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화이트데이

참참. 2020. 3. 15. 13:16

 

화이트데이라고 같은 층에 근무하는 한 남자직원이 사무실 전원에게 사탕 두 개, 초콜릿 네다섯 개가 든 작은 꾸러미를 돌렸다. 그걸 받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첫째로는 물론 달달한 걸 좋아하니만큼 먹을 게 생겨서 좋았지만,

그 다음으로는 '니가 이런 걸 하면 내가 뭐가 돼?'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 직원은 입사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직원이지만 나이는 나보다 어리다. 대학교 졸업 이후에 바로 입사한 사람이다. 나야 뭐 입사 2주밖에 안 된 신입사원이지만 30대다. 그는 여자친구가 있고 난 없다.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 회사에 과장님과 팀장님 총 두 분뿐이다.)

이런저런 상황은 다 제쳐놓고라도 사실 그런 식으로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의 호의를 고맙게 받아들이면 된다. '난 아직 첫 월급도 못 받았으니까'라는 변명이 마음 속에서 올라왔는데, 사실 내가 변명할 이유는 없다. 누구도 나한테 넌 왜 아무것도 준비를 안했냐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그렇게 생각한다해도 '뭐, 어쩌라고. 꼭 준비해야돼?'가 맞다. 사실이 그러니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으니까, 그런 게 좋아보이니까 그런 맘도 들었다고 생각한다. 본인도 얘기하기를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사다보니 포장을 다 하고나서도 남은 것들이 많았고, 그것들을 조금씩 포장한 것뿐이라고 했다. 그게 맞았다. 사실 열다섯 사람에게 포장해서 나누어준 사탕과 초콜릿 다 합쳐도 순수하게 돈으로만 따지면 싸게는 만원 안쪽, 아무리 비싸게 잡아도 2만원 안쪽으로 살 수 있을 거다. 대용량으로 사서 나눈 것일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따뜻함과 달달함을 나누는 데 돈보다 더 필요한 건 역시 마음이다. 물론 돈이 없을 땐 만원도 큰 돈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많은 사람에게 선물할 수 있는 것치고는 그리 비싼 비용은 아니다. 내가 그 초콜릿 가져가서 여동생과 조카에게도 작은 즐거움을 선물할 수 있었다. 

사실 나도 이마트에서 할인하길래 초콜릿 집에 잔뜩 사뒀는데, 그걸 미처 챙겨갈 생각을 못한 게 결정적인 차이였다. 포장까지야 그렇다치더라도 그냥 챙겨만 갈 수도 있는 거였는데, 거기까지 미처 떠올리지 못한 스스로에 대해 아쉬웠다. 그에겐 참 고마웠다. 나도 가끔은 이런 소소한, 별 거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는 이벤트를 챙겨보고 싶다.

 

'일상 > 2020~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실 자리  (0) 2020.03.15
디비  (0) 2020.03.15
공장에 가다  (0) 2020.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