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291

여기 와서 좋다

지난주에 발톱무좀 치료를 시작했다. 군대에서 얻었으니 10년 된 병이다. 엄지발톱 하나에서 소소하게 시작한 녀석은 이제 양쪽 발에 골고루 퍼졌다. "나는 10년이나 나를 방치해왔다"라는 문장을 떠올렸으나 이내 내 안의 무언가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해왔다. 그렇다. 그걸 치료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들이 너무 많았을 뿐이다. 그냥 두어도 그다지 아프지도 않은 그것보다 더 아픈 결핍들을 채우기 위한 날들이었으므로. 과거의 어느 때라도 그때의 나름의 최선을 다해왔던 것이다. 4월부터 새로운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첫 출근하던 날 애인은 도시락과 와인을 챙겨왔고, 5시에 퇴근하여 선유도공원에 피크닉을 갔다. 그저 그런 회사, 그냥 버티듯이 다니는 곳 말고 더 좋은 곳에 가고 싶었다. 내 실력이나 자격을 ..

일상/2020~2022 2022.04.17

퇴사

갑자기 개발자로 일해보고 싶어졌을 때, 아직 개발도 코딩도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운 좋게 들어갈 수 있었던, (그런 나를 받아주셨던) 개발자로서의 첫 직장이 있었다. 연봉이나 커리어 면에서도, 코딩 실력이나 업무적인 체계같은 면에서도 좀 더 성장하고 싶어 21년 5월에 이직했던 회사가 또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2년은 다닐 줄 알았던 그 회사를 그제, 22년 3월 31일 부로 퇴사했다. 역시 이직을 위한 퇴사다. 다음주 월요일, 4월 4일부터는 다른 회사에 출근한다. 이전의 회사들도 나에게 개발자로의 커리어를 쌓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어주었고, 감사한 사람들도 많지만, 이번엔 뭐랄까 더 설레는 기분이다. 오르는 연봉이나 조금 더 있는 복지혜택도 물론 기대되지만(근데 다니던 회사..

일상/2020~2022 2022.04.02

3월9일 달리기

지난 몇달간 그래도 한달에 두번 정도씩은 달리기를 하고 있었는데 2월엔 하루도 못 달렸다. 5킬로미터 기록이 25분께에서 거의 30분으로 늘어났다. 게임에서는 대개 한번 올려놓은 레벨은 떨어지지 않지만(대신 점점 센 보스가 나오지만) 일상은 매일, 매주, 매달 반복하지 않으면 금세 잊게 되는 것들로 가득하다. 반복되는 것들이 지겨운 것인 줄 알았다. 새로운 것을 찾아헤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서른이 넘어서야 느낀다. 매년 오는 봄이 지겹지 않듯이, 모든 날 모든 순간이 다르고 소중하다. 인간의 기억체계는 비슷한 사건들을 범주화categorization하여 저장하므로 '처음처럼' 설레기는 어렵더라도 오늘은 오늘의 설렘이 있다. 오늘의 달리기에는 오늘의 즐거움이 있고 지난번에 읽은 책을 또 읽어도 역..

일상/2020~2022 2022.03.12

이직 준비

2월달은 중순 즈음부터는 거의 이직 준비로 보낸 것 같은 느낌이다. 그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첫직장에서 php로 커리어를 시작한 뒤로 php를 주력 언어로 경력을 이어가게 됐다. 이번에 이직하면 세번째 직장이 되는데, 아무래도 기존 경력이 php이다보니 이번에도 php를 쓰는 곳으로 가게 될 것 같다. 파이썬을 쓰는 곳에도 서류를 내거나 코딩테스트까지 본 곳도 있었는데 다 떨어졌다.(사실 php쓰는 곳 중에서도 최종합격한 곳은 아직까지는 한 곳이 전부다.) 근데 원래는 php보다 파이썬이 더 좋아보여서 그걸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요즘은 일단 php를 잘해보고 싶다. php는 어느 모로 보나 트렌디한 언어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버전업을 통해 충분히 괜찮은 언어가 됐고, 결국 한 언어..

일상/2020~2022 2022.03.07

22.02.16

이번주 들어 오랜만에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월요일에 재인이 집에 와있었다. 아침점심저녁을 다 차려주고 내가 일하는 동안 나가서 화분과 꽃을 사왔다. 집이 점점 더 예뻐진다. 뿐만 아니라 밸런타인이라고 멀리 있는 스벅까지 찾아가 비건브라우니를 사와서 초에 불까지 붙여주었다. 화요일 아침 늦게까지 꼭 끌어안고있다 그가 가고나니 갑자기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같은 기분이 됐다. 온갖 좋은 것들을, 사랑을 잔뜩 받기만 한 것 같아 어쩐지 미안하기도 하고. 말할 수 없이 고맙고 보고싶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아침에 못했던 요가와 스쿼트를 하고 샤워를 했다. 땀이 찔끔 날 정도로 운동을 하면 몸에 힘이 생기고 마음에도 힘이 들어가는 것같은 느낌이 신기하다. 마음도 몸 안에 있다는 것이 실감난..

