지어 요리를 꽤 잘하고 일상적으로 해내는 이들한테 얻어먹는 일도 잦다.
앞에는 텃밭이 있고, 거기에 뭘 심어도 되고 그냥 놀려버려도 된다. 밖에다 빨래를 널 수도 있다. 음식물쓰레기봉투를 쓰지 않고 텃밭 한켠에서 처리할 수 있다. 개 짖는 소리가 종종 들리지만 그거 빼면 매우 조용한 편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여기서 기타를 치든 노래를 부르든 이웃에 폐끼칠 걱정이 거의 없다(하우스메이트들에겐 약간 있지만). 층간소음이 뭔지 잊고 산다.
서울에서 이런 곳에 산다는 게 문득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아침, 내가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무료로 거주할 수 있다는 누가 봐도 좋은 기회를 차버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좋은 곳에 살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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