일상/2020~2022 2022.02.20

집에 대하여

이 집을 구하기 위해 3개월간 직거래 사이트를 보고, 다솔 씨 기준으로 80점은 줄 수 있는 집이라 이사를 왔다면서요? 집 보는 안목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처음 자취방을 구할 때도 직거래 사이트에서 서울에 있는 모든 전세 알림은 저한테 오도록 설정해두고 하루 종일 봤어요. 좋은 집은 빨리 나가니까 직접 볼 기회가 생기면 아침 7시에 찾아가고 그랬죠. 이 집도 3개월 동안 매일 부동산에 전화하고, 앱을 보고, 직거래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구한 거예요. 엄마가 제 첫 자취방을 구할 때 이렇게 말했어요. “정말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많은 인생인데, 집이라도 들어오고 싶은 곳이면 좋겠다.” 전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너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내 공간은 마음의 중심을 잡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

일상/2020~2022 2022.02.07

설날

이번 설연휴는 애인인 재인과 보냈다. 연휴 시작하는 토요일날 재인의 가족들을 뵙고 저녁 먹고 와서(우리 가족은 그 전주 토요일에 동생네 집 집들이 겸해서 만났다.) 일요일부터 화요일 점심까지 둘이 같이 보냈다. 함께 장을 봐와서 재인이 해주는 밥을 함께 먹고, 술도 한잔 하고, 영화 '포레스트검프'와 애니메이션 '엔칸토',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1을 함께 보고, 책도 읽고, 책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일기도 쓰고, 5km 달리기도 했다. 2월부터 시작하는 새해 빙고도 함께 써봤다. 새해빙고는 김신지 작가님이 에서 소개한 것으로 새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빙고판에 적고 달성하면 X표를 쳐서 친구들과 누가 빙고를 많이 달성하는지 공유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초심자이므로 3 X 3 빙고판을 만들어 9개씩..

일상/2020~2022 2022.02.01

요즘

요즘 선물받은 예쁜 노트에 좋은 구절들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을 펜으로 옮겨적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검색해볼 수 있는 형태의 기록을 더 선호하지만 펜으로 따라적어가는 것은 또 그만의 맛이 있다. 책은 고등학생 때는 최고의 도피처였고, 그 뒤로도 거의 언제나 즐거움과 깨달음을 주었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 얘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몇달 전부터 매일 비타민제를 챙겨먹기 시작했다. 달고 살던 피로감이 확실히 덜한 느낌이다. 문득 책을 읽는 것은 마음의 영양제를 챙겨먹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양제를 한번 먹어서는 큰 의미가 없다. 매일 먹어야한다. 밥도 아무리 잘 먹어도 내일이면 또 배가 고프고, 사랑도 아무리 받아도 내일 또 고프듯이, 책을 오늘 읽어도..

일상/2020~2022 2022.01.28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제주에서 문득 이 문장을 떠올렸다. 함께하는 여행에서, 곁에 있지만 잠시 책과 함께 각자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던 그 순간에.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이 문장이 며칠동안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내가 꿈이 없는 줄 알았다. 그저 행복하고 싶었다. 삶에서 그렇게까지 열망하는 것도 없고 대단한 목표도 없었다. 내 꿈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다 사랑받기 위해 해온 일들이다. 사랑받기 위해 꼭 뭔가를 해야할 필요가 없다는 문장을 아무리 읽어봐도, 나에게 현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잠깐의 사랑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다. 사랑받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부끄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스스로도 어째서 남이 사랑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는건가 하는 마음부터 든다. 그런 말을 ..

일상/2020~2022 2022.01.20

한 해의 끝/시작

한 해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한 해의 마지막날엔 재인과 함께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재인의 가족분들과 식사를 했어요. 새해 첫날에는 강릉에 가서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식사를 하고 별을 보았습니다. 1월2일 아침에는 바다에서 해돋이를 보고 고향집 눈 쌓인 언덕에서 썰매도 탔어요.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한 해동안 잘한 일들을 적어보고 서로 나누었습니다. 감사한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요. 회사에는 작년말에 CTO가 새로 영입되셔서 새해 첫 출근한 오늘부터 자리도 바뀌고 팀도 바뀌었습니다. 업무는 당장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협업툴 Jira 도입이 시작되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세팅이 되는 거 같습니다. 맡게 되는 책임도 다소 커지고요.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한 해입니다. 한편으로는 지금에서 특별히..

일상/2020~2022 2022.01.11

무용한 것들을 사랑했으면

https://www.podbbang.com/channels/15135/episodes/24215170 215-1 [오은의 옹기종기] 양다솔 작가 “농담이 저의 1순위 무기입니다 ㅋㅋ” 오은 : 오늘 보이차를 들고 오셨네요. 좋아하시나 봐요? 양다솔 : 네, 밥은 못 먹어도 보이차는 마셔요. ㅎㅎ 저는 진짜 귀한 것들은 그만한 자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에서도 주고 금전적 www.podbbang.com 와 의 양다솔 작가님의 팟캐스트를 크리스마스에 만두를 빚으며 함께 들었다. 1시간 7분 32초부터 작가님이 '무용한' 것들에 이야기하는데 너무 좋았다. 명백히 우리의 에너지, 가령 시간과 돈과 내가 쓸 수 있는 체력과 관심은 한정되어 있다. 그것을 아는 것은 소중한 일이나,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의..

일상/2020~2022 2021.12.25

집에 늘 꽃이 있다

집에 늘 꽃이 있다. 냉장고에, 식탁에, 도시락에 늘 사랑이 가득하다. 때로는 자신은 먹지도 않는 것까지 요리해주고도 잘 먹어주고 표현해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어느 때보다도 집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 뭐든 미리 해놓길 좋아하는 부지런한 손길에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대체로 편안한 마음으로 지낸다. 별일 없다. 별일 없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하고 생각한다. 주말에 무얼 해먹을지 고민한다. 뱅쇼를 끓이려고 와인을 사다놓았다. 가끔 엽서를 쓰고 일기도 쓴다. 지금은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거야"라는 책을 읽고 있다. 재밌다는 드라마를 추천받았지만 드라마 볼 시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공부할 것도 많고 읽을 책도 많고 혼자 사는 집에도 늘 정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하고 설거지할 일도 많다. 그래..

일상/2020~2022 2021.12.